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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만 인재 키운다는 정부… 관료와 안 통한다는 인재[광화문에서/홍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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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만 인재 키운다는 정부… 관료와 안 통한다는 인재[광화문에서/홍수용]

홍수용 경제부 차장 입력 2019-12-06 03:00수정 2019-12-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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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경제부 차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일 경제관계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혁신인재를 23만 명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8월 말 나온 내년도 예산안에도 담긴 것으로 새로운 건 아니다. 지난해 말에도 4차 산업혁명 선도인재 양성 계획을 수립했다고 홍보했으니 1년가량 묵은 대책인 셈이다. 부총리가 정책을 재탕하고 있다고 비판할 생각은 없다. 기술 선점이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 인재 육성에 정부가 관심을 갖는 건 반가운 일이다.

다만 선도인재 양성책을 발표한 게 작년인데 ‘선도’를 ‘혁신’으로 바꾼 것 말고 인재 육성 방안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인공지능(AI) 대학원 5곳과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신설, 평생직업교육 강화로 23만 인재를 만들 수 있을까. 한 관료는 “AI 시스템반도체 ICT융복합 사업을 지원하겠다. 대학을 통해 BK21사업 첨단 인재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분야는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아 아직 모른다고 했다. 23만이라는 숫자가 나온 배경이 여전히 미스터리지만 건너뛰고 왜 하필 ‘혁신인재’인지 물었다. “AI라든지 5G 데이터라든지 모두 혁신 분야로 포섭돼 있어요.” 그냥 인재라고 하면 될 걸 현 정부의 정책 브랜드 격인 ‘혁신’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를 물었는데 동문서답이 돌아왔다. 관가에서 새롭고 좋아 보이는 것에 혁신을 붙이는 게 당연해진 요즘, 관료에게 이런 건 질문거리가 아니라는 걸 내가 몰랐다.

모두가 정치에 빠져 있으면 관료는 형용사로 가득 찬 보고서를 쏟아내며 바쁘게 일하는 척한다. 관료는 인사권자에게 어필하면서 정치권을 기웃거리거나 자리를 보전할 수 있겠지만 정작 미래 기술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정부 출연연구소의 연구개발(R&D) 기술을 평가하는 잣대로 TLE(Technology Level Evaluation)라는 게 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의 TLE에서 3, 4등급을 받으면 특허권을 확보할 수 있고 실증실험을 통과하면 5, 6등급, 상용화를 위한 추가 실험을 통과하면 7, 8등급이다. 기업이 특허기술을 사들여 실제 공정에 투입하려면 7, 8등급은 돼야 하지만 우리의 R&D 기술은 대부분 3, 4등급에 멈춰 있다. 실증실험을 하려면 예산이 많이 든다. 실험이 실패하면 문책을 당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공무원들이 TLE 3, 4등급 수준의 특허권만 유지하며 더 이상 진도를 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경제보복의 타깃으로 삼은 소재·부품·장비 기술 중 일부도 이런 배경 때문에 그동안 답보 상태였을 수 있다. 정부는 올 초부터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100대 품목을 추려 대비책을 마련해 왔다고 했지만 이 100대 품목의 기술 수준이 낮은 원인을 추적해 봤는지 의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 ‘소·부·장’ 전담 고위 공직자 자리를 늘리고 조직의 덩치를 키우는 것만으로는 혁신인재도 혁신기술도 나오지 않는다. 혁신의 대상이 혁신을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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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들이 기술 발전을 명분으로 혁신을 구호로 들고나올 때마다 일본의 경제보복 직후 만난 한 국책연구기관장의 말이 늘 마음에 걸렸다. “기술 인재는 이미 많지만 기술자와 말이 통하는 관료는 너무 적다.”

홍수용 경제부 차장 legman@donga.com
#인재#등용#관료#선도 인재 양성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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