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공공 고양이는 생선을 더 좋아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1일 15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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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사태가 결국 문재인 정부의 뒷목을 잡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지금 우리 국민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가 랜드(land)와 하우징(housing)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사건은 이 가장 예민한 문제를 건드리면서 부동산정책 실패부터 국가주의 파탄까지 문 정권의 총체적 실패를 폭로해버렸다.

서울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 정문에 붙은 LH 내부직원 부동산투기 비판 스티커. 뉴시스
서울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 정문에 붙은 LH 내부직원 부동산투기 비판 스티커. 뉴시스


● 문 정권의 국가주의는 파산했다
‘개발을 노린’ 공직자 땅 투기와 이번 사건을 헷갈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있는 사람들이 땅이나 사대는 것을 곱게 봐주긴 어렵지만 농지법 어기지 않고 세금 제대로 냈다면, 공직자가 땅 샀다고 때려잡을 순 없다고 본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공공귀족들이 직무상 정보를 빼내 땅을 샀느냐는 점이다. 그걸 정부합동수사반에서 밝혀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자기 컴퓨터에서 위조문서가 나와도 위조 안 했다고 잡아떼는 게 이 정권의 DNA다. 머릿속을 뒤집어볼 수도 없고, 땅을 사고도 “개발정보 몰랐다”고 잡아떼면 그만이다. 수사는 요란해도 흐지부지 끝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2021년 3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LH 임직원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왼쪽)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공동취재단
2021년 3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LH 임직원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왼쪽)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공동취재단

이번 사태의 의미는 공(公)은 선(善), 사(私)는 악(惡)이라는 듯 공공부문을 지배세력연합으로 확장해온 문 정권 국가주의의 파탄에서 찾아야 한다. 운동권네트워크 정권의 캐치프레이즈였던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는 파산했다. 대깨문도 정신이 번쩍 드는, 그래서 집권세력으로선 정권이 무너질 망국적 범죄가 아닐 수 없다.

● 계몽적 부동산정책, 시장의 복수에 완패
문 정권의 부동산정책 실패를 LH사태는 만화경처럼 드러냈다. 정권 출범 때 서울에서 아파트 살 돈으로 지금은 전세밖에 못 산다. 4년 전 서울의 아파트가 평균 5억9861만 원인데 지금은 전셋값 평균이 5억9829만 원이다(KB국민은행). 열심히 노력하면 내 집 장만하고, 또 늘려갈 수 있다는 희망은 사라졌다. 이 정부 믿고 있다간 ‘벼락거지’ 될 판에 어물전 고양이가 뭔들 못하겠나.

지난해 12월 경기도 화성 동탄 행복주택 단지를 방문해 아파트를 둘러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이날 전용면적 44m²(13평) 주택을 둘러보며 “아이 둘과 잘 살 수 있다”고 발언했다가 정치권과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동아일보DB
지난해 12월 경기도 화성 동탄 행복주택 단지를 방문해 아파트를 둘러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이날 전용면적 44m²(13평) 주택을 둘러보며 “아이 둘과 잘 살 수 있다”고 발언했다가 정치권과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동아일보DB

문 대통령이 ‘아파트 공급대책’으로 다주택자들에게 징벌적 과세 때리고, 임대차보호법 등 서민을 위한다는 규제를 휘두른 결과가 이 꼴이다. 정부는 ‘계몽적 방향으로 조정하고 통제’하려 했으나 주택시장 질서를 파괴하는 생태계 교란으로 결론 났다.

자가(自家)율 향상은 규제완화로 집값이 올라가면서 주택공급도 늘어날 때 발생한다는 게 이창무 한양대 교수의 최근 연구결과다. “부동산 문제는 정부에서 잡을 자신 있다”고 큰소리쳤던 문 대통령의 국가주의가 ‘시장의 복수’에 완패한 거다.

● 견제 없는 공공부문은 무섭게 부패한다
뒤늦게라도 부동산 실패를 깨달았으면, 공급에선 수요자 요구를 존중해야 했다. 이 정권의 특성이 죽어도 방향전환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못되면 더 가열하게 그 길로 간다. 2월 4일 발표한 주택공급대책의 제목이 ‘공공주도 3080+’였다.

올해 2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도시 주택공급과 관련한 ‘공공주도 3080+’ 정책을 발표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왼쪽)와 변창흠 국토부장관. 동아일보DB
올해 2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도시 주택공급과 관련한 ‘공공주도 3080+’ 정책을 발표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왼쪽)와 변창흠 국토부장관. 동아일보DB

전임 정부에서 ‘공공개혁’의 일환으로 도입했던 성과급 체제마저 문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없애버렸다. 공공부문의 무한정 확대가 국가주의 특징이다. “공공이 주도하면 충분한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다” “공공이 다양한 이해관계를 책임지고 조율할 수 있다” “그 결과 얻어진 개발이익은 우리 사회 모두가 공유한다”며 문 정권은 LH에 부지 확보부터 분양까지 전 과정을 맡긴다고 발표했다.

개뿔이었다. 공공부문도 결국 공적 이익 아닌 사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이 공공선택이론의 핵심이다. ‘공공’의 고양이라고 생선 좋아하는 본성이 없어지지 않는다. 특정 공기업은 부패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특히 더 크다고 OECD는 지적했다. 공공 고양이는 더 좋은 생선을 더 맛있게 잘 먹는다. 공산주의 소련이 괜히 망했겠나.

● 당신의 삶을 책임져주는 국가는 없다
무엇보다 정부가 밀실에서 신도시를 결정한다는 것이야말로 국가주의의 결정판이다. 그것도 문 정권이 극혐하는 전두환 국보위 시절에 나온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로 사유재산을 강제 수용하는 방식이다.

신도시가 발표될 것 같으면 후보지로 떠오른 지역을 중심으로 투기 열풍이 불 수밖에 없다(정말 안타깝지만 그게 40년 경험에서 배운 학습효과이고, 인간 본성이다). 불과 몇 달 만에 수십 배 불로소득을 올릴 기회를 주는 ‘적폐’를 문 정권도 자행했다.

그리고는 국민적 공분을 풀어준답시고 공공귀족들 가솔까지 샅샅이 수사하겠다는 건 끔찍한 국가주의의 극치다. 부동산 정책으로 인간 본성을 통제하는 정부가 있는 한, 투기는 좀비처럼 살아난다. 당신의 삶을 책임져 주는 국가는 없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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