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요즘 중장년 세대가 인공지능(AI)을 많이 배우러 다닌다는 기사를 읽었다. 프롬프트 작성, 이미지 생성, 영상 편집 등 새로운 도전에 나선 시니어들의 모습을 꽤 밝게 다루고 있었다. 보다가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그래서 그랬구나.”
몇 주 전 일이었다. 달력을 펼쳤더니 어느새 2026년의 중간 지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언뜻 특별히 한 일이 없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는 분주히 지나갔는데, 이상하게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기분이었다. 문득 이렇게 하반기를 맞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AI 교육 프로그램 공고가 눈에 띄었다. 평소 관심은 있었지만 미뤄두고 있던 분야였다. 이참에 부족한 영역을 공부하며 마음을 다잡고 싶었다. 규칙적인 일과가 생기면 흐트러진 생활도 정리될 것 같았다. 곧바로 홈페이지 신청 화면에 들어갔다.
읽다 보니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접수 즉시 등록되는 방식이 아니었다. 과정 설명란에는 ‘심사 후 선정’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자기소개와 지원 동기를 제출하고 내부 심사를 통과해야만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구조였다. 물론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나름 AI에 대한 이해도가 있다고 판단했고, 하려는 목적도 분명했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발표 당일 받은 문자는 나를 얼어붙게 했다. “귀하와 함께하지 못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잠시 멍했다. 내가 최종 선정되지 못한 것이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치열한 입시 경쟁도 아니고, 중장년 교육 기관에서, 게다가 내가 직접 비용을 내겠다는데 탈락이라니.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는데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퇴직하던 그해였다. 나는 퇴직한 뒤에 재취업을 하고 싶었다. 며칠 밤낮으로 구직 사이트를 검색해 가며 두 번째 삶을 시작할 새 직장을 찾았다. 하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내가 원하는 곳은 나를 외면했고, 나를 부르는 곳은 내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한 중소기업에 지원하게 되었다. 일정 기간 수습을 거쳐 정식 채용되는 자리였다.
이력서를 내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1차 서류 전형 후 2차 면접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내내 감감무소식이었다. 속을 끓이다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안 되셨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답변이었다. 회사 밖 세상을 몰랐던 나는 그 상황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한동안 아주 괴로웠다. 제출했던 서류를 반복해서 읽으며 내가 놓친 부분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가장 참기 어려웠던 건 나의 모습이었다. 훌훌 털어내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는 내가 스스로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그래서일까. 퇴직 후 첫 탈락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회사 밖에서 제일 힘들었던 순간 중 하나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후에도 나는 숱하게 거절을 경험했다. 퇴직 후 내 삶은 거절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두드리는 곳마다 고배를 마셨다. 그럴 때면 가슴이 상당히 쓰라렸다. 탈락 통보는 늘 짧았지만, 나는 오래도록 내가 왜 밀려났는지를 상상하면서 나 자신을 괴롭혔다.
생각해보면 퇴직 후 거절이 유독 아팠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거절을 나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였다. 지원서가 반송되고, 공모전에서 떨어지고, 협업 제안이 무산되는 일들이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퇴직이 나를 더욱 예민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겪은 거절의 대상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의 계획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거절의 숨겨진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퇴직 후가 더 행복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예상 밖의 공통점이 있었다. 처음 정한 대로 살아온 경우가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취업 준비하다 글을 쓰게 된 사람, 자영업을 접고 상담 일을 하는 사람, 그들 모두 한 번쯤은 뼈아픈 거절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실패라고 여겨졌지만, 암담했던 바로 그 순간이 본인의 인생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끈 전환점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서 깨달았다. 퇴직 후 거절은 장애물이 아니라, 미처 보지 못했던 곳을 바라보게 하는 신호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거절을 당하더라도 너무 상심할 필요가 없었다. 거절은 현재의 결과로 나타나긴 하지만 진짜 모습은 훨씬 나중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거절을 당한 이후 나의 움직임이었다. 충격에 주저앉아 멈출 것인가 아니면 다음 걸음을 내디딜 것인가. 둘의 차이가 퇴직 후 거절의 의미를 달리 만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닫힌 문 앞에서 오래 서성이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밟아보지 않은 또 다른 길을 곧장 가보려 한다. 그렇게 꾸준히 걷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의 탈락도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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