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절·무릎 수술 고민하는 고령자에게 더 현실적인 연구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응급 수술이 아닌 선택적 비심장성 수술을 받은 사람들만 대상으로 했으며, 그 중 상당수가 현실에서 흔히 접하는 정형외과 수술 환자였기 때문이다.
전체 참가자의 81%가 고관절 치환술, 무릎 인공관절 치환술 같은 정형외과 수술을 받았다. 고령층에서 매우 흔하게 시행되는 수술들이다.
나머지 13%는 위장관 수술, 6%는 혈관 수술을 받았다.
연구진은 수술 전 치매가 없는 70세 이상 환자들을 대상으로 기억력·주의력·집행 기능 등을 평가하는 신경심리검사를 실시한 뒤 수술 후 6년 동안 정기적으로 추적했다.
그 결과 환자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참가자 중 26%는 6년간 인지 기능이 거의 유지됐다. 59%는 일반적인 고령자에게서 관찰되는 수준의 완만 감소를 보였다.
반면 15%는 수술 후 기억력과 사고력 검사 점수가 다른 참가자들보다 더 빠르게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고, 이러한 저하가 수년간 지속됐다. 연구진은 이를 ‘심각한 인지 저하 궤적’으로 분류했다.
가장 위험한 신호는 ‘수술 후 섬망’
심각한 인지 기능 저하를 겪은 사람들의 가장 강력한 위험 인자는 수술 후 섬망(delirium)이었다.
섬망은 수술 후 갑자기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는 상태를 말한다. 시간과 장소를 헷갈리거나,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횡설수설하거나, 낮과 밤이 뒤바뀌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병실에서 갑자기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을 찾거나,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고령 환자 보호자들이 흔히 “수술하고 나서 갑자기 사람이 이상해졌다”고 표현하는 상태와 비슷하다.
이번 연구에서는 수술 후 섬망을 경험한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장기적인 심각한 인지 저하를 겪을 위험이 2배 이상 높았다.
연구진은 수술 후 섬망이 향후 수년간 이어질 수 있는 인지 기능 저하를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신호라고 설명했다.
수술 후 섬망 겪는 고령 환자. 챗GPT 생성 이미지.
나이 많고 수술 전 기억력 저하 심할수록 위험
나이도 중요한 변수였다. 연령이 1세 증가할 때마다 심각한 인지 저하 위험은 약 6%씩 증가했다.
수술 전 인지 기능 검사 점수가 낮은 사람도 위험이 높았다.
즉 평소 건망증이 심하거나, 경도 인지장애가 의심되는 사람은 수술 전 의료진과 충분한 상담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경도 인지장애는 정상 노화와 치매의 중간 단계로,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또래보다 떨어지지만 일상생활은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향후 치매로 진행할 위험이 일반인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수술을 피해야 할까?
고관절이나 무릎 관절 질환을 방치하면 걷기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낙상과 골절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활동량 감소는 근육 감소와 우울증,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오히려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아 통증을 줄이고 활동성을 회복하는 것이 건강은 물론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무릎이나 고관절 통증으로 활동이 크게 제한된 고령자에게는 수술이 신체 활동량을 늘리고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수술을 피하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수술 전 인지 건강 상태를 평가하고 수술 후 섬망 예방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중요한 것은 ‘수술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보다 ‘어떤 환자가 위험한지 미리 파악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를 “수술을 받으면 치매가 온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다만 나이가 많거나 인지 기능이 다소 떨어진 상태라면 수술 후 섬망과 장기적인 인지 저하 위험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이번 연구는 어떤 고령자가 특히 위험한지 보여줌으로써 수술 전 상담과 위험 평가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수술 후 섬망 예방이 장기적인 뇌 건강 보호의 중요한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섬망은 예방 가능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수술 후 안경과 보청기 착용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시력과 청력이 떨어지면 병실 환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혼란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낮에는 햇빛을 보며 활동하게 하고, 밤에는 충분히 잠을 자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가족이 자주 대화를 나누고 날짜와 장소를 반복적으로 알려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연구진은 고령자가 무릎이나 고관절 수술을 앞두고 있다면 통증 개선 효과뿐 아니라 수술 후 인지 건강 관리 계획까지 함께 의료진과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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