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편지 받기도 부담…차라리 연차” 스승의 날 기피하는 교사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14일 14시 07분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서초구 양재꽃시장에서 한 시민이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살펴보고 있다. 2026.05.14 뉴시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서초구 양재꽃시장에서 한 시민이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살펴보고 있다. 2026.05.14 뉴시스
경기 북부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최모 씨(30)는 15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연차 휴가를 냈다. 스승의 날을 맞아 불거질 수 있는 불필요한 오해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최 씨는 “학교 차원에서 ‘어떠한 선물도 받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다”라며 “성의 표시를 냉정하게 거절하는 것도 곤욕이고 혹시라도 악성 민원 학부모의 표적이 될까 봐 차라리 자리를 비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 “손 편지도 오해 살까 무섭다”… 얼어붙은 교단

이처럼 감사와 축하의 의미를 담아야 할 스승의 날이 교육 현장에서는 ‘기피의 날’로 변하고 있다. 교사들이 스승의 날을 부담스러워하는 건 2016년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사소한 호의조차 ‘부정 청탁’ 민원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스승의 날에 학생 대표 등이 공개적으로 전달하는 카네이션 외 교사에 대한 개별적인 선물은 일절 금지된다. 이처럼 강화된 청렴 기조가 최근 불거진 각종 악성 민원 사례와 겹치면서 교사들의 불안감도 커졌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2026 스승의 날 알아야 할 청탁금지법 Q&A’.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2026 스승의 날 알아야 할 청탁금지법 Q&A’.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
중학교 교사 이모 씨는 15일 예정된 학교 체육대회가 오히려 반갑다고 했다. 이 씨는 “과거 옆 학교 선생님이 (청탁금지법상) 허용되는 손 편지를 받았는데 괜히 다른 학부모에게 ‘편지 준 학생을 우대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 걸 봤다”라며 “학부모나 학생의 성의를 거절하는 과정에서 감정 소모가 큰데, 올해는 체육대회 일정에 묻혀 지나갈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과도한 법 해석을 둘러싼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경북교육청은 13일 교사 업무 포털에 게재한 ‘헷갈리는 청탁금지법 완벽 정리’ 배너에서 “학생이 자발적으로 케이크를 준비했어도 교사와 함께 나눠 먹는 건 불가능하다”고 적었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했다. 현장에서 “선생님은 못 드시는 스승의 날 케이크를 자기들끼리 나눠 먹으면서 학생이 뭘 배우겠냐”는 비판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홍종선 경북교육청 소통협력관은 “지난해 관련 문의가 많이 들어와 안내 차원에서 게시한 것”이라고 했다.

● 교사 94% “존중받지 못해”… 번지는 ‘교렉시트’

교사들의 사기 저하도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날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스승의 날을 앞두고 전국 유치원 및 초중등 교사 718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교사의 교육적 가치와 헌신이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문항에 응답자의 5.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는 교사도 34.4%에 불과했다.

교사와 ‘떠나다’를 뜻하는 영어 단어 ‘exit’를 결합한 ‘교렉시트’를 고민하는 교사도 늘고 있다. 최근 1년간 이직 혹은 사직을 고민한 적 있다고 답한 교사는 55.5%로 응답자의 절반을 넘었다. 교단을 떠나는 걸 고민하는 이유로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62.8%)이 1순위로 꼽혔다. 이어 ‘보수 등 처우 불만족’(42.1%), ‘학생의 교육활동 침해’(33.6%) 등의 순이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전국 교사 19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교사가 교육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조건이 보장된다’고 여기는 교사는 14.7%에 그쳤다. 이에 대해 교사노조는 “교사의 보람을 파괴하고 교직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교권 침해의 본질적 위험”이라고 했고 전교조는 “교사들이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은 법적 보호 장치와 구조 개선”이라고 밝혔다.
#스승의 날#카네이션#청탁금지법#학부모 민원#교권 침해#한국교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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