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수 아워스포츠네이션 대표가 서울 양천구 양동중학교 체육관에서 라켓과 셔틀콕을 들고 미소짓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2002년 말. 선배 따라 배드민턴코트에 갔다 아주머니들에게 농락당했다. 럭비까지 했던 명색이 체육과 출신으로서 자존심이 상했다. 칼을 갈았다. 그리고 2년 만에 전국 생활체육 배드민턴 최강자로 우뚝 섰다. 김대수 아워스포츠네이션 대표(56) 얘기다. 자존심 회복을 위해 열심히 셔틀콕을 쳤다. 어느 순간 배드민턴은 그의 인생에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됐다. 스트레스를 날려주고, 사업이 안 풀릴 때 새로운 아이디어도 만들어줬다. 25년째 셔틀콕을 때리며 살고 있는 이유다.
“초등학교 교사 때인 2002년 말 겨울이었습니다. 체육과 출신으로 특기 종목이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테니스를 치려고 했죠. 대학 때 럭비했는데 초등학교에서는 써먹을 수 없었죠. 그때 선배 한 분이 배드민턴을 배운다고 해 따라갔다가 봉변을 당했죠. 솔직히 아줌마들을 좀 우습게 본 측면도 있었죠.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자존심만 구겼어요. 그래서 오기가 생겼죠.”
이듬해 초 우연한 기회에 서울에서 고향인 전북 익산으로 교환교사를 신청해 내려간 게 ‘신의 한 수’가 됐다. 현지 클럽에 가입했는데, 코치가 배드민턴 명문 원광대 선수 출신이었다. 매일 3시간 이상 코트를 누비며 배우고 익혔다. 김 대표는 “코치에게 밥과 술을 사주며 붙어 다녔다. 매일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배드민턴장으로 달려가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갔다”고 회상했다.
2년 만에 생활체육 배드민턴 최고 등급인 A조에서 우승했다. 2005년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도 A조가 됐고, 전국 A조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전국 각지의 전국대회를 2주에 한 번 꼴로 쫓아다녔다. 우승을 포함해 2, 3위를 독차지했다. 배드민턴은 대회가 복식과 혼합복식만 치러진다. 파트너도 중요하다. “저와 잘 맞는 남녀 파트너를 찾아 함께 갈고 닦았다”는 그는 “제가 대회에 나가면 동호인들이 싫어할 정도였다”라며 웃었다. 사업 때문에 대회 출전을 자주하지는 못하지만, 4월 26일 서울 관악구 대회에서 준우승하는 등 아직 수준급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김대수 대표(왼쪽)가 대회에 출전해 경기하고 있다. 김대수 대표 제공.김 대표는 테니스코트의 약 절반인 13.4X6.1m(복식)에서 벌어지는 약 5g(4.74~5.5g)의 셔틀콕과 100g의 라켓이 벌이는 향연에 매료됐다. 순식간에 날아오는 셔틀콕을 받아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스매싱과 헤어핀이 코트에 꽂혔을 땐 환호가 저절로 나왔다. 10분만 코트를 누벼도 땀이 뻘뻘 흐른다. 몸싸움하며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전력 질주해 트라이를 찍는 럭비만 스포츠라고 생각했던 그의 편견이 깨졌다.
“솔직히 그동안 배드민턴을 ‘약수터 운동’으로 생각했어요. 가볍게 셔틀콕이나 주고받는 스포츠로 알았죠. 그런데 막상 해보니 엄청 운동량이 많았어요.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붙으면 전투가 됩니다. 서로 이기려고 셔틀콕을 넘기다 보면 전후좌우 움직이며 정말 과격하게 싸웁니다.”
배드민턴 시작 3개월 만에 10kg이 빠졌다. 최고 15kg까지 감량해 한때 98kg까지 나갔던 체중이 80kg 초반대로 떨어졌다. 사업하느라 바빠 몇 주 빠지면 금세 90kg을 찍었다. 하지만 바짝 코트를 누비면 다시 80kg 중반대로 떨어졌다. 지금은 아무리 바빠도 주 2회 2시간 이상씩 배드민턴을 치고, 주말에 대회에도 출전하고 있다.
김대수 아워스포츠네이션 대표가 서울 양천구 양동중학교 체육관에서 셔틀콕을 받아 넘기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김 대표는 중고교 시절 달리기를 잘했다. 엘리트 선수는 아니었지만, 가끔 학교 대표로 대회에도 출전했다. 자연스럽게 대학 체육교육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럭비에 빠졌다. 대학을 졸업한 뒤 헬스클럽 사업을 하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실패했다. 1999년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사업에 실패한 뒤 중등교사 자격증이 있어 교원 임용고시를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1999년 초등학교에 체육 전담 기간제 교사로 임용돼 보수교육을 마치면 정식 교사가 될 수 있는 제도가 생겼어요. 그래서 지원했고, 기간제 교사로 일하면서 100시간 이상의 보수교육을 받고 2000년 정식 초등학교 교사가 됐습니다.”
첫 발령은 서울 후암초등학교였다. 배드민턴을 배운 뒤 2007년 마포 소의초등학교로 옮겼다. 그곳에서 10년 넘게 배드민턴부 감독을 맡아 선수들을 길러냈다. 현재 국가대표로 활동하는 제자도 있다. 초등학교 교사들을 위한 ‘엘레민턴(Elementary+Badminton)’이란 동호회도 만들었다. 훈련도 함께하고 대회도 만들었다. 교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김대수 대표(오른쪽)가 서울시대회에 출전해 포즈를 취했다. 김대수 대표 제공.안정적인 학교생활을 하던 그는 공교롭게도 배드민턴 때문에 다시 사업에 발을 들였다. “생활체육 배드민턴 대회에 나갔는데 대진표를 손으로 그리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후배랑 스포츠 대회 대진표 및 일정을 잡아주는 운영 프로그램인 ‘스포넷’을 개발했어요. 그것을 생활체육 대회는 물론 학교 스포츠클럽 대회 플랫폼으로 제공했죠. 지금 모든 대회 운영 프로그램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2019년 교감으로 명예퇴직하고 생활체육인과 관련 단체, 기업을 연결해 생성되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생활체육 통합시스템 사업에 뛰어들었다. 스포츠와 IT 기술을 결합한 비즈니스다.
“배드민턴 대회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동호인들이 경기하고 싶어도 코트가 없어서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019년 경기도 용인에 14면짜리 전용 체육관 ‘스마트베뉴’를 만들어 각종 대회를 치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는 바람에 또 망했습니다.”
김대수 대표(왼쪽)가 한 대회에서 우승한 뒤 포즈를 취했다. 김대수 대표 제공.그래도 버텼다. 코로나19로 대면 체육활동이 멈춘 가운데 비대면 학교 스포츠 클럽 플랫폼을 개발했다. 코로나19로 학교 스포츠클럽 대회가 없어지자, 그래도 학생들 운동은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만들었다. 학생들이 특정 종목 운동 장면 동영상을 플랫폼에 올리면 ‘어느 정도 운동했는지를 판별해 주는 시스템’이다. 순위도 정할 수 있다. 교육부와 각 지방교육청이 이 플랫폼을 활용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동안 비대면 전국학교스포츠클럽 대회를 진행했다.
김 대표는 “두 번의 사업 실패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배드민턴으로 무장한 체력과 정신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리고 교직에서 인연을 맺은 분들의 도움도 컸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건강과 금융을 연결하는 간편결제 서비스 ‘스포페이(SpoPay)’도 운영을 시작했다. ‘카카오페이’ 등 일반 페이와 똑같으면서 모든 스포츠 활동에 쓸 수 있도록 특화했다.
김 대표는 올해 창설된 대한태그럭비협회장도 맡았다. 최윤 전 대한럭비협회 회장과의 인연으로 시작된 일이다. 태그럭비는 태클 없이 허리의 태그(띠)를 떼는 방식으로 진행돼 남녀 학생 누구나 부상 없이 럭비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김대수 대표(가운데)가 대한태그럭비협회 창립 총회에서 최윤 전 대한럭비협회 회장(오른쪽) 등과 카메라 앞에 섰다. 김대수 대표 제공.“태그럭비는 거친 몸싸움 대신 허리에 부착된 태그를 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종목입니다. 럭비 본연의 역동성은 유지하면서도, 신체 접촉을 금지하는 특징이 있죠. 그래서 안전합니다. 기존 럭비의 핵심인 태클이 없고, 대신 허리에 달린 태그를 떼면 공격을 멈추게 됩니다. 몸싸움이 사라지면서 부상 위험은 크게 줄죠. 그래서 어린이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김 대표는 대학 시절 꿈꾸던 럭비 저변확대를 태그럭비로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이들은 공 하나만 있어도 모여서 잘 뛰어놉니다. 거기에 규칙을 더하면 게임이 되고, 그게 곧 스포츠 교육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뛰지만, 점점 공간을 보고, 동료를 찾고, 전략을 세우게 되죠. 연령대별 필요한 운동량을 채워주면서도 자연스럽게 사고력과 협동심까지 함께 키울 수 있습니다.”
럭비의 본질은 함께하는 스포츠다. 공을 앞으로 던질 수 없어 팀워크 없이는 공격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태그럭비 역시 이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 김 대표는 “혼자 잘해서 이길 수 없는 스포츠가 바로 럭비”라며 “태그럭비는 협력을 필수로 만들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려와 희생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김대수 아워스포츠네이션 대표가 서울 양천구 양동중학교 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치며 활짝 웃고 있다. 2002년 말 아줌마들에게 농락당한 뒤 배드민턴을 시작한 김 대표는 2년 만에 생활체육 배드민턴 전국 최강에 올라 25년째 셔틀곡을 때리며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막 창립한 협회이지만, 대한체육회 가맹단체 정회원을 목표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대학 시절 즐겼던 럭비와 25년 지기 배드민턴, 두 종목 모두 이제 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럭비에서 투지와 협동심을 키웠다면 배드민턴에서는 인생의 태도를 배웠어요. 상대방이 나보다 잘 치더라도 꾸준히 파고들면 빈틈이 보입니다. 그게 배드민턴의 묘미예요. 강한 상대를 만나 다양한 방법으로 무너뜨리려고 노력하다 보면 안 풀리던 사업의 해결책도 떠오르죠. 배드민턴을 통해 건강도 얻고 사업 아이디어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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