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전력 차출, 기계적 대응만이 능사 아니다[손효주 기자의 국방이야기]

  • 동아일보

6일 미군 대형 수송기인 C-5와 C-17이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기지에 계류 중인 모습. 평택=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6일 미군 대형 수송기인 C-5와 C-17이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기지에 계류 중인 모습. 평택=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손효주 정치부 기자
손효주 정치부 기자
“주한미군 전력 운용과 관련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지난달 28일 미국의 이란 공습이 시작된 이후 군 당국이 반복적으로 밝힌 입장이다. “한미는 상시적으로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는 설명 역시 예외가 없다.

최근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기지에는 C-5 갤럭시를 포함한 미군 대형 수송기가 이례적으로 대거 집결했다. 오산기지 외부에 있던 방공무기 패트리엇도 수송기 집결 시기를 전후해 마침 이 기지로 이동했다. 이들 수송기는 수차례 이륙해 중동 방향으로 향하고, 오산기지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주한미군 전력이 대거 한반도 외부로 전개되는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다. 지난해에도 주한미군 패트리엇의 중동 전개에 활용된 C-17이 이란 공습 이후 최소 11차례 오산기지를 이륙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패트리엇 등 중요 자산을 ‘영끌’ 수준으로 반출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전례 없는 움직임을 지나치기는 어렵다. 대북 방어의 핵심 무기인 주한미군 전력이 얼마나 어디로 전개됐는지는 한반도 안보와 직결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기자들 질의에 돌아오는 건 공식 대응 문안(Press Guidance)인 판에 박힌 두세 문장이 전부. 국방부는 9일 정례브리핑에서도 관련 질의에 같은 문안을 반복한 뒤 “안보에 대한 불안감이나 불필요한 혼란이 야기되지 않도록 관련 보도를 자제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한국군 전력도 아닌 주한미군 전력 문제인 만큼, 대한민국 국방부가 전력 차출 여부를 구체적으로 확인해 주는 건 월권이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국방부의 언론 대응 옵션이 공식 문안의 반복이나 침묵, 보도 자제 요청에만 한정돼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런 대응이 계속될수록 눈앞에서 벌어지는 수송기 이착륙과 패트리엇 이동을 근거로 한 개연성 높은 추정이 정보의 공백을 메우기 마련이다. 안보 불안을 줄이려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시도 없이 침묵과 상투적 답변만 반복되는 현재 상황은 여러가지 의혹과 불안만 확산되기 좋은 토양이 될 뿐이다.

물론 의혹 확산을 막겠다고 정부가 “주한미군 패트리엇 8개 포대 가운데 현재까지 몇 개 포대가 반출됐고, 언제까지 한반도로 복귀한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숫자를 공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맹국 정부가 미군의 세부 전력 현황을 공개하는 건 동맹 파괴 행위나 다름없다.

다만 구체적인 전력 반출 규모나 반출 여부를 확인해 주지 않더라도 안보 공백에 대한 불안을 줄일 방법은 있다. 가정을 전제로 “주한미군 전력이 중동 사태 대응 등을 위해 일시적으로 반출되더라도 한반도에 남아 있는 방어 전력은 충분하며 특히 한국군 방공 체계는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점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정보공개 범위는 제한하더라도 한미가 어떤 원칙 아래 주한미군 전력의 역외 전개를 협의·통보하는지, 우리 군 자체 방어망이 어느 수준에 올라와 있는지 정도는 설명할 수도 있다. 이런 설명을 내놓는 것만으로도 수송기의 빈번한 이착륙이 키운 안보 불안을 상당 부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실전 배치된 K방공무기 ‘천궁-2’는 최근 이란이 발사한 탄도미사일과 무인기 공격에 대해 90% 이상 수준의 요격률을 기록했다. ‘한국판 패트리엇’으로 불리며 실전에서 성능을 입증한 이 무기는 이미 2020년부터 한국군에 배치됐다. 한국군의 패트리엇 역시 8개 포대 안팎으로, 핵심 시설에 대한 포인트 방어를 담당한다. ‘한국판 사드’로 불리는 ‘L-SAM’은 내년부터 2년간 서울 남부와 전라 등 4개 거점 지역에 실전배치될 예정이다.

동맹의 기밀을 보호하고 외교적 절차를 지키는 것과 안보 공백 우려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을 제공하는 일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전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전시작전통제권의 조속한 전환이 현 정부의 대표적 국정 과제인 만큼, 주한미군 전력의 일시적 차출은 한국군의 독자적 방위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도 된다”며 “정부가 전작권의 조속한 전환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이번 상황을 계기로 우리 군의 방어 역량을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데 더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근 오산기지에서 목격된 모습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국가안보전략(NSS) 등에서 거듭 강조한 ‘전 세계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 전략이 눈앞에서 작동한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 전략적 유연성이 한반도에서 실제로 가동되기 시작한 지금, 이에 따른 안보 불안을 줄이는 출발점은 정부가 언론 대응에 있어서도 전략적 유연성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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