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지역의료 살리려면 선택과 집중을[기고/박인숙]

  • 동아일보

박인숙 울산대 의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박인숙 울산대 의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심장수술 수련병원 89곳 중 68곳 레지던트 ‘0’명… 명맥 끊길 판.”

9월 26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심장흉부외과는 근무 강도가 높고 의료소송의 위험이 커 필수의료 중 대표적인 기피과로 꼽힌다. 전국 수련병원 89곳 중 68곳이 전공의(레지던트)를 확보하지 못해 머지않아 ‘수술 절벽’이 우려된다는 내용이다.

기사를 보면 필수의료 붕괴의 심각성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각 수련병원이 원하는 만큼 전공의를 확보할 수 있다면 ‘수술 절벽’ 문제는 해결될까?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심장흉부외과 수련병원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수술 건수가 일정 규모 이상 확보되지 않으면 전공을 유지하기 어렵다. 대학병원이라도 수술 건수가 적으면 환자가 오지 않는다. 환자가 적은 진료과목은 과감히 접고, 다른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환자 안전은 물론이고 의사와 병원 경영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이는 심장흉부외과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병원이 모든 진료과목에서 원하는 수의 전문의나 세부 전문의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규모의 경제 개념을 적용해 각 병원이 과감하게 분야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전문의들이 100여 개의 수련병원으로 흩어지거나 개원하게 되면, 전문의 본인들도 불만이 생기고 수련병원에는 전공의 지원이 줄어 결국 환자 진료가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붕괴는 원가에도 못 미치는 건강보험 수가와 사법 리스크에 더해 이런 구조적 문제들을 방치해 온 결과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도 전문 인력들이 400개가 넘는 응급실과 병원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응급실이 응급의학과와 지원과의 전문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의료진 확보가 어려운 응급실은 문을 닫고, 다른 응급센터로 인력이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

응급실 뺑뺑이의 또 다른 원인으로 사법 리스크를 빼놓을 수 없다. 응급실에 특정 질환 전문의가 없어 환자를 받지 않으면, 환자는 다른 응급실을 전전하게 되고 의사와 병원은 진료 거부로 고발당한다. 반대로 특정 질환 전문의가 없는데도 환자를 받아 비전문가 의사가 수술을 했을 경우, 결과가 좋지 않으면 민사는 물론이고 형사고발까지 당한다. 의료사고로 의사를 형사 처벌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지역의료를 살리는 효과적인 방법 역시 선택과 집중, 그리고 이송 시스템의 확보다. 지역병원들은 모든 분야를 다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일부 취약 분야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며 필수의료 중 강점을 지닌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또한 앰뷸런스와 필요한 지역에는 헬기를 확보하고, 오지의 경우 소방·경찰·운수회사·봉사단체와 협력해 빠르고 효율적인 환자 이송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원격의료, 재택진료, 순회진료도 좋은 대안이다.

분만병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지역에 분만병원을 새로 짓기보다, 병원들의 통폐합을 유도해야 한다. 결국 모두가 한 발씩 양보해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잘하는 분야에 집중해 모두가 어려워지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병원장, 학회, 교수들의 통 큰 결단과 이를 추진할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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