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입구에 걸려있던 이 그림은 상반신 누드의 젊은 남자를, 그 몸에서 초자연적인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 남자는 앞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진정한 너 자신이 되라’고 부추기는 듯 했다.
거짓으로 꾸며낸 페르소나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였다. …
그림 속 남자의 눈을 충분히 오랫동안 바라본다면, 진정한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다.”
이 글은 오스트리아의 화가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세미 누드 자화상’을 본 감상입니다. 이 감상을 남긴 사람은 소장가인 루돌프 레오폴드의 아들인 디트하르트 레오폴드.
루돌프 레오폴드는 게르스틀의 자화상 두 점을 집에 나란히 걸어 두었고, 아들 디트하르트는 어린 시절 보았지만 여전히 생생한 그 때의 느낌을 글로 적습니다.
이후 오스트리아 빈 레오폴드 미술관 소장품이 된 이 작품은 지금 한국 관객을 만나고 있습니다.
디트하르트가 어린 시절 이 작품의 강렬함에 시선을 빼앗긴 것처럼, 저 역시 이 푸른 자화상을 처음 보고 게르스틀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느꼈습니다.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지만, 깊은 바닷물 속에 잠긴 듯 약간은 어두움이 감도는 푸른 색.
그 가운데 타월로 하반신을 간신히 가린 채 관객을 똑바로 쳐다보는 누드의 남자.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것은 자신감이 넘친다는 이야기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예민한 분위기가 풍겨져 나와 눈을 떼기 어려운 그림입니다.
확신과 불안 사이를 오고 가는 파란만장한 롤러코스터. 이 인물이 살았던 삶도 그랬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청년
1902년 19세인 리하르트 게르스틀 게르스틀은 어릴 때부터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무려 15세에 아카데미에 입학하며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카데미의 보수적인 스타일이 맞지 않음을 깨달은 그는 3년 만에 아카데미를 떠납니다.
그 후 자신만의 작업실을 마련하고 ‘독학’을 시작하는데요. 이 때 그림을 그린 것은 물론 언어, 철학, 문학, 음악을 공부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당시 빈 사회를 뒤흔들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책은 물론 철학자 오토 바이닝거의 저서 ‘성격과 성’, 헨릭 입센과 프랑크 베데킨트의 극작품 등 당대 사회적 금기를 깬 연구와 문학 작품을 탐독했죠.
리하르트 게르스틀, 자화상, 1907~1908년. 레오폴드 미술관 소장품. 빈 분리파가 조형적인 탐미주의에 빠져들어 새로운 표현을 고민했다면, 게르스틀은 새로운 세상을 보는 ‘눈’을 갖고 싶어 했습니다. 이 때문에 클림트를 비롯한 빈 분리파의 작품은 ‘너무 장식적이다’라고 비판하고, 극도로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만의 신념을 지키고 타협하지 않으려는 ‘확신’은 그에게 무기가 되었지만,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 속에서 ‘불안’을 느끼게 하는 감옥도 되었습니다.
클림트를 거부한 신인 작가
게르스틀이 추구했던 가치관은 그가 그린 인물화에서 드러납니다. 클림트의 초상화가 중산층 주문자의 취향에 맞춰 거슬리지 않는 세련된 조형미를 자랑했다면, 게르스틀은 자신의 앞에 있는 인물의 기질을 포착해서 예민하게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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