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이재명 때문이다”[김지현의 정치언락]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4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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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3일 오후 광주 광산구 남부대학교 협동관에서 열린 박시종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박 전 행정관은 이 전 대표의 비서실 부실장을 역임했으며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광주=뉴시스
“정권을 비판하고 견제하려면 야당이 떳떳해야 합니다. 만약 정권이 야당의 약점을 안다면 그 정권이 야당을 무서워하겠습니까?”

최근 이재명 대표를 향해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의 3일 발언입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텃밭인 광주에서 열린 박시종 전 청와대 행정관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죠. ‘이재명의 민주당’이 누굴 욕할 자격이 있느냐는 취지입니다.

21대 국회가 끝나가는 요즘 민주당은 안팎으로 시끌시끌합니다. 원내지도부는 ‘검사 탄핵’에 이어 ‘김건희 특검’까지 정기국회 내에 밀어붙인다고 합니다. 총선이 4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거제를 둘러싼 당내 갈등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강경파들은 매일같이 막말을 이어가고 있고요. 선거 전문인 민주당이 대체 총선을 코앞에 앞두고 왜 이러나 생각해봤는데, 결국 공통으로 이 혼란의 배경엔 이 대표가 있는 듯합니다.

● ‘이재명 수사 검사’들 줄줄이 탄핵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1월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눈을 감은 채 앉아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왼쪽)가 12월 1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검사 탄핵 소추안에 투표하는 모습. 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검사 2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 속에 사실상 단독 처리됐다. 동아일보 DB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왼쪽)가 12월 1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검사 탄핵 소추안에 투표하는 모습. 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검사 2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 속에 사실상 단독 처리됐다. 동아일보 DB
우선 ‘검사 탄핵’부터 볼까요. 민주당은 올해 9월 안동완 검사를 시작으로 헌정사상 유례없는 검사 탄핵을 이어가고 있죠. 최근까지 두 달간 민주당이 ‘실명 저격’에 나선 검사만 16명째인데요. 이달 1일 본회의에서 민주당이 탄핵안을 강행 처리한 이정섭 검사의 경우 실제 여러 비위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처가가 운영하는 골프장과 처가 쪽 자택에서 근무하는 일반인들의 범죄기록 무단 조회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의혹과 코로나19 때 스키장 리조트를 기업 관계자 도움을 받아 이용했다는 의혹 등이죠. 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지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쏘아 올린 공입니다. 논란이 커지자 검찰도 뒤늦게 이 검사 의혹과 관련된 골프장과 리조트를 압수 수색을 하는 등 ‘읍참마속’에 나섰습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그의 위장전입 의혹 등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고요. 민주당으로선 분명한 성과입니다.

그런데 이 검사는 수원지검에서 이재명 대표의 ‘쌍방울 그룹 대북 송금 의혹’ 수사를 지휘하던 인물입니다. 이 부분에서 충분히 잘 쌓아뒀던 민주당의 명분이 와르르 무너지는 거죠. 충분히 의미 있는 의혹 제기마저도 ‘이재명 사법리스크’와 엮이는 순간 ‘결국 또 방탄?’이라는 반발을 사는 거죠. 심지어 민주당은 이 검사 후임으로 새로 이재명 수사를 맡은 안병수 수원지검 2차장 직무대리도 곧장 공격했죠. 안 검사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가까운 ‘친윤 사단’이며 “수사 무마 및 수사기밀 유출 의혹이 있다”는 겁니다.

이러니 당연히 여권에서는 “민주당이 대놓고 ‘방탄 탄핵’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요.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3일 “민주당이 당 대표 사법리스크에 휩싸여 판사·검사를 겁박하고 내년 총선까지 더욱 난폭한 정쟁을 유발할 것으로 예견된다”고 했습니다. ‘다 이재명 때문’이라는 겁니다.

● “‘막말의 맏형’ 이재명”
요즘 정치부 기자들은 밤이고 주말이고, 강경파 현역 의원 및 출마 예정자들의 출판기념회 생중계를 지켜보느라 바쁩니다. 이들은 ‘상부상조’하듯 서로의 출판기념회를 찾아 격려사를 해주고 있는데, 여기서 연일 논란성 발언이 쏟아지고 있죠.

총선을 앞두고 일찍부터 터진 막말 논란에 당 지도부는 노심초사하며 거듭 주의를 당부하고 있지만 강경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 폭탄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11월 19일 열린 민형배 의원의 출판기념회에선 ‘설치는 암컷’ 발언부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총선에서 200석 달성’ 등 당 지도부가 하지 말라는 말만 골라서 하는 ‘막말 종합 세트’가 펼쳐졌죠. 지난주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출판기념회 생중계를 지켜보던 중 야권 원로라는 함세웅 신부가 나와 “방울 달린 남자들이 여성 하나보다 못한 거예요.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총리, 다 남자들이잖아요”라고 목소리를 높일 땐 정말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인가” 싶더군요.

함세웅 신부가 11월 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송영길의 선전포고’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축사하는 모습. 그는 최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출판기념회에서 ‘방울 달린 남자’라는 표현을 써 논란을 일으켰다. 뉴스1
막말은 당 지도부가 자제시키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이재명 대표는 “정치인에게 말 한마디는 천근의 무게를 지녔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늘 진중하고 세심해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만 되풀이하고 있죠. 당연히 당내에서 “지도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며 부글부글하는 거고요. 왜 그럴까요. 결국 이것도 “이재명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선 후보이던 2021년 12월 막말 및 각종 논란 등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 동아일보 DB
국민의힘 장예찬 청년최고위원은 “(막말) 뒤에는 결국 이 대표가 있다. 이 대표가 경고하지 않으니까 최강욱 전 의원도 (‘암컷 발언’ 논란에) 사과도 하지 않고 오히려 적반하장격으로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 대표의 과거 막말 전력도 이유로 꼽히죠. 본인도 과거 과격한 막말로 논란이 됐었는데, 어떻게 남을 지적하겠냐는 겁니다. 장동혁 원내대변인은 “막말의 맏형 격인 이재명 대표가 징계는커녕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줄 것을 알기에 (강경파 의원들이) 전혀 두려움도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 이재명의 “생존형 DNA” 탓
4년 만에 또다시 ‘꼼수 위성 정당’ 논란이 되풀이되는 배경에도 이재명 대표가 있습니다. 이 대표는 11월 28일 유튜브 라이브에서 “(선거에서)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현실의 엄혹함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죠. 총선에서 한 석이라도 더 얻기 위해선 자신이 지난 대선 때 “위성정당은 절대 안 된다, 금지할 것”이라고 했던 약속도 깰 수 있다는 취지로 들립니다. 민주당 의원 75명이 ‘위성정당 방지법’을 당론으로 채택해달라 요구하고 있지만, 국민의힘이 어떤 수를 쓸지 모르는 상황에서 위험하고 나이브한 주장이라는 거죠.

결국 이 대표의 ‘현실론’은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대로 2016년 총선까지 적용됐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하거나, 현행 준연동형제를 유지하더라도 위성정당 방지법의 당론 채택은 어렵다는 겁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1월 30일 선거제 개편 논의를 위해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해 앉아 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 30명에 가까운 의원들이 발언에 나선 가운데, 이 대표가 주장한 대로 ‘현실론’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과 ‘위성정당 방지에 대한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론’이 팽팽하게 맞섰다. 뉴시스
이 대표의 발언 직후 친명계도 기다렸다는 듯 “원내 1당을 뺏겨선 안 된다. 손가락 빨고 하늘만 쳐다볼 수 없는 것 아니냐”(안규백 의원) “(국민의힘이) 총 들고 있는데 내가 무기를 버리면 우리 가족이 다 죽는 것 아니냐”(정청래 의원)고 가세했고요. 송영길 전 대표는 아예 대놓고 ‘이미 탈당한 내가 만들면 누가 위성정당이라 욕하겠느냐’며 회유에 나섰죠. 내년 총선에서 현행 준연동형제를 유지하면 자신이 비례전문 위성정당 ‘윤석열 퇴진당’을 만들 테니 손잡고 200석 이상 압승을 거두자는 겁니다.

이에 대해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3일 민주당 혁신계 의원 모임인 ‘원칙과상식’ 세미나에서 “이 대표의 생존주의적 DNA”를 이유로 꼽았습니다. 그는 “내 생각에 이 대표의 정치적 DNA는 추상적, 거시적인 것을 굉장히 싫어하고, 단기적이고 본능적, 실용적 생존에 특화돼 있다. 생존주의적 DNA가 굉장히 강하다”라며 “이 대표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핵심적으로 다른 점은, 노무현은 민심의 바다에 대한 중장기적 믿음이 굉장히 강하다”라고 분석했더군요.

사실 정치판처럼 ‘명분’이 더 중요한 바닥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이 대표가 ‘실리’를 내세우며 명분을 포기하려는 건 ‘원내 1당’에 대한 강한 집착 때문일 겁니다. 물론 어느 당 대표나 선거 승리가 목표이겠지만 ‘사법리스크’가 산적해 있는 이 대표는 누구보다 다수 의석에 대한 열망이 강해 보입니다. 친명 의원 및 이 대표 측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년 총선에서 지금만큼의 의석을 지켜내지 못하면 ‘감옥행’이라는 우려가 적잖이 깔려있더군요. 이 대표가 자신의 ‘측근’이라고 인정했던 김용 민주연구원 전 부원장이 최근 다시 법정구속된 뒤로 불안감이 더 커지는 모습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전 대표의 말로 칼럼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전 대표는 11월 28일 ‘연대와 공생’ 토론회에서 처음으로 이 대표를 직격하며 “어쩌다 정책을 내놓아도 사법 문제에 가려지곤 한다”고 비판했죠. 결국 다 이 대표 때문이라는 겁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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