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하고 떠난 ‘내 자랑’ 학준이”…엄마가 보낸 두 해 [따만사]

  • 동아닷컴
  • 입력 2023년 6월 8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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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자랑인 학준이. 학준이는 장기기증으로 다섯 명에게 새 삶을 선물했다. 사진=가족 제공
가족의 자랑인 학준이. 학준이는 장기기증으로 다섯 명에게 새 삶을 선물했다. 사진=가족 제공
장기기증자인 이학준 군은 엄마에게 영웅이자 자랑이다. 아들이 다섯 명에게 건강한 삶을 선물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난치성 뇌전증을 앓던 학준이가 갑작스럽게 쓰러진 건 2021년 10월. 학준이는 신속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뇌사 판정을 받았다. 가족은 고심 끝에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기로 했다.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와 그 가족의 절박한 심정을.

학준이의 어머니 이소현 씨는 “아이가 열여덟 살에 장기를 기증했다. 학준이가 난치성 뇌전증으로 투병해 온 17년간 고통 가운데 질병으로부터 구원을 간절히 바라며 살아왔다. 환자와 가족의 간절한 심정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고,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기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저희에게 큰 위로가 됐다. 장기기증은 아이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학준이도 가족의 결정을 지지하고 응원했을 거라고 이 씨는 확신했다. 아들과 지나온 나날을 돌아보면 “엄마, 내 뜻도 바로 이것!”이라고 말하는 학준이를 충분히 그려볼 수 있었다. 맑고 심성 고운 아이의 마지막을 위해 그 길이 가장 좋은 길이었다. 뇌사 판정을 받고 난 후, 이 씨의 마지막 기도는 ‘장기기증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였다. 마침내 이 씨의 바람은 이뤄졌고, 학준이의 기증은 가족에게도 큰 선물이 됐다.

해가 두 번 바뀌었지만, 이 씨는 후회한 적이 없다.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은 해가 갈수록 강해졌다. 물론 아들이 많이 보고 싶을 땐 어쩔 수 없이 슬퍼지곤 했는데, 슬픔이 슬픔으로만 머물지 않고 학준이가 하고 간 일이 자랑스럽게 다가왔다. 아이가 그 길을 기쁘게 걸었다는 게 느껴졌다.

이 씨는 “학준이를 보내고 우리 가족은 친가⸱외가 모두, ‘우리도 장기기증을 하자, 이게 맞는 거 같다’고 한마음이 되었다. 아이가 보고 싶을 때 누군가를 살리고 갔다는 생각이 같이 따라오더라. 그저 슬픈 일로 끝나지 않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도 기증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해를 거듭할수록 참 잘했다는 생각”이라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이 씨는 현재 학생들에게 생명나눔을 홍보하고 교육하는 강사로 활동 중이다. 학준이의 자랑스러운 일을 더 오래 기억할 방법을 찾던 중에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식구들에게서 제안이 왔다. 사례를 경험한 기증자 가족이 홍보와 교육을 맡아주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 기증원의 기대였다.

이 씨에게 전문 과정 이수는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 치유의 과정이었다. ‘정말 좋은 일을 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는 이 씨의 곁에서 함께 울어주기도 하고 등을 토닥여주기도 했다.

이 씨는 “현장에서 우리 아이 또래들을 만난다. 너무너무 우리 아이 같고, 다 내 자식 같더라. 생명나눔 홍보도 하지만, 생명존중 교육도 함께 한다. 너희들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제 사례로 보여주니까 현장에서 아이들이 울기도 하고, 오히려 저를 위로해주기도 하더라. 어떤 아이는 제 등을 쓰다듬으면서 울고 가더라. 참 좋은 경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학준이네 가족이 바라는 건 회복한 수혜자가 가족과 화목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이다. 기증자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가족은 말했다.

이 씨는 “우리 기증자 유가족들은 다 같은 마음이다. 수혜자들 모두 건강이 회복되고 가정과 삶의 자리로 돌아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사시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수혜자분께서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가 없다. 본인이 받은 것도 축복이다. 선물 같이 받았기 때문에 감사히 여기면서 몸 관리 잘 하고, 가족과 건강하고 화목하게 잘 살면 좋겠다. 바람이 있다면, 다른 이들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고 나누고 베풀면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곳곳에선 “누군가의 끝이 아니라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사진=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한국장기조직기증원 곳곳에선 “누군가의 끝이 아니라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사진=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여전히 어려운 장기기증 권유…기증자 가족은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동주현 장기구득 코디네이터는 최근 학준이네 가족의 바람처럼 살아가는 한 수혜자를 만난 적이 있다. 기증자 추모행사에서 사용할 감사 인사 영상을 제작하면서다. 수혜자는 동 코디네이터에게 장기기증을 받고 나서 그간 즐겨오던 술⸱담배를 단번에, 완전히 끊었다고 밝혔다.

동 코디네이터는 “그 수혜자 분이 기증자와 기증자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을 거듭 표현하셨다. 그분이 제게 ‘기증자의 납골당에 꽃 한 송이라도 두고 싶은데 주소를 알 수 없느냐’고 물으시더라. 하지만 개인정보라 알려드릴 수가 없었다. 그분이 ‘기증을 받고 인생이 많이 달라졌다’고, ‘술⸱담배 이런 건 당연히 끊고 건강하게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고, ‘기증자 가족에게 직접 전할 수는 없지만, 너무 감사하고 열심히 살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동 코디네이터는 2018년 기증원에 입사한 6년 차 베테랑이다. 장기기증 절차를 진행하려면 기증자 가족의 동의가 필요한데, 지금까지 100~120명의 기증자 가족이 동 코디네이터에게 기증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장기기증 권유는 여전히 어렵다. 자신을 소개할 때부터 보호자의 불편함이 염려된다. 장기기증은 시간과의 싸움이라 여유롭게 다가갈 수도 없다. 지난해에만 2912명이 누군가의 이식을 기다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하루 8명이 이식을 받지 못하고 숨진 셈이다.

그는 “정말 어려운 상황이 맞다. 보호자 분에게 감히 이런 얘기를 꺼내야 한다는 게 어렵다. 명함을 꺼낼 때부터 보호자 분이 불편하실 내용이 될 거라 생각한다. 지금 상황도 너무 안 좋으신 분인데, 기증과 관련한 설명 자체를 받아들이시기 힘드실 거다. 그런 상황임을 저희도 충분히 알고 있다. 예전보다는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불편해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기증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 코디네이터에겐 잊지 못할 기증자 가족이 있다.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도 기증 결과를 설명하는 동 코디네이터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기증자의 남편이다. 기증 결정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어서 고마움이 더욱 컸다고 그는 밝혔다. 더구나 이 가족은 신혼에 갓난아기까지 둔 가정이라 슬픔이 큰 상황이었다.

그는 “기증 절차를 진행하려면 가족의 동의가 필요한데, 법률적인 순위에서 배우자가 가장 위에 있어 저희가 기증자 남편 분을 만나 뵙고 동의를 받아 진행했다. 수술 들어가시기 전에 임종 면회라고 해서 마지막 모습을 보실 수 있도록 시간을 마련해 드리는데, 감염 문제 등의 이유로 중환자실에 아기는 들어올 수 없었다. 남편 분이 휴대전화 영상 통화로 아내에게 아기를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시는 걸 봤다. 이후에 남편 분에게 ‘어떤 부분이 기증됐고, 몇 분에게 새 생명을 드리게 됐다’고 설명하는데, 덤덤해 보이셨던 그분이 완전히 무너지시더라. 그러면서 오히려 저희에게 감사하다고 말씀을 주시더라. 신혼이시고 아기도 갓난아기인데, 그런 상황에서 기증을 결정해주신 것만으로 저희가 감사한데, 오히려 저희에게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 말했다.

동주현 장기구득 코디네이터는 2018년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입사한 6년 차 베테랑이다. 장기기증 절차를 진행하려면 기증자 가족의 동의가 필요한데, 지금까지 100~120명의 기증자 가족이 동 코디네이터에게 기증 의사를 밝혔다. 사진=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동주현 장기구득 코디네이터는 2018년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입사한 6년 차 베테랑이다. 장기기증 절차를 진행하려면 기증자 가족의 동의가 필요한데, 지금까지 100~120명의 기증자 가족이 동 코디네이터에게 기증 의사를 밝혔다. 사진=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흐르는 계절도 모르게 만든 아픔…기증자 가족은 용기까지 선물했다
김영희 씨는 기증자 가족⸱장기구득 코디네이터의 어려운 결정과 권유로 장기 이식을 받아 건강을 회복한 수혜자다. 이름도 모르는 기증자에게 김 씨가 새 삶을 선물 받은 건 2004년 11월. 유방암 진단으로부터 4년이 지나서다. 긴 투병은 김 씨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고통이었다. 기증자가 수혜자 가족의 오랜 아픔까지 치유한 셈이다. 김 씨의 가족은 육체적인 괴로움을 겪고 있는 김 씨의 걱정을 염려해 기증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장기기증이 필요하다는 말을 가슴에 묻어두고 꺼내지 않았다.

김 씨는 “투병 중에는 장기기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치료하면 되는 것으로만 알았다. 수술을 앞두고서야 가족이 누군가의 심장을 이식받는다고 말해줬다. 당시 가족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남편이 훗날 계절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투병 중 김 씨는 심장의 펌프 기능이 나빠지는 심부전을 겪었다. 하지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김 씨의 호흡곤란 증세는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은 지인들로부터 ‘아팠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한 상태다.

김 씨는 “수술 후 병상에서 호흡곤란이 사라진 것을 느끼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증세가 사라진 것이 기뻤는데, 장기기증 덕분에 건강을 회복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증자와 기증자 가족에 대한 고마움이 더욱 커졌다”고 했다.

인생 2막을 연 김 씨는 복직해 10년 더 직장생활을 했다. 기증자 가족, 이식 수혜자가 함께 노래하는 ‘생명의 소리’ 합창단 활동도 이어갔다. 처음에는 기증자 가족을 볼 때마다 죄스러웠다. 그런 김 씨에게 기증자 가족들은 삶을 살아갈 용기까지 선물했다.

김 씨는 “처음에는 합창단에서 기증자 가족들을 뵙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분들이 저의 건강을 물으시며 용기를 주시는 거다. 그분들 덕분에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김 씨가 장기기증을 받아 건강하게 생활한 지도 어느덧 18년하고도 6개월가량이 지났다. 그 사이 복직했던 직장에서는 명예퇴직을 했다. 하지만 김 씨의 인생은 현재진행형이다. 김 씨는 지금도 아이들의 학습을 지도하면서 삶의 의미를 계속 찾아가고 있다. 그건 학준이네 가족의 바람인 “수혜자가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가족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한 가지 더 소망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위해 베풀면서 살면 좋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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