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표류’ 70대 숨지기 전… 25분 거리 외상센터에 빈 병상-의료진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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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70대 남성이 중상을 입고 약 100km 떨어진 병원으로 2시간 넘게 이송되다가 사망했을 당시, 구급차로 25분 걸리는 35km 거리의 외상센터를 포함해 더 가까운 병원 3곳에는 수술 의사와 중환자실 병상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가뜩이나 부족한 필수의료 인력과 인프라를 응급환자와 실시간으로 연결해주는 시스템마저 부실한 탓에 환자를 살릴 골든타임을 흘려보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119구급대는 전날 0시 38분 경기 용인시에서 사고를 당한 구모 씨(74)를 구조했다. 당시 35km 떨어진 국군수도병원 국군외상센터에선 외상외과 전문의 2명이 당직을 서고 있었고, ‘민간용’ 중환자실 병상도 4개 비어 있었다. 같은 시간 서울시가 ‘중증외상 최종치료센터’로 지정한 고려대 구로병원과 국립중앙의료원에도 중증외상 환자를 수술할 의료진과 병상이 있었다. 이 병원들은 사고 현장에서 약 60km 떨어져 있다.

하지만 119는 인근 병원 12곳에 구 씨를 받아줄 수 있는지 문의하면서 국군외상센터나 서울시 중증외상 최종치료센터에는 전화하지 않았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이 센터들이 평상시에 환자를 받아주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고 주장했다.

당정은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표류’가 반복되자 재발 방지책을 내놨다.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는 31일 오후 국회에서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를 열고 △수술 의사와 빈 병상을 이송 단계부터 파악할 수 있는 ‘원스톱 응급이송 시스템’ 구축 △‘지역응급의료상황실’을 통한 환자 수용 의무화 등 대책을 실시하기로 했다.



병상 있던 외상센터 5곳, 문의 누락… 119-병원 소통체계 정비해야


구급대, 용인 70대 환자 구조 직후
외상센터 없는 인근 병원에 전화
의정부 이송때도 서울 2곳 빈 병상
골든타임 놓쳐… 이송체계 개선을
지난달 30일 승용차에 치여 다친 구모 씨(74)가 138분간 수술 의사를 찾아 ‘표류’하다가 숨진 사건은 근본적으로는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지키는 의료진이 부족한 탓이다. 적은 수의 의료진이라도 응급환자와 바로 연결되면 생명을 구할 수 있는데, 이날 현장에서는 이 시스템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구 씨의 경우 수용 가능한 외상센터 5곳에 대기 중인 의료진과 빈 중환자실 병상이 있었는데도 제때 연락이 닿지 않았다.

● 병상 있는 외상센터에 연락 안 해

사고 당일 0시 38분 119구급대가 구 씨가 쓰러져 있는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가까운 권역외상센터인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은 중환자실에 빈 병상이 없었다. 구 씨처럼 여러 장기가 손상됐는데 혈압까지 낮아진 환자는 가슴이나 배를 연 뒤 급한 출혈부터 막고 절개 부위를 닫지 않은 채 중환자실에 입원시킨다. 그 후 상태가 안정되면 2차, 3차 수술을 한다. 중환자실에 병상이 없는데 수술부터 할 수 없는 이유다.

당시 사고 현장에서 구급차로 1시간 거리 내에는 아주대병원 말고도 권역외상센터가 4곳 더 있었다. 가까운 순서대로 단국대병원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가천대 길병원, 의정부성모병원이었다. 119구급대원 현장응급처치 표준지침에 따르면 중증외상 환자는 가까운 권역외상센터나 외상 전문의 수련센터로 이송해야 한다.

그런데 119는 그중 중환자실이 가득 찬 단국대병원과 가천대 길병원에만 수용 가능 여부를 문의했다. 같은 시간 중앙응급의료센터를 통해 119상황실과 현장 구급대에 공유되는 ‘병상 상황판’에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과 의정부성모병원 권역외상센터에 중환자실 여유가 있다고 표시돼 있었다. 그런데도 119는 외상센터가 없는 인근 병원에만 추가로 전화를 돌렸다. 국군외상센터와 서울시 중증외상 최종치료센터까지 고려하면 구조 직후 5곳 외상센터에 문의를 누락한 셈이다.

119구급대는 구 씨를 구조한 지 약 1시간이 지난 오전 1시 43분에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부터 ‘수용 가능’ 안내를 받았고, 3분 후 의정부성모병원에서도 같은 안내를 받았다. 119구급대는 그중 의정부성모병원으로 출발했지만 구 씨는 이송 중 심정지에 빠졌다. 만약 구 씨가 일반 응급실 대신 외상 치료가 가능한 권역외상센터와 먼저 연결됐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대목이다.

● “이송 체계 대폭 개편해야”

다만 당시 구 씨를 받아줄 병원을 알아봤던 119구급대와 경기도소방재난본부 119상황실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송이 늦어진 책임을 온전히 소방 당국에 지우기는 어렵다. 구 씨를 이송한 119구급차엔 운전사를 포함해서 구급대원이 2명밖에 없었다. 혈압과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낮아지는 구 씨를 응급처치하면서 일일이 병원들에 전화를 돌리고 운전까지 해야 했다. 병원에 전화할 때마다 구 씨의 상태를 말로 설명하고 치료 가능한지 응답을 기다리느라 골든타임이 흘러갔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사고 당일 다른 권역외상센터나 비교적 가까운 국군외상센터에 연락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구 씨 상태가 시시각각 나빠져 우선 응급처치라도 해줄 가까운 병원을 찾아야 했다”고 해명했다. 약 60km 떨어진 서울시 중증외상 최종치료센터에 문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환자를 받아주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어 건너뛰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119구급대와 상황실, 응급실 의료진과 수술 의사 등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구 씨처럼 안타까운 희생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필수의료 인력을 늘리는 건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일이라고 쳐도, 부족한 의료진과 환자를 연결해주는 시스템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인 만큼 먼저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표류#70대#25분 거리 외상센터#빈 병상-의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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