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50억 성과급’ 받은 곽상도는 어떻게 뇌물 혐의를 벗었을까[법조 Zoom In/대장동 재판 따라잡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1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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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1월 10일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은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매주 진행되는 재판을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남은 의혹들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이번 편은 대장동 재판 따라잡기 제36화입니다.
대장동 재판 따라잡기 제35화에서는 73회 공판에서까지 나온 내용들을 다뤘습니다. 이후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대장동 재판이 두 차례(1월 30일, 2월 10일) 더 열렸습니다. 공판에는 모두 성남도시개발공사(공사)에서 전략기획실장을 지낸 정민용 변호사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특히 지난달 30일 열린 74회 공판에서는 정 변호사가 남욱 변호사의 증인신문에 응하면서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2021년 2월 유원홀딩스 사무실을 찾아 유동규 전 공사 사장 직무대리로부터 돈으로 추정되는 봉투를 받아갔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를 두고 김 전 부원장과 유 전 직무대리가 법정 밖에서 공방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10일 열린 75회 공판에서 정 변호사는 검찰의 “이재명이나 성남시로부터 공사가 배분받을 이익을 미리 확정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 없냐”는 질문에 “이익에 대해 지시 받은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 변호사는 “유 전 직무대리가 임대주택 부지를 받아오라고 했었다”고 답변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성남시장 재임 당시 ‘1공단 전면 공원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당시 이 대표는 대장동 개발사업의 이익을 1공단 공원화에 사용하는 방식의 ‘대장동·1공단 결합 도시개발구역’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화천대유 관계사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 등에 따르면 유 전 직무대리는 대장동 사업 초기인 2014년 4월경 대장동 민간사업자들에게 “1공단 공원은 무조건 수용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유 전 직무대리는 또 “우리는 임대주택 필지 하나만 주면 되고, 나머지 블록은 알아서 가져가라”고 민간 사업자들에게 말하기도 했는데, 이 같은 녹취록 속 내용이 10일 공판 진술에서도 또 한 번 등장한 것입니다.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아들 퇴직금 명목으로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 성과급 50억 원 받은 아들, 뇌물 혐의 무죄 받은 아빠
하지만 이번 주 열린 대장동 관련 재판 중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린 곳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1심 재판입니다. 곽 전 의원의 아들 병채 씨는 대장동 개발사업으로 큰 돈을 벌어들인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에서 성과급으로 50억 원(세후 25억 원)을 받았습니다. 검찰은 이 돈이 단순히 성과급이 아니라 ‘대장동 일당’이 곽 전 의원에게 뇌물 성격으로 건넨 돈이라고 보고 곽 전 의원을 뇌물과 알선수재 등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당시 곽 전 의원이 그 대가로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하나은행이 성남의뜰 컨소시엄을 이탈하지 않고 잔류하도록 알선을 했다고 본 것이죠. 남 변호사가 지역구 국회의원선거 예비후보자 지위에 있던 2016년 3월 곽 전 의원에게 변호사비 명목으로 5000만 원을 건넨 사건에 대해서도 검찰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습니다.

그리고 8일 서울중앙지법의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곽 전 의원은 병채 씨의 퇴직금과 관련해 적용된 뇌물과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남 변호사로부터 받은 5000만 원에 대해서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800만 원이 선고됐습니다. 돈을 준 남 변호사에게도 벌금 400만 원이 선고됐습니다.

곽 전 의원에게 1심 선고를 내린 재판부는 대장동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재판부와 동일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입니다. 일각에선 대장동 재판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영학 녹취록’ 등이 증거로 인정되지 않으면서 대장동 일당에게 뇌물약속 등 일부 혐의가 무죄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옵니다.

성과급 50억 원. 재판부의 판단 내용을 보면 병채 씨는 2015년 6월 처음 화천대유에 입사했다가 6개월 뒤인 2015년 11월 아버지 곽 전 의원의 국회의원 출마를 돕기 위해 퇴사했습니다. 병채 씨는 곽 전 의원이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인 2016년 5월 또다시 화천대유에 입사해 2021년 3월 31일까지 다닙니다. 병채 씨의 화천대유 총 재직 기간은 64개월. 화천대유와 병채 씨는 퇴사 무렵 성과급을 5억 원에서 50억 원으로 증액하는 내용의 변경성과급계약을 체결합니다.

재판부는 분명 이 50억 원이라는 금액이 사회통념상 이례적으로 과한 돈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병채 씨가 화천대유에서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했고 여러 성과를 낸 점은 인정하지만, 다른 직원들과 함께 일했는데 그들의 10배에 이르는 성과급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죠. 병채 씨가 입사 이후 얻은 병(이석증 등)에 대한 보상 내지 위로의 성격을 고려하더라도 재판부는 “50억 원의 성과급은 지나치게 과다하다고 보인다”고 또 한 번 강조했습니다.
● ‘사회통념상 이례적으로 과한 돈’ 50억이 ‘뇌물’ 안 된 이유
그렇다면 재판부는 왜 50억 원이라는 돈을 곽 전 의원에 대한 뇌물로 보지 않은 것일까요? 먼저 병채 씨가 곽 전 의원으로부터 독립해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곽 전 의원이 ‘다 큰 아들’ 병채 씨를 부양하지 않으니 병채 씨가 받은 돈이 곧 곽 전 의원이 받은 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죠. 병채 씨가 받은 성과급이 곽 전 의원에게 흘러간 정황이 제출되지 않은 영향도 있습니다.

‘다 큰 아들 병채 씨가 받은 돈’≠‘곽 전 의원이 받은 돈’이니 뇌물죄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재판부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성남의뜰 컨소시엄을 유지하기 위해 곽 전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거나 곽 전 의원이 실제로 하나금융지주 임직원 등을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습니다. 곽 전 의원이 직접 돈을 받지도 않았으니 애초에 죄가 성립도 하지 않는데, 설사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대가로 국회의원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도 제대로 확인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핵심 도구로 간주됐던 정 회계사의 녹취록 속 일부 진술은 이번 재판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2020년 4월 4일 녹음된 정 회계사와 김 씨의 대화 중 김 씨는 이런 말을 합니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병채 아버지는 돈 달라 하지. 병채 통해서. 며칠 전에도 2000만 원.”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말을 내용으로 하는 전문진술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인정되지 않습니다. 재판부는 김 씨의 이 진술이 다른 사람의 말을 대신 전한 전문진술이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습니다.

실제로 이 말(‘돈을 달라’)을 했다던 병채 씨는 법정에 출석해 아버지를 대신해 돈을 달라고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김 씨도 법정에 나와 정 회계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은 있지만, 실제로 병채 씨와 그런 대화를 한 사실은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 김만배 법정증언에도 재판부 “공소사실 기재 혐의 증명 부족”
“2015년 3월 하순경 남 변호사에게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의 컨소시엄 해체 문제를 곽 전 의원을 통해 해결했다’는 취지로 말했다.”(제 8회 공판기일)

“2016년 말경에서 2017년 초경부터 정 회계사와 남 변호사에게 ‘곽 전 의원에게 50억 원을 줘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에는 50억 원을 줘야 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제 8회 공판기일)

“남 변호사에게 병채를 통해 곽 전 의원에게 50억 원을 줄 것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제 8회 공판기일)

“2020년 4월 4일 교대역 한 카페에서 정 회계사에게 ‘병채에게 야 인마. 한꺼번에 주면 어떻게 해? 그러면 화천대유 전무보다 많으니까 한 서너 차례 잘라서 너를 통해서 줘야지 그렇게 주면 되냐’고 말했다.”(제 8회 공판기일)


김 씨는 지난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위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곽 전 의원을 통해 컨소시엄 해체 문제를 해결했고, 곽 전 의원에게 50억 원을 줘야 하고, 특히 병채 씨를 통해 이를 전달해야 한다는 내용이 그의 입을 통해 나온 겁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는 등 유죄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도 인용했습니다. 여러 증언과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모두 종합해봐도 공소사실에 기재된 혐의가 증명됐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린 겁니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곽 전 의원은 8일 1심 재판 선고를 듣고 법원을 나서면서 기자들과 만나 10분가량 짧게 재판 결과에 대한 심경을 밝혔습니다. “아들의 퇴직금 50억 원에 대해 도의적인 사과를 할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고 판단할 수가 없다. 내가 아니고 당사자가 그 회사고 아들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내가 뭐라고 얘기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50억 원이라는 금액을 못 받아들이는 국민들이 있다”고 하자 “나도 적게 준 건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곽 전 의원은 또 “검사들에게 나만 속은 게 아니지 않냐”며 “이런 일은 이제는 그만 벌어졌으면 좋겠다”며 법원을 떠났습니다.

곽 전 의원은 유죄를 선고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검찰도 수사팀을 보강해 수사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계획을 전했습니다.

곽 전 의원의 1심 재판은 이렇게 마무리됐지만, 대장동 재판은 계속됩니다. 법원 인사 등 사정으로 대장동 재판의 다음 공판기일은 이달 27일로 잡혔습니다. 인사 이후 재판부 인원에 변동이 생기면 공판절차 일부를 다시 진행하는 공판절차갱신이 한동안 진행될 예정입니다.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장하얀 기자 jwhit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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