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사표 낸 나경원 ‘수리’ 아닌 ‘해임’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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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大출마 논란 속 초강수 꺼내
사의 안 밝힌 기후대사도 해임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사진)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직에서 해임했다. 윤 대통령이 장관급 공직자를 해임한 첫 사례이자, 나 전 의원이 이날 “나는 결코 당신들이 ‘진정으로’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친윤(친윤석열) 진영을 비판한 지 7시간 만이다. 여당 전당대회 출마를 두고 대통령실과 긴장 관계를 이어온 나 전 의원의 행보가 차기 대표 ‘출마 예고’로 받아들여지자, 해외 순방 하루 전날 해임이라는 초강수를 꺼내 든 것이다.

김은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이날 오후 5시경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오늘 나 전 의원을 두 자리에서 해임했다”고 밝혔다. ‘사표 수리’보다 강도 높은 표현인 ‘해임’이 사용됐고, 나 전 의원이 사의를 밝히지 않았던 기후환경대사직에도 해임 결정이 내려졌다. 신임 저출산위원회 부위원장에는 김영미 동 위원회 상임위원이, 신임 기후환경대사에는 조홍식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내정됐다.

나 전 의원은 대통령실의 해임 발표 직후 휴대전화를 껐다. 이후 이날 오후 8시 10분경 페이스북에 “대통령님의 뜻을 존중합니다. 어느 자리에 있든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올렸다. 나 전 의원은 출마를 통한 정면 돌파 카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 전 의원 측은 통화에서 “직을 유지한 상태가 출마의 족쇄로 작용했는데 일단 족쇄는 풀렸다”며 “이미 일은 저질러진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尹, 나경원 ‘친윤 저격’에 전격 해임… 羅측 “출마 족쇄 풀려”

‘사표 수리’ 아닌 ‘해임’

羅 “당신들, 尹성공 위한다 생각 안해”… 尹, 순방 전날 저출산위 등 해임
羅 “대통령 뜻 존중” 페북에 글… 친윤 “羅 출마땐 정치생명 끝날 것”

나경원, 尹부부 방문했던 단양 구인사 찾아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13일 천태종의 총본산인 충북 단양 구인사를 
방문해 총무원장 무원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경내를 돌아보고 있다. 구인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에,
 김건희 여사가 대선 직후인 지난해 5월에 방문한 적 있다. 금강신문 제공
나경원, 尹부부 방문했던 단양 구인사 찾아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13일 천태종의 총본산인 충북 단양 구인사를 방문해 총무원장 무원 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경내를 돌아보고 있다. 구인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에, 김건희 여사가 대선 직후인 지난해 5월에 방문한 적 있다. 금강신문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하루 앞둔 13일 나경원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에서 전격 해임하자 나 전 의원 측에서는 당황한 기류가 감지됐다. 윤 대통령이 14∼22일 순방에 나서는 만큼 귀국까지는 사의에 대한 반응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나 전 의원 측도 그때까지 국민의힘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겠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 羅 측 “전대 불출마하기 어려워진 듯”
여권에서는 13일 오전 나 전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결정타’였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나 전 의원은 “결코 당신들이 ‘진정으로’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신들’이 자신의 전당대회 출마를 막으려는 친윤(친윤석열) 진영을 정면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자 친윤 진영은 “전쟁하자는 것”이라며 격앙된 상황이었다.

이에 윤 대통령이 직접 해임 카드를 꺼내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관측이 나온다. 순방 뒤 사직서를 처리하려 했던 윤 대통령이 이날 오후 ‘출국 전 매듭’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그간 나 전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 의지를 “자기 정치”로 비판하면서 윤 대통령의 의중이 담겼다고 했다.

실제 대통령실은 이날 이른 오후만 해도 브리핑이 없는 기류였다가 오후 4시 20분에 브리핑을 하겠다고 급히 공지했다. 이후 브리핑 시간을 5시로 연기해 해임을 발표했다. 나 전 의원이 친윤 직격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지 7시간 만이었다. 그만큼 대통령실 내부가 급박하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인편을 통해 부위원장직 사직서를 낸 뒤 페이스북에 친윤 진영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나 전 의원은 “2019년 12월 우리 당(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나듯 물러나야만 했을 때 드렸던 말씀”이라며 “바람에 나무가 흔들려도 숲은 그 자리를 지키고 바위가 강줄기를 막아도 강물은 바다로 흘러간다”고도 썼다. 자신을 ‘숲’과 ‘강물’에, 친윤 진영을 이를 방해하는 ‘바람’, ‘바위’에 비유한 것. 그러면서 “그 뜻과 마음은 지금도 그대로”라며 “잠깐의 혼란과 소음이 역사의 자명한 순리를 가리거나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사실상 당 대표 출마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나 전 의원은 해임 발표 즉시 휴대전화를 끈 채 측근들과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다만 이미 사표를 던지며 배수진을 친 만큼 당장 출마 의지를 접지는 않을 기류다. 나 전 의원 측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불출마) 퇴로를 막았으니 불출마하기 어려워진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
○ 친윤 “羅가 反尹이란 걸 대통령이 인증”
친윤 진영은 윤 대통령의 해임 결정을 두고 “나 전 의원이 반윤(반윤석열)이라는 것을 대통령이 공식 인증한 것”이라며 “나 전 의원이 끝내 출마한다면 정치 생명은 끝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나 전 의원이 글로 친윤 진영을 직격한 것에 대해선 “전쟁하자는 것”, “대통령 스토킹”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다.

친윤 진영에선 나 전 의원이 출마하면 친윤 후보인 김기현 의원의 표를 잠식해 안철수 의원과의 3파전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져 왔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이 해임으로 ‘윤심은 나경원에게 없다’는 메시지를 내비친 것을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한 친윤 인사는 통화에서 “해임은 사실상 공무원에 대한 징계나 다름없다”며 “지금 물러난다면 타격은 있어도 후일을 기약할 수는 있겠지만 출마한다면 ‘유승민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했다.

친윤 핵심 장제원 의원은 통화에서 “나 전 의원은 대통령을 위하는 척하면서 반윤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장 의원은 “오로지 자기 정치만 하는 사람이 가장 대통령을 위하는 것처럼 고고한 척하는, 친윤을 가장한 반윤”이라고 공격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조권형 기자 buzz@donga.com


#나경원#해임#전당대회#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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