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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특파원칼럼/이상훈]IRA법 시행, 한국에 기회이기도 하다

입력 2022-11-30 03:00업데이트 2022-11-3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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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물자 공급망 뒤흔든 국제질서 변화
세계 최대 美시장 적극 활용할 수 있어
이상훈 도쿄 특파원이상훈 도쿄 특파원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전 일본 경제산업상(현 자민당 정책조정회장)은 올 5월 미국 워싱턴에서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과 반도체 협력을 논의한 뒤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 반도체로 손잡는 것에 기이한 운명을 느낀다.”

‘기이하다’라는 표현에는 반도체로 양국이 격렬하게 대립한 역사가 담겼다.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 판도를 뒤흔들었다. 1980년대 일본 내 외국산 반도체 점유율을 10%에서 20%대로 높이고, 일본의 대미(對美) 저가 반도체 수출을 중단시킨 이 협정으로 미국을 위협하던 일본 반도체 경쟁력은 완전히 꺾였다. 그 빈자리를 파고든 나라가 한국과 대만이다. 국제정치 파워게임이 전략물자 글로벌 공급망 지형을 어떻게 바꾸는지, 이런 변화에 한국이 어떻게 대응해 어떤 결과를 얻어냈는지 되새겨볼 좋은 사례다.

물론 미국의 중국 견제는 40여 년 전 미일 반도체 협정과는 비교 불가능하다. 미국은 올해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중국을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와 이를 이룰 능력을 가진 유일한 경쟁자’로 규정했다. 글로벌 공급망이라는 한배에 같이 탈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분야는 반도체와 전기차다. 둘 다 중국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해 키운 분야다. 낸드플래시 반도체 중국 수출과 14nm(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장비 수출을 사실상 금지한 미국 조치는 시작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완성된 전기차에만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전기차 시장을 중국에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협상을 통해 합의한 (미일 반도체) 협정과 일방적인 법률 및 금지 조치(대중 반도체 및 전기차) 간극만큼 미국의 위기의식도 차원이 다르다.

미국이 초조한 이유는 숫자로 확인할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46.3%가 닝더스다이(CATL) 같은 중국 기업 차지였다. 전기차 배터리 필수 소재인 절연체에서도 상하이에너지를 비롯한 중국 기업(점유율 38.9%)이 선두였다. 미국이 미래 유망 산업 공급망 재편을 서두르는데도 중국은 격차를 벌려가며 경쟁국을 앞서가고 있다. 완성(전기)차에서도 중국 기업이 테슬라 턱밑까지 쫓아왔다. 전기차에서 중국은 완성차-배터리-부품을 아울러 1위를 굳히거나 선두를 위협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IRA를 한국 전기차에 대한 차별로 규정하고 최대한 시행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당연히 이는 간과할 수 없는 측면이다. 하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세계 전기차 관련 분야 1위를 목표로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면서 공격적으로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에 더욱 그렇다. 국제정치 파워게임 결과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중국산 전기차 및 배터리의 미국 진출은 원천 봉쇄됐다. 일본은 투자 체력이나 속도에서 아직 한국에 미치지 못한다. 완전경쟁 체제라면 따라잡기 버거웠을 상황인데 구조적 변화가 닥친 것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2024년 한국 배터리 업체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55%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최근 전망했다. 빠른 판단과 유리하게 짜여지는 글로벌 공급망 지형을 발판 삼아 세계 최대 시장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IRA 시행이 한국 경제에 독이 될지 득이 될지는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다. 역사가 보여주듯 결국 우리 하기에 달렸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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