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을 포기하고 “잡초 가득한 황무지”를 만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6일 10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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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사유지는 2017년 살아있는 나무로 만든 생울타리로 빼곡해지고 버드나무로 가득해질 정도로 ‘재야생화’ 됐다. 넵 기록보관소 제공

영국 남부에 있는 사유지 ‘넵 캐슬.’ 찰리 버렐과 이저벨라 트리는 2000년 2월 3500에이커(약 1416만3000㎡)에 이르는 이 땅에서 운영해온 농장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농장은 1987년 찰리가 조부모로부터 물려받았을 때부터 만성 적자였다. 부부는 최신 농기계를 들여 밀 수확량을 늘리고 양도 새로 키워봤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는 초대형농장이나 해외수입곡물과 경쟁 자체가 되질 않았다.

이쯤 되면 부부가 땅 판 돈으로 런던에 금싸라기 건물이라도 사서 유유자적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들의 선택은 사뭇 달랐다.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이 거대한 땅을 ‘자연’으로 되돌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나무를 풍성하게 심거나 예쁜 꽃들이 가득한 수목원을 만든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잡초 가득한 황무지”로 만들어버렸다.

‘야생 쪽으로’는 진짜 제목대로 농장이던 땅을 야생으로 바꾸는 노력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재야생화(rewilding)’란 용어를 사용한다. 환경 운동가이자 여행 작가인 부인이 책을 집필했고, 2018년 미국 스미소니언재단이 발행하는 ‘스미소니언 매거진’ 선정 10대 과학서로 뽑혔다.

찰리 부부가 농장 경영을 포기한 탓에 2004년 휴한지 상태가 된 영국 잉글랜드 남부의 넵 사유지. 넵 기록보관소 제공


부부는 들판을 휴경지로 만들며 조금씩 농장을 없애갔다. 엑스무어 조랑말이나 탬워스 암퇘지 등 영국 토종동물을 키워 땅의 재야생화를 촉진시킨다. 이런 방법은 정부에서 파견한 과학자 자문위원회의 조언을 따랐다.

변화는 놀라웠다. 영국에 5000쌍 밖에 없는 멧비둘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서구에서 사라져가던 나이팅게일은 물론 종달새, 꼬마도요, 큰까마귀 등 희귀 야생동물들도 빠르게 번성했다. 작은멋쟁이나비 등 276종의 희귀 나비가 서식하고, 비버처럼 영국에서 쉽게 보기 힘든 포유동물도 이곳에 자리 잡았다. 넵 캐슬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생태학의 보고이자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어류 차단용 전기 장벽에 죽어가는 아시아 잉어들. 쌤앤파커스 제공
야생 쪽으로 / 이저벨라 트리 지음·박우정 옮김 / 504쪽·2만5000원·글항아리
야생 쪽으로 / 이저벨라 트리 지음·박우정 옮김 / 504쪽·2만5000원·글항아리
안타깝게도 이런 선의의 노력이 항상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건 아니다. ‘화이트 스카이’는 인류가 호기롭게 환경 보호에 나섰다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 사건들에 주목했다. 미 뉴욕타임스(NYT)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2015년 ‘여섯 번째 대멸종’(처음북스)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자는 꼼꼼히 현장을 훑으며 냉철한 시각으로 실패 사례들을 분석한다.

미국에서 20세기 초 ‘아시아잉어’가 범람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미시간 호수 주변은 이제 막 유입되기 시작한 외래종인 아시아잉어로 곤란을 겪고 있었다. 당국은 애초에 약품을 이용해 잉어 수를 줄이려 했지만 환경운동가들에 막혀 실현하지 못했다.

화이트 스카이 / 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김보영 옮김 / 296쪽·1만8000원·쌤앤파커스
미시간 호수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토목공사가 기름을 부었다. 시카고 강을 역류시켜 일리노이 강으로 보냈다가 아시아잉어가 3군데 모두로 급속히 퍼져버렸다. 한반도의 황소개구리처럼 강과 호수의 포식자가 돼 토종 생태계를 박살내버렸다. 뒤늦게 어류 차단용 전기 장벽까지 세워봤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하지만 저자는 희망을 놓기엔 이르다고 강변한다. 실패담을 보여줬지만, 여전히 인류에게 필요한 건 “제대로 된 노력”이라 얘기한다. 물론 환경 보호는 워낙 복잡하고 예측이 쉽지 않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을 듣고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하느니 못한’ 일들이 반복된다. 갈수록 병들어가는 지구에 인류는 빚을 지고 있다. 이를 어떻게 갚을지 ‘부채 탕감 계획’을 제대로 짜야 한다.

이호재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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