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공소 골목에 깃든 창작 열정… 즐비한 맛집엔 레트로 감성 물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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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스트리트]〈2〉영등포구 문래창작촌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문래창작촌을 찾은 시민들이 골목길에 모여 있다. 지금의 창작촌은 재개발 등으로 철공소가 사라지고 저렴한 
작업 공간을 찾던 예술인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겼다. 예술가들의 공방과 철공소, 오래된 노포들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자랑한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문래창작촌을 찾은 시민들이 골목길에 모여 있다. 지금의 창작촌은 재개발 등으로 철공소가 사라지고 저렴한 작업 공간을 찾던 예술인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겼다. 예술가들의 공방과 철공소, 오래된 노포들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자랑한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9일 오후 찾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큰길을 지나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자 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벤치레스’ ‘로구로(나무를 둥글게 깎는 기술)’ 같은 철공소를 알리는 홍보 간판 사이로 영어 이름의 카페가 줄지어 있었다. 조금 더 들어서자 천연 화장품을 파는 공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공소와 카페, 공방까지 언뜻 어울리지 않는 가게들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창작촌’이다.
○ 철공소와 예술인들의 ‘기묘한 동거’

문래창작촌은 철공소 장인과 예술가들이 공존하는 도심 속 ‘이색 마을’이다. 문래동은 원래 1970, 80년대 국내 철강산업을 주도하는 공업단지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정부의 공장 이전 정책과 재개발로 업체들이 하나둘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그 공간을 홍익대 인근과 대학로에서 찾아온 젊은 예술가들이 채웠다. 현재 200명이 넘는 창작자가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공연 예술가들이 많이 모였지만, 이제는 영상 패션 등의 시각예술 장르를 비롯해 비평 문화기획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곳에서 2010년부터 그림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물 씨(41)는 “지난해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예술·기술 융복합 문화공간 ‘문래예술종합지원센터’에 들르면 문래동 지도와 관광 안내도 받을 수 있다.

골목 곳곳의 낡은 벽에서는 예술가들이 그린 알록달록한 색의 벽화가 눈에 띄었다. 열려 있는 철공소에서는 쇠를 갈아내는 ‘윙’ 소리가 크게 울렸다. 닫힌 철공소의 셔터문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기도 했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오랜 기간 철공소와 예술가들이 살아가다 보니 서로 협업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철공소와 예술가들의 공존하는 이색 관광지로 뜨고 있지만 문래동은 원래 방직과 인연이 깊다. 1930년대 군소 방적공장이 많이 들어서면서 ‘실 사(絲)’자를 넣은 사옥정(絲屋町)으로 불렸는데, 광복 후 이 이름을 우리나라식으로 고칠 때 ‘물레’의 발음을 살려 문래동이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 레트로 감성의 젊은층에게 인기
노포들도 ‘레트로 감성’을 찾는 젊은층의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50여 년 전통의 ‘태양슈퍼’는 2020년 말 한 먹방 유튜버가 찍어 올린 라면 먹방 영상 덕에 유명해졌다. 가게 안에 탁자 몇 개를 놓고 간단한 안주와 함께 맥주를 판다. 라면과 파전이 대표 메뉴인데, 가게 한편에 진열해 둔 라면 종류를 고르면 주인 할머니가 직접 양은냄비에 끓여준다. 슈퍼와 술집이 결합한 셈이다.

이날 태양슈퍼를 찾은 변근영 씨(34)와 그 친구 일행은 “라면 더 안 먹어?”라고 다정한 잔소리를 하는 할머니를 보며 깔깔 웃었다. 변 씨는 “우연히 낮술을 하려고 들렀는데 문래동에 이렇게 인심 좋은 곳이 있는지 몰랐다”면서 “다방과 카페, 소품숍까지 볼 것이 많아 앞으로 자주 올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수제 맥주를 파는 카페 ‘올드문래’도 핫플레이스다. 낮 시간이지만 맥주와 커피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 밖에 인스타그램에 나올 법한 신상 맛집도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다만 이곳을 오랫동안 지켜온 토박이들은 점점 빨라지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하기도 한다. 상권이 발달하면서 많은 이들이 문래를 찾는 사이,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철공소를 하는 최재은 씨(64)는 “옛날 건물들이 식당으로 변하면서 철공소 직원들은 다 쫓겨나가고 있다”며 “우리에게는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철공소 골목#문래창작촌#문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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