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도취의 파괴성’[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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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자기도취의 에너지는 태어나서 작동하고 청소년기에 크게 활용되며 어른이 되어 감소하나 개인에 따라 힘 차이가 납니다. 그 힘이 조직 생활에서는 홀로 있을 때와 달리 더욱더 영향을 끼쳐 자기도취 성향이 강할수록 지도자가 되려고 합니다.

자기도취는 욕망 에너지여서 적절하게 그것이 필요한 경제, 정치, 문화 분야에 그러한 성향의 지도자가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21세기에 전성기를 이룰 것으로 학계가 전망하는 주된 이유는 신문이나 방송과 달리 각종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자기도취적 성향이 심한 사람들이 쉽게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남들의 주목, 관심, 갈채, 환호는 자기도취의 에너지 공급원입니다. 관계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자신에게 필요한 사회적 자본을 효율적으로 급속하게 쌓을 수 있습니다.

자기도취 성향이 강한 사람은 스스로 특별하다고 믿습니다. 남들에게 다가가 주목받고 관심을 끕니다. 많은 사람 속에서도 자신만이 두드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과 행동이 화려하고 소란스럽습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쾌활하며 매력을 풍깁니다. 남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이 이끌려고 합니다. 자신에게 선견지명이 있는 듯 보이려고 이런저런 말을 합니다.

최고 경지는 자신의 능력이 무한하고 세상 이치를 통달하고 있다고 자신의 특출함을 믿는 겁니다. 한편 남들은 열등하니 우습게 알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남들이 하는 말은 무시하고 두 번 말하면 자신을 비난하는 행위로 여깁니다.

이런 사람은 언뜻 조직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덕목을 갖추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자신감, 활기, 개혁성, 효능감의 냄새를 풍겨서 침체에 빠진 조직일수록 인기가 있습니다. 이러한 매력의 뒤에 자만심으로 가득 찬 카리스마가 숨어서 칼을 갈고 있음을 남들은 알기 힘듭니다. 이 사람이 지도자로서 자리를 잡고 나면 자신의 카리스마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응징하려 합니다.

병적인 자기도취에 빠진 지도자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갈등을 활용합니다. 자신이 특출하다고 생각해서 남들이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닦아세우고 소동을 일으키고 싸움을 겁니다. 세 단계로 진행됩니다. 첫째, 갈등의 씨앗을 조직에 심고 흔듭니다. 둘째, 갈등 구조를 확실하게 세웁니다. 셋째, 갈등을 해소하려는 단계에서 자기도취적 전지전능함을 입증하려 합니다.

이때 걸림돌은 자신보다 우월한 위치에 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끈질기게 시기하고 괴롭힙니다. 그 사람의 성공보다는 실패에 관심이 큽니다. 자신의 우월성을 세상에 알리려면 조직의 성공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도취 에너지 충전에 필요하다면 남들을 업신여기고 얕잡아 보고 무시해서 모멸감을 주는 일도 쉽게 반복합니다. 조직의 목표가 희생되거나 조직이 망가지는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과 관계를 끊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단으로 그들을 써야만 합니다. 자기도취 에너지는 제대로 쓰면 약이고 아니면 독입니다. 유익한 에너지는 활용하고 유해한 에너지의 방출은 막아야 합니다. 아니면 조직이 망합니다.

자기도취적 전지전능감은 실체가 없는, 공허하고 부족한 마음을 메우려는 심리적 방어의 결과물입니다. 압도적으로 보이지만 본질은 허망합니다. 끊임없는 환호와 갈채 없이는 사라지기에 남들에게 계속 지지하고 떠받들기를 요구합니다. 자기 성찰, 공감, 수치심, 죄책감은 그 사람 마음에 자리가 없습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분노하고 폭발합니다. 스스로 피해자라고 느끼면서 복수의 칼을 갑니다. 받은 것보다 더 심하게 돌려주려고 궁리합니다.

자기도취적 지도자가 조직에 항상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장점과 강점을 상황에 맞게 건설적으로 살리면 조직이 번성합니다. 반면에, 특히 조직이 어려운 시기에 자기도취의 함정에 빠져 말하고 행동한다면 조직이 위태로워집니다. 문제는 예측과 통제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자신에게 두 얼굴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혼자 힘으로 모두 가능하고 자신이 변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으며 남들의 도움이 필요 없고 모든 공은 다 내 것이어야만 한다는 망상에 빠지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전지전능하다는 환상에 한 발만 들여놓아도 파멸로 가는 미끄럼틀을 타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통찰은 쉽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병적 자기도취라면 자신의 행위가 남들에게 미칠 영향을 깨닫지 못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깨달음이 더욱더 어렵습니다. 잘나갈 때는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려도 큰일이 나지는 않겠으나 어려운 상황에 빠지면 자신이 피해자라는 헛된 믿음에서 자신을 말살하려는 남들을 공격해서 보복하려 합니다. 보복심은 현실의 판단력을 좀먹고 사태는 더 커집니다. 그렇게 되면 조직의 흥망은 그 사람의 관심사가 아니고 방어와 공격에 온 힘을 쏟습니다. 결국 오만함과 고집으로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전투가 끝난 자리에는 잃어버린 기회들의 잔재가 바람에 날리면서 쓸쓸할 겁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자기도취#욕망 에너지#파괴성#조직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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