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문화

이응노, 남관은 창의성을 어떻게 입증했을까?[영감 한 스푼]

입력 2022-01-01 11:00업데이트 2022-01-06 08:53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예술가들은 자신의 창의성을 어떻게 입증할까요?
|전시장 속에서 그 해답을 알아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민 기자입니다. 저는 최근 2021년 미술계 최고의 이슈였던 ‘이건희 컬렉션’ 작품 중 일부를 직접 볼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이응노와 남관의 작품이었는데요.

두 작가가 활동할 무렵 한국 미술계는 캔버스 유화를 중심으로 한 서양화라는 큰 물결을 맞닥뜨렸습니다. 이렇게 낯선 트렌드가 생겨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무작정 따라하거나, 완전히 외면하는 선택을 하기 쉬운데요. 이 두 작가는 그 갈림길에서 어떻게 자신을 입증하고, 창의성을 펼칠 수 있었는지 그 방법에 대해 오늘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응노, 남관은 어떻게 창의성을 입증했을까?

1. 서화가로서 두 화가는 ‘추상’이라는 아주 생소한 흐름을 마주하게 된다.

2. 낯선 트렌드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흔히 두 가지 - 맹목적 추종, 완전한 외면 - 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두 작가는 ‘내 버전으로 리믹스 하기’를 선택했다.

3. 트렌드는 결국 ‘보편적 공감대’. 그 속에 기대는 것은 공감의 여지를 넓혀주고 결과적으로 내 목소리를 살아남게 만든다.

○ 이응노, 남관의 추상 리믹스
그림을 보기 전에 이응노, 남관 작가가 작품 활동을 했을 당시 미술계 분위기를 들여다 보겠습니다.

이응노 작가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이 1928년, 즉 일제강점기 입니다. 이 때 조선의 시각 예술은 서예와 수묵화가 중심이었는데, 일제를 통해 캔버스 회화 중심의 서양 예술을 처음으로 접하게 됩니다. 이응노 또한 처음에는 수묵화로 입상을 하지만, 그 뒤에는 마구 밀려 들어온 서양화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응노는 1938년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의 초청을 받아 일본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게 됩니다. 그리고 1958년 프랑스 파리로 가게 되는데요. 이 때 유럽과 미국에서는 많은 분들이 ‘잭슨 폴록’으로 잘 알고 계실 추상화가 대세였습니다.

잭슨 폴록, 라벤더 미스트, 1950년. 사진출처: Flickr/Detlef Schobert


○ 서화가에게 들이닥친 낯선 트렌드, 추상
조선시대 서예와 수묵화를 그렸던 서화가들이 잭슨 폴록의 추상화를 본다면 기분이 어땠을까요? 지금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이게 예술 작품?’이라며 황당하고 어리둥절한 반응이 나올 것도 같습니다. 조형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약간의 분석을 하겠지만, 그런 과정에 이르기 전에 우선 거부감과 낯선 기분이 들었겠죠.

오지호 작가(1905-1982)는 1959년 ‘구상회화 선언’이라는 글에서 추상 회화를 “20세기라는 과도기가 빚어낸 변해야 한다는 저열한 망상”의 결과물이라고 비판합니다. 즉 새로움 자체를 추구하면서 결국 그림이 아닌 그림을 그리고 말았다는 것이지요. 그는 “형상이 없는 것을 형상화한다는 생각 자체가 근본적으로 틀린 것”이라고도 봤습니다.

또 1964년 발표된 어느 글 속에는 추상화 전시를 본 관객들의 반응이 나와 있습니다.

“발바닥으로 뭉갠 그림”

“정신병자의 발작화”

“독주를 마신 자의 광란”

즉 추상화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의 ‘이단적인 미술’, 건전하지 못한 퇴폐 미술 정도로 국내에서는 여겨졌습니다. 그럼 오늘 살펴볼 작가들은 이 장벽을 어떻게 마주했을까요? 그 답을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전에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 맹목적 카피를 넘어 나의 목소리를 입히다

이응노, 구성, 1971, 천에 채색, 230x145cm. ⓒ Ungno Lee_ADAGP, Paris ? SACK, Seoul, 2021


위 작품이 이응노가 서구의 추상에 대해 내놓은 답 중 하나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쉽게 ‘추상과 서화의 리믹스’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이응노, 남관 작가는 프랑스에 가서 유럽의 추상 회화였던 ‘앵포르멜’ 작품들을 보고, 이들 작품의 작동 방식에 ‘문자’를 접목했습니다.

우선 작품을 먼저 볼까요. 의미를 알 수 없는 여러 문양들이 마치 춤추듯 화면에 리드미컬하게 배치되어 있죠. 강렬한 컬러의 정반합도 눈을 즐겁게 합니다. 그런데 이 문양들의 모양을 잘 뜯어보면, ‘서화’의 중심인 한자의 획을 닮아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남관, 가을축제, 1984년


남관 작가의 ‘가을축제’에서는 더욱 더 한자의 모양이 잘 보이죠? 실제로 보면 신비로운 푸른 색의 안개 위에 부유하고 있는 듯한 문자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그렇다면 두 작가는 왜 추상에다 문자를 리믹스한 것일까요?

이들은 한자 또한 ‘그림문자’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림 문자에서 시작해 점점 개념과 추상으로 나아간 한자와, 서구의 형상에서 점차 추상으로 나아간 예술의 흐름이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해 ‘문자추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이지요.

나무 목(木)자의 탄생 과정을 연상케 하는 추상화가 몬드리안의 그림 ‘회색 나무’


즉 남관과 이응노는 서구의 추상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라, 추상화가 탄생하게 된 과정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해석해 새롭게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훌륭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한 것처럼 말이죠.

저는 이 두 작가가 추상이라는 장벽을 대한 태도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흐름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무작정 거부하거나, 무작정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현상이 발생했는지를 이해하고,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만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 말입니다.

‘이건희 컬렉션’ 전에는 비교적 다양한 한국의 추상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직접 방문하셔서 작가들이 새로운 흐름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다양한 방식을 한 번 비교해보세요. 규모는 작지만 한국 미술사속 숨은 보석을 볼 수 있는 알찬 구성! 추천지수 ★★★★

전시정보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2021. 7. 21 ~ 2022. 3. 1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전시실(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작품수 50여 점



나는 척 클로스를 사랑했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2월 28일 뉴욕타임스에 척 클로스의 20년 전 연인 알리 실버스테인이 보낸 기고문이 공개되었습니다.

이 글에서 그는 2018년 미투 폭로로 공개 사과하고 2021년 사망한 클로스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인간의 관계는 복잡 미묘하고, 그 누구의 감정도 거짓은 아니겠으나 자신이 본 클로스의 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사람은 ‘포토리얼리즘’보다 ‘입체파’에 가까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 놓아 감동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원문: www.nytimes.com/2021/12/27/opinion/chuck-close-artist.html?smid=url-share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북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

‘빛(Light)’을 주제로 영국 테이트 미술관 대표 소장품으로 기획한 전시입니다. 관람객들은 18세기 윌리엄 블레이크, 19세기 윌리엄 터너 및 클로드 모네, 20세기 및 동시대 작가 백남준, 댄 플래빈, 제임스 터렐, 올라퍼 엘리아슨 등 ‘빛’을 주제로 탐구한 작품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진: 윌리엄 터너, 빛과 색채 -대홍수 후의 아침, 1843년



대안공간 루프 ‘고독한 플레이어’전 개최

<고독한 플레이어>는 5인의 협력 큐레이터가 아티스트를 선발하는 방식과 과정을 실험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작가를 선정하는 과정을 게임의 알고리즘으로 디자인하여, 피할 수 없는 경쟁을 놀이의 방식으로 치환합니다.

사진: 권희수, 레이무숨 목욕탕, 싱글 채널 비디오, 2019

‘영감 한 스푼’ 연재 안내


‘영감 한 스푼’은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방식’에 대해 다루는 컨텐츠입니다.

우리는 미술관에 가면 창의성이 샘솟기를 기대하지만, 보기만 해서 무언가를 떠오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에 ‘영감 한 스푼’은 국내 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창의성의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이를테면 ‘이건희 컬렉션’에 전시된 이응노 작가가 어떻게 자신의 예술 세계를 세상에 입증했는지를 작품을 통해 자세히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작가들은 어떻게 기존에 없던 길을 만들어 내는지, 현실을 사는 우리는 여기서 어떤 팁을 얻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뉴스레터로도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또 기사에 대한 의견, 궁금한 전시나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inspire@donga.com 으로 보내주시면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영감 한 스푼 뉴스레터 구독 신청 링크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51199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