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고 "임신 기간, 견디는 시간 아닌 누리는 시간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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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12월 17일 17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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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지난 2014년부터 전국 19곳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립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지역 창업가 역량 강화, 창업 생태계 확산에 기여하며 그동안 지역 창업 거점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왔다. 그중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전국에서 최초로 출범한 센터로서 지금도 예비 창업가 및 초기 창업 기업 지원, 지역 창업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기관 프로그램 및 연계 프로그램을 내놓으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지난해만 해도 기업 지원 391건으로 매출 1367억 원, 투자 유치 307억 원, 신규 고용 1111명을 창출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2021 스타트업 미디어 밋업 데이. 출처=IT동아
2021 스타트업 미디어 밋업 데이. 출처=IT동아

지난 15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는 이러한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센터가 보육한 유망기업들을 소개하는 '2021 스타트업 미디어 밋업 데이'를 개최했다. 본격적인 사업 전개를 앞두고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내려 하는 6개 스타트업이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이에 IT동아는 이날 만난 유망 스타트업의 얘기를 전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출산 후 우울감…경험에서 발견한 창업 아이디어


“제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모두가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죠. 하지만 모든 수고는 내가 다 했는데 그 영광은 아이가 고스란히 가져간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 몸은 너덜너덜해졌는데… 이전까지 여성으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젖소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고요”

임산부를 위한 미용 및 의류 브랜드 ‘안트네’를 만든 ‘지니고’ 서정현 대표가 출산 후 느낀 점을 털어놓으며 꺼낸 말이다. 영국 패션 브랜드 폴 스미스에서 바이어 총괄로,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스테파넬에서 디자인 실장으로 일했던 서정현 대표는 마흔이 넘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당연히 출산도 그만큼 늦었다. 늦은 나이에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서 대표가 느낀 불편함이나 우울감은 이루 말할 것 없이 컸다.

지니고 서정현 대표. 출처=IT동아
지니고 서정현 대표. 출처=IT동아

어머니의 무조건적 사랑, 헌신, 희생을 당연시하는 모성 신화 때문에 간과되기 쉽지만 출산 후 여성이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지난 2015년 인구보건협회가 분만 경험이 있는 20~40대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출산 후 일시적인 우울감을 느끼는 여성은 90.5%에 달한다. 그리고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산후 우울감 사례 중 10~20%는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으로 발전한다.

서 대표는 자신이 직접 산후 우울감을 경험하며, 소외되는 임산부의 문제에 주목했다. 약 10개월의 임신 기간 중 임산부가 겪는 불편함은 한둘이 아니다. 그중 상당수는 급격한 신체 변화에 기인한다. 임신 기간 중 불러온 배는 출산 후에도 쉽사리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한동안 늘어난 채로 남아있는 피부와 튼살 자국은 출산 후 여성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이 때문에 많은 임산부들이 임산 초기부터 튼살 관리에 공을 들인다. 서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피부 미용에 민감했기에 하루에 세 번씩 꼬박꼬박 튼살 방지 크림으로 피부 관리를 했다. 하지만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면적이 넓은 배에 펴 바른 뒤 흡수시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미처 다 흡수시키지 못한 크림 때문에 옷이나 이불이 기름기로 축축하게 젖는 경우도 잦다. 로션, 크림, 오일, 밤 등 다양한 제형을 다 사용해봤지만 어느 하나 그 불편을 해소해주진 못 했다. 마스크 팩처럼 배에 붙이는 제품도 있지만 액상이 흘러내려 속옷을 적시는 문제가 있었다.

서 대표는 “21세기면 하늘도 날아다닐 거 같은데 여전히 걸어 다니고, 이런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제품조차 없다는 게 화가 났어요”라고 말했다. 마침 출산 후 경력단절로 앞날을 고민하던 때라, 서 대표는 자신의 경력과 개인적 경험을 모두 살려서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로 했다.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출처=IT동아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출처=IT동아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이를 사업화하기까지 넘어야 할 관문은 한둘이 아니다. 창업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서 대표에게도 오랜 직장 생활 경험은 있었지만 사업 경험은 전무했다. 그런 서 대표에게 길라잡이가 돼준 곳이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다. 서 대표는 대구창조경제센터 예비창업패키지를 통해 창업 멘토링부터 제품 출시까지 전 과정에서 지원을 받은 덕분에 헤매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 결과 탄생한 제품이 바로 튼살 방지 크림을 도포한 패치인 ‘안트네 반달 바디 패치’다. 마치 파스처럼 몸에 붙이는 형태다. 넓은 배 면적에 일일이 크림을 펴 바를 필요없이 패치를 한 번에 붙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옷이나 속옷에 묻어나올 염려도 없으니 흡수를 기다릴 것도 없이 그대로 위에 옷을 입고 움직이는 데에도 문제가 없다.

3년간의 개발 끝에 탄생한 안트네 반달 바디 패치는 크라우드 펀딩에서 임산부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지난 10월 26일부터 11월 9일까지 와디즈에서 진행한 펀딩에서 목표 금액의 2007%를 달성했다.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문제에 집중한 서 대표의 전략이 적중한 셈이다. 성공적인 펀딩을 마친 반달 바디 패치는 현재 본격적인 판매를 위한 양산을 준비하는 단계에 있다.

안트네 반달 바디 패치. 파스처럼 몸에 붙이면 부착면에 도포된 크림을 피부에 흡수시킬 수 있다. 출처=IT동아
안트네 반달 바디 패치. 파스처럼 몸에 붙이면 부착면에 도포된 크림을 피부에 흡수시킬 수 있다. 출처=IT동아

서 대표의 패션 업계 경력을 살린 패션 분야 제품도 내년 상반기 출시를 준비 중이다. 임신을 하면 신체 변화로 인해 일반적인 여성용 속옷을 불편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임산부가 남성용 속옷이나 노인용 속옷처럼 넉넉한 사이즈의 속옷을 입곤 한다. 하지만 호르몬 변화로 감정 기복이 심한 임산부에게 제몸에 맞춰 나온 게 아닌 옷을 입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정서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

서 대표는 철저히 임산부를 배려한 다양한 기능성 속옷을 구상했다. 대표적인 게 ‘임파선 통증프리 속옷’이다. 사타구니 쪽 림프샘(임파선) 통증은 임산부가 흔히 겪는 증상 중 하나인데, 이 제품은 통증을 덜어준다. 사타구니 쪽 라인을 절개하고 신축성 좋은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사타구니 부분에 가해질 수 있는 부하를 최소화했다. 항균과 전자파 차단 기능이 있는 소재를 사용한 속옷도 서 대표가 자랑스레 선보이는 제품이다. 전자파로부터 엄마는 물론 아이까지도 보호해준다. 이외에도 배냇저고리에 영감을 얻어 몸에 닿는 솔기를 없애 특수봉제를 적용해 착용 시 불편함을 최소화한 제품도 개발했다.

안트네의 다양한 기능성 속옷 제품들. 출처=IT동아
안트네의 다양한 기능성 속옷 제품들. 출처=IT동아

서 대표의 얘기를 듣다 보니 한 가지 걱정되는 점도 있었다. 대한민국은 초저출산 사회다. 상황이 개선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 임산부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하는 건 시작부터 사양산업에 발을 들이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서 대표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이 시장은 영원히 함께 발전하고 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물론 확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서 대표는 향후 고령층을 위한 기능성 속옷도 내놓는 걸 계획하고 있다. 임산부나 고령층이나 주류 미용 및 패션 업계에서 소외되는 계층이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임산부들이 노년층을 위한 속옷을 착용하는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추구하는 형태나 기능적인 면에서도 비슷한 면이 꽤 있다. 한국이 저출산으로 인해 고령화가 가속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트네가 임산부와 노년층을 동시에 공략하는 건 일종의 리스크 분산 전략이기도 하다.

저출산 리스크를 우회하는 또 다른 방안은 글로벌화 전략이다. 설령 국내에서 시장 규모가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해외 시장까지 판을 넓히면 그 규모는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안트네의 글로벌 시장 공략은 아주 먼 훗날의 계획이 아니다. 안트네 반달 패치 제품 포장에 기재된 성분, 사용법 등 정보는 한글뿐만 아니라 영문도 포함하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해외 박람회를 돌며 안트네 브랜드와 제품을 알릴 계획이다. 2023년부터 미국, 유럽, 중국 시장을 차례차례 공략하겠다는 청사진도 그려놓았다.

안트네의 기능성 속옷을 설명 중인 지니고 서정현 대표. 출처=IT동아
안트네의 기능성 속옷을 설명 중인 지니고 서정현 대표. 출처=IT동아

출산 인구의 축소가 곧 관련 시장 규모의 축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도 안트네가 기대해볼 지점이다. 유아용품 시장만 봐도 그렇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출생아수는 35만 7800명에서 지난해 27만 2000명으로 줄었다. 반면, 유아용품 시장은 같은 기간 약 2.4조 원에서 약 4조 원(추정치) 규모로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단순 ‘가성비’보다는 이른바 ‘가심비’를 충족시켜주는 프리미엄 제품에 지갑을 여는 데 인색하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가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데 따른 현상으로 풀이된다.

안트네가 노리는 소비층도 그런 밀레니얼 세대다. 서 대표는 안트네 제품이 출산을 꺼리는 여성들에게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하길 기대해주고 있다. 서 대표는 “밀레니얼 여성 중에선 몸이 망가지는 게 두려워 임신을 주저하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안트네를 그런 두려움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습니다. 임신 기간이 견디는 기간이 아닌 누리는 기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역할이요”라고 말했다.

서 대표는 ‘임산부를 위한 제품’이라는 범주 안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안트네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임신을 하면 주위에서 선물을 줘요. 대부분 아이를 위한 선물이죠. 신발, 배냇저고리, 턱받이 같은 것들이요.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오로지 임산부를 위한 선물이나 제품은 찾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앞으로는 안트네가 ‘임산부를 위한 선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됐으면 합니다”

동아닷컴 IT전문 권택경 기자 tikitak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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