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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노숙인은 인간관계 회복돼야 일상 복귀… 가출 청소년에겐 공감의 울타리 절실”[서영아의 100세 카페]

입력 2021-11-06 03:00업데이트 2021-11-06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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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생 2막]‘노숙인의 슈바이처’ 최영아 서울시립서북병원 진료협력센터장
빗물 섞인 밥 먹는 노숙인에 충격… 제대로 치료하고 싶어 봉사 결심
병치료 넘어 주거-자립까지 지원… 재활 돕는 비영리법인도 만들어
단짝 두 친구가 업무 뒷받침 해줘… 폭력 노출된 가출소녀엔 엄마역
20년간 한결같이 노숙인들을 돌봐온 최영아 서울시립서북병원 진료협력센터장은 “노숙의 뿌리는 인간관계가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노숙인이 일상에 복귀하려면 인간관계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길 위의 의사’, ‘노숙인의 슈바이처’.내과전문의 최영아 씨(51)는 지난 20년간 이렇게 불려 왔다.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 자격증을 딴 2001년, 첫 일터로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병원 ‘다일천사병원’을 택했다. 이후로도 영등포 요셉의원, 서울역 다시서기 의원, 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 등을 거치며 노숙인들을 보살펴 왔다. 현재는 서울시립서북병원 진료협력센터장으로 일하는 그를 지난달 27일 만났다.》


서북병원은 과거 ‘행려병자’들의 병원이라 여겨졌고 요즘도 노숙인 장애인 등의 치료를 맡는 공공병원이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기존 환자 상당수가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의사소통이 잘되고 치료 효과가 뚜렷한 환자들을 오랜만에 대하니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돼 노숙인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돌아갈 가족이 없어 거리로 나와

―쪽방이나 쉼터가 있는데도 굳이 길에서 주무시는 분들도 많다고 들었는데요.

“사람이 그리워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음주 문제도 있고요. 노숙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뿌리는 인간관계가 안 되는 거예요. 같이 살 사람, 돌아갈 가족이 없는 거죠. 영어로 ‘하우스리스’가 아니고 ‘홈리스(homeless)’인 이유죠. 노숙인들은 인간관계가 회복돼야 사회 안으로 다시 들어올 수 있어요.”

애써 치료해서 내보내면 다시 똑같은 상태가 돼 돌아오는 ‘회전문’ 환자가 적지 않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기분이 되기도 한다. 똑같은 환자를 12번째 입원시키게 됐을 때 멘토였던 선우경식 영등포 요셉의원 원장(1945∼2008)에게 조언을 구했다. 자신은 한 환자를 60번도 입원시켜 봤는데 그 환자는 결국 술을 끊었다는 말을 들었다.

대장항문암 전문 외과의였던 남편도 지금은 영등포구 ‘보현의 집’이라는 노숙인 진료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대학 3학년, 중학교 3학년인 아들딸은 노숙인들 속에서 키웠다. 다일천사병원 시절에는 병원 옆 사택에서 살았다. 그가 노숙인에게 관심을 가진 계기는 의대 2학년 시절 자원봉사 나간 청량리역에서 비를 맞으며 밥 먹는 사람들을 보고 받은 충격이었다. “빗물과 국물이 뒤섞인 밥을 먹는 분들을 보면서, 이분들은 병이 많을 것 같다. 여기저기 다치고 찢어지고 의사소통도 잘 안 되는 저분들. 저런 분들을 제대로 치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가 노숙인 956명의 주요 질병을 분석한 보고서는 2015년 ‘질병과 가난한 삶’(청년의사)으로 정리돼 출간됐다. 책은 노숙인들의 재활, 사회 복귀를 위한 지원 정책도 함께 제시했다.

○“의료만으로는 부족하다”

노숙인을 돌보다 보니 의료만으로는 부족했다. 재활과 주거, 자립 지원까지 일의 영역이 넓어졌다. “병이 나아도 노숙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면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고 일자리와 새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해요. 기댈 수 있는 인간관계도 중요하죠.”

2009년 성공회와 함께 서울역 다시서기 의원을 열면서 여성 노숙인들의 쉼터인 ‘마더하우스’를 만들었다. 그 뒤 재활과 회복을 돕는 비영리 법인 ‘회복나눔네트워크’도 만들었다.

“노숙인들은 우선 길에서 살지 않게 되는 것만으로도 상태는 훨씬 좋아져요. 그런데 집 안에 틀어박혀 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나오라고 일자리 만들어주면 한동안 잘하다가 우울해져서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은둔에 들어가거나….” 말을 이어가던 그는 “늘 우울한 사람들 옆에 있다 보니 자꾸 우울해진다”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견뎌요.

“그냥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수다 떨고 하다 보면 기운이 나요. 친구들과 오랫동안 많은 삶을 나눠 왔고, 그렇게 붙들고 같이 가는 거죠.”

그는 또 “50세를 넘기면서, 요즘 부쩍 ‘애들을 돌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다른 형태, 다른 이유로 길에 나오는 아이들을 만나게 됐다는 것.

○ 함께 수다 떠는 동행들이 붙잡아주는 삶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최 씨를 지탱하게 해주는 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대문구 북가좌동 불광천변에 자리한 스마일박스에 함께 갔다.

사단법인 회복나눔 네크워크 김진희 사무국장(50)은 대학 시절 이래 30년 이상을 함께 일해 온 ‘영혼의 단짝’ 같은 존재다. 최 씨가 벌여 온 모든 활동의 업무적 뒷받침을 해 왔다고 한다. 10년 지기인 김지영 트리니티패밀리협동조합 이사장(50)은 회복이 필요한 젊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시작한 식당 ‘스마일박스’ 사업에 매달리고 있다.

화제는 전날 찾아온 가출소녀 얘기부터 시작됐다. 지난주부터 이들이 알게 된 아이의 친구의 친구라 했다. 경찰이 엄마 같은 멘토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며 소개했다. 아이는 조금 친해지고 나니 자기 얘기, 친구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다음은 김지영 이사장의 얘기다.

“말도 안 되는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아요. 가정 폭력, 성폭력, 근친 성폭력. 아버지가 감옥에서 집에 돌아온 경우,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도망쳐서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 성범죄에 노출되고 임신도 하고…. ”

―그 아이들이 마음 열고 얘기할 때 뭘 기대하는 걸까요.

“얘들은 얘기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자살을 시도해요. ‘죽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카톡에 대답해주는 것. 아이 하소연 들어주고 ‘힘들겠다’며 공감해주고 지지해주고. 잠시 만나서 다독이고 응급처치 필요한 경우 치료받게 하고 하룻밤 피할 수 있는 곳 수배해주고 그런 도움이죠.”

○어른과의 관계 제대로 맺은 적 없는 아이들

“이런 일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해요.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보호자가 있는 미성년자를 집 나오라고 해서 우리가 데리고 있을 수는 없죠. 또 아이들은 기대도 많지만 필요한 것도 많아요. 예컨대 이런 아이들일수록 일자리도 원해요. 의식주를 위한 돈이 필요한 거죠. 하지만 미성년자는 부모 동의 없이는 취업이 안 되죠. 그 와중에 또 ‘넌 사실 지금 공부해야 할 때’라고 말해줘야 하기도 해요.”

―엄마 세대와 대화를 해본 경험 자체가 처음인 아이들도 많겠어요.

“이 아이들, 아침에 일어나면 챙겨서 학교 가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제가 ‘너 학교 매일 가야 한다. 학교 가면 인증샷 보내라’고 하니 정말 아침마다 인증샷을 보내요. 그러면 ‘아이고 우리 ○○이 잘 일어났네, 학교 가네’ 이런 답장을 보내는데 그게 그 아이에겐 기쁜 일인가 봐요.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죠.”

○일자리 창출 위한 배달음식 전문 식당

최영아 씨가 힘의 원천인 두 친구와 함께 배달전문 식당 스마일박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김진희 최영아 김지영 씨.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세 사람은 당장 시급한 일로 스마일박스 사업이 잘되길 바란다고 입 모아 말한다.

“아이들과 관계를 시작하려면 일거리가 있어야 해요. 양파라도 썰면서 ‘넌 왜 칼을 무서워하니?’ 이렇게 대화를 시작하는 거죠. ”

지난해 10월 일단 해보자며 시작한 일이지만 월 600만 원씩 적자가 났다. 6개월 만에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하려는 순간 최 씨에게 라이나 재단에서 주는 사회공헌상 상금이 들어오게 됐다. 기사를 찾아보니 상금 1억 원이다. 11월에는 아산재단이 주는 의료봉사상을 수상하게 된다. 상금 2억 원이다.

“신기하죠. 더 이상은 힘들다고 생각한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듯 상금이 들어오네요.”

현재 고용 직원은 4명이다. 주 4일, 주 2일 등 각자 편한 근무 체계로 일하게 한다. 최저임금보다는 많이 주는 게 원칙이다. 한국어를 못하는 난민에게는 마감 시간에 청소를 돕게 하는 식으로 일거리를 준다. 지금 가장 몰두하는 것은 직접 만든 ‘빼빼 유니짜장’을 온라인 판매하는 것. 설탕과 조미료를 빼고 칼로리를 낮춘 건강 레시피라 벌써부터 평판이 좋다고 한다.

“많이 팔려야 아이들 일거리도 많아지고 더 많은 아이들을 고용할 수 있어요. 이 아이들이 일하는 재미를 알아야 회복돼 돌아갈 때 ‘나도 하니까 되더라’는 자신감을 갖고 어떤 삶이건 시작할 수 있지요.”

최영아 씨와 그 친구들의 인생 2막은 이렇게 준비되고 있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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