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는 ‘집’ 아닌 ‘인간관계’가 없는 사람”…‘길 위의 의사’와 단짝들의 동행 [서영아의 100세 카페]

서영아기자 입력 2021-11-07 10:00수정 2021-11-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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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생 2막]노숙인을 돌보는 ‘길위의 의사’ 최영아 씨
20년간 노숙인 돌보기에 진력, 주거와 자활지원까지
‘길 위의 아이들’ 돌보기 위한 준비 시작
‘길위의 의사’, ‘노숙인의 슈바이처’.

내과전문의 최영아(51) 씨는 지난 20년간 이렇게 불려왔다.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 자격증을 딴 2001년, 첫 일터로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병원 ‘다일천사병원’을 택했다. 이후로도 영등포 요셉의원, 서울역 다시서기 의원, 마리아수녀회 도티기념병원 등을 거치며 노숙인들을 보살펴왔다.

현재는 서울시립서북병원 진료협력센터장으로 일하는 그를 지난달 27일 만났다. 서북병원은 과거 ‘행려병자’들의 병원이라 여겨졌고 요즘도 노숙인 장애인 등의 치료를 맡는 공공병원이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코로나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기존 환자들 상당수가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의사소통이 잘 되고 치료 효과가 뚜렷한 환자들을 오랜만에 대하니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하루 빨리 코로나가 종식돼 노숙인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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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한결같이 노숙인들을 보살펴온 최영아 시립서북병원 진료협력센터장은 의료뿐 아니라 주거와 일자리, 인간관계 등 포괄적인 도움을 통해 노숙인들의 일상 복귀를 지원하고자 한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홈리스는 인간관계 회복돼야 사회 복귀 가능
-쪽방이나 쉼터가 있는데도 굳이 길에서 주무시는 분들도 많다고 들었는데요.

“사람이 그리워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음주문제도 있고요. 노숙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뿌리는 인간관계가 안 되는 거예요. 같이 살 사람, 돌아갈 가족이 없는 거죠. 영어로 ‘하우스리스’가 아니고 ‘홈리스(homeless)’인 이유죠. 노숙인들은 인간관계가 회복돼야 사회 안으로 다시 들어올 수 있어요.”

애써 치료해서 내보내면 다시 똑같은 상태가 돼 돌아오는 ‘회전문’ 환자가 적지 않아 ‘밑빠진 독에 물붓는’ 기분이 되기도 한다. 똑같은 환자를 12번째 입원시키게 됐을 때 멘토였던 선우경식 영등포 요셉의원 원장(1945~2008)에게 조언을 구했다. 자신은 한 환자를 60번도 입원시켜봤는데 그 환자는 결국 술을 끊었다는 말을 들었다.

최씨는 요즘 평생 최고의 급여를 받고 있다. 다일천사병원이나 요셉의원에서는 월 100만 원이 고작이었고 서울역 다시서기 의원에서의 월급도 선교단체에서 의사들끼리 후원금 모아 지급해주는 돈이니 많을 수가 없다.

대장항문암 전문 외과의였던 남편도 지금은 영등포구 ‘보현의 집’이라는 노숙인 진료소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대학 3학년, 중학교 3학년인 아들딸은 노숙인들 속에서 키웠다. 다일천사병원 시절에는 병원 옆 사택에서 살았다. 매일 진료소에 놀러다니던 아들은 노숙인 아저씨들에게서 귀여움을 받았다. 8년 터울인 딸은 마더하우스에 데리고 다녀 ‘아는 언니, 아는 이모’가 무척 많다.

그가 노숙인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의대 2학년 시절 자원봉사 나간 청량리역에서 비를 맞으며 밥먹는 사람들을 본 충격이었다. “빗물과 국물이 뒤섞인 밥을 먹는 분들을 보면서, 이 분들은 병이 많을 것같다. 여기저기 다치고 찢어지고 의사소통도 잘 안되는 저 분들. 저런 분들을 제대로 치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가 노숙인 956명의 주요 질병을 분석한 보고서는 2015년 ‘질병과 가난한 삶(청년의사)’으로 정리돼 출간됐다. 책은 노숙인들의 재활, 사회복귀를 위한 지원정책도 함께 제시했다.

노숙인과 노인질병을 주로 치료하는 공공병원인 서북병원 본관을 배경으로 선 최영아 씨. 서북병원은 지난해부터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의료만으로는 부족하다”
노숙인을 돌보다보니 의료만으로는 부족했다. 재활과 주거, 자립지원까지 일의 영역이 넓어졌다. “병이 나아도 노숙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면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고 일자리와 새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해요. 가족까진 아니더라도 기댈 수 있는 인간관계도 중요하죠.”

2009년 성공회와 함께 서울역 다시서기 의원을 열면서 여성노숙인들의 쉼터인 ‘마더하우스’를 만들었다. 그 뒤 재활과 회복을 돕는 비영리법인 ‘회복나눔네트워크’도 만들었다.

우선은 길에서 살지 않게 되는 것만으로도 상태는 훨씬 좋아진다. “그런데 집안에 틀어박혀 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나오라고 일자리 만들어주면 한동안 잘 하다가 우울해져서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은둔에 들어가거나….” 말을 이어가던 그는 “늘 우울한 사람들 옆에 있다보니 자꾸 우울해진다”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견뎌요?

“그냥 같이 있는 친구들과 수다 떨고 하다보면 기운이 나요. 친구들과 오랫동안 많은 삶을 나눠왔고, 그렇게 붙들고 같이 가는 거죠.”

이런 가까운 친구 2명. 사단법인 회복나눔 네크워크 김진희(50) 사무국장은 대학시절 이래 30년 이상을 함께 일해온 ‘영혼의 단짝’같은 존재다. 최 씨가 벌여온 모든 활동의 업무적 뒷받침을 해왔다고 한다. 10년지기인 김지영(50) 트리니티패밀리협동조합 이사장은 회복이 필요한 젊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시작한 식당 ‘스마일박스’ 사업에 매달리고 있다.

그는 “50세를 넘기면서, 요즘 부쩍 애들을 돌봐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다른 형태, 다른 이유로 길에 나오는 아이들을 만나게 됐다는 것.

“노숙인이 어설픈 가정을 만들면서 그 자녀들까지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부 다문화 가정도 비슷하지요. 그런 10대 아이들이 밖을 떠도는 거죠.”

스마일박스는 인간관계를 꺼리는 직원들을 배려해 손님과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배달전문 식당으로 시작했다. 왼쪽부터 김진희 최영아 김지영 씨.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함께 고민하고 수다 떠는 동행들이 붙잡아주는 삶
최 씨를 지탱하게 해주는 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대문구 북가좌동 불광천변에 자리한 스마일박스에 함께 갔다. 본래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로 쓰던 장소를 지난해 10월 배달음식 전문식당으로 만들었다.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직접 손님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배달전문 식당을 택했다고 한다.

화제는 담박에 전날 찾아온 가출소녀 얘기로 쏠렸다. 지난주부터 이들이 알게된 소녀의 친구의 친구라고 했다. 처음에 경찰이 엄마같은 멘토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며 이들에게 소개했다. 아이는 조금 친해지고 나니 자기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친구 얘기, 친구의 친구 얘기도 줄줄이 따라나왔다. 다음은 김지영 이사장의 얘기다.

“말도 안되는 사연들이 많아요. 가정폭력 성폭력 근친성폭력. 아버지가 감옥에서 집에 돌아온 경우,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도망쳐서 거리를 헤내는 아이들, 성범죄에 노출되고 임신도 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들이 다 있는 거죠.”

-그 아이들이 마음 열고 얘기할 때 뭘 기대하는 걸까요.

“얘들은 얘기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자살을 시도해요. 내가 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막막해하는 거죠. ‘죽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카톡에 대답해주는 것. 아이 하소연 들어주고 ‘힘들겠다’‘며 공감해주고 지지해주고. 잠시 만나서 다독이고 응급 필요한 경우 치료받게 하고 하룻밤 피할 수 있는 곳 수배해주고 그런 도움이죠.”

○제대로 된 어른과의 관계를 맺은 적 없는 아이들
“이런 일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해요.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보호자가 있는 미성년자를 집 나오라고 해서 우리가 데리고 있을 수는 없죠. 또 아이들은 미래가 있잖아요. 기대도 많지만 필요한 것도 많아요. 예컨대 이런 아이들일수록 일자리도 원해요. 의식주를 위한 돈이 필요한 거죠. 하지만 미성년자는 부모 동의 없이는 취업이 안 되죠. 무작정 아무 일이나 시킬 수 없고 와중에 또 ’넌 사실 지금 공부해야 할 때‘라고 말해줘야 하기도 해요.”

-엄마세대와 대화를 해본 경험 자체가 처음인 아이들도 많겠어요.

“정작 제 자식은 저랑 그렇게 얘기 안 해요. 며칠 전 대학생 아들이 제가 열심히 카톡하는 거 보더니 ’엄마 이제 중학생이랑 카톡도 해?‘라며 기가 막혀 하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너한테나 인기 없지. 밖에 나가면 인기 많아‘라고 쏘아줬죠(웃음).”

그는 얘기를 이어간다. “이 아이들, 아침에 일어나면 챙겨서 학교가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제가 ’너 학교 매일 가야 한다. 학교 가면 인증샷 보내라‘고 하니 정말 아침마다 인증샷을 보내요. 그러면 ”아이고 우리 oo이 잘 일어났네, 학교 가네’ 이런 답장을 보내는데 그게 그 아이에겐 기쁜 일인가봐요. 여기서 출발할 수밖에 없죠.“

최영아 씨는 우울한 사람들 곁에서 덩달아 우울해지는 일도 많지만 뜻맞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기운을 낸다고 한다. 스마일박스 식당내 작은 회의실이 이들의 아지트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일자리 창출 위한 배달음식 전문식당
세 사람은 당장 시급한 일로 스마일박스 사업이 잘되길 바란다고 입 모아 말한다.

”아이들과 관계를 시작하려면 일거리가 있어야 해요. 양파라도 썰면서 ‘넌 왜 칼을 무서워하니?’ 이렇게 대화를 시작하는 거죠. 상처받은 사람의 회복을 위해 비즈니스라는 명분을 이용하는 거예요.“

지난해 10월 일단 해보자며 시작한 일이지만 월 600만원씩 적자가 났다. 6개월 만에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하려는 순간 최 씨에게 라이나 재단에서 주는 사회공헌상 상금이 들어오게 됐다. 기사를 찾아보니 상금 1억 원이다. 11월에는 아산재단이 주는 의료봉사상을 수상하게 된다. 상금 2억 원이다.

”신기하죠. 더 이상은 힘들다고 생각한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듯 상금이 들어오네요. 그래도 우린 사업으로 자력갱생 해야 해요. 직원들에게 성공의 경험이 필요하거든요.“

현재 고용 직원은 4명이다. 주 4일, 주 2일 등 각자 편한 근무체계로 일하게 한다. 최저임금보다는 많이 주는 게 원칙이다. 한국어를 못하는 난민에게는 마감시간에 청소를 돕게 하는 식으로 일거리를 준다.

지금 가장 열심히 하려는 일은 스마일박스에서 직접 만든 ‘빼빼 유니짜장’을 급속냉동해 온라인 판매하는 것. 설탕과 조미료를 빼고 칼로리를 낮춘 건강 레시피라 벌써부터 평판이 좋다고 한다. 11월 중에 온라인 스토어를 열 준비를 하고 있다.

”많이 팔려야 아이들 일거리도 많아지고 더 많은 아이들을 고용할 수 있어요. 이 아이들이 일하는 재미를 알아야 회복돼 돌아갈 때 ‘나도 하니까 되더라’는 자신감을 갖고 어떤 삶이건 시작할 수 있지요.“

최영아 씨와 그 친구들의 인생 2막은 이렇게 준비되고 있었다.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
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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