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영양실조로 사망 작년 345명… 외환위기후 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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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여파 소외계층 생존 위협… 무료급식소 문닫고 후원 줄어

올 6월 홀로 숨진 채 발견된 30대 남성의 자취방에 있는 냉장고 내부가 텅 비어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영양실조나 영양결핍으로 숨진 사람은 345명에 달한다. 에버그린 제공
올 6월 홀로 숨진 채 발견된 30대 남성의 자취방에 있는 냉장고 내부가 텅 비어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영양실조나 영양결핍으로 숨진 사람은 345명에 달한다. 에버그린 제공
냉동실에 얼려둔 ‘봉지밥’을 꺼냈다. 이어 도시락에 남은 밑반찬을 긁어모았다. A 씨(46·충남)는 요즘 이렇게 하루 끼니를 해결한다.

그는 당뇨와 허리 디스크로 거동이 어렵다. 그나마 종교시설의 후원 덕분에 생계를 이어갔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시설이 문을 닫았다. A 씨의 수입은 한 달 23만 원으로 줄었다. 올 7월 지역 푸드뱅크의 도움을 받기 전까지 몇 달 동안 라면 한 봉지로 하루를 버텼다. 그는 “‘굶어죽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2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의 극빈층과 소외계층이 말 그대로 생존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이 과정에서 현 복지제도의 허술함이 드러나고 있다. 6일 동아일보가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0년 영양실조와 영양결핍으로 숨진 사람은 345명이었다.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231명)의 1.5배로 늘었다. 영양실조 등으로 숨진 사망자가 300명을 넘어선 건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370명) 이후 20년 만이다. 지난해 사망자 4명 중 3명은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80세 이상 노인이 177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무료 급식소와 푸드뱅크 등 결식 문제를 해결해 온 복지시설이 문을 닫거나 기부가 줄어든 때문으로 보고 있다. 손미아 강원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그간 복지 사각지대를 지탱해 온 장치가 코로나19로 멈춘 결과”라며 “소외계층이 ‘방치계층’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무료급식소 문닫자… “한끼로 하루나고, 못먹는날은 그냥 버티죠”
작년 영양실조 사망 345명


가을비가 내린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후문. 이모 씨(72)는 턱과 어깨 사이로 우산을 괸 채 주저앉아 건빵 봉지를 뜯었다. 복지단체가 나눠 준 건빵이 오늘 그의 점심 식사다. 코로나19 유행 전에는 서울역이나 청량리역 앞 무료 급식소에서 받은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이후 급식소가 자주 문을 닫으며 주먹밥도 먹지 못하는 날이 늘었다. 이 씨는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한 끼만 먹고 하루를 지낸다”며 “못 먹는 날은 그냥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 무료급식 줄거나 아예 중단


지난해 영양실조나 영양결핍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6만1822명. 1년 전인 2019년 23만1238명보다 13.2% 늘었다. 오랫동안 필수 영양소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거나 라면 등 정제된 탄수화물만 먹다 보면 이런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다. 전문가들은 영양실조 사망자와 환자가 늘어나는 것은 말 그대로 ‘굶는 사람’이 늘어난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 배경에는 결식자 문제를 해결해 온 급식시설의 연이은 폐쇄가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원각사 노인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손모 씨는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250명분을 만들었는데, 다른 급식소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우리 쪽으로 사람이 몰려 지금은 하루 380명분을 만든다”고 말했다. 손 씨는 “늘 오던 분이 안 보이면 ‘또 가셨다’고 생각한다. 불과 3주 전에도 41세 남성 한 분이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기부 받아 저소득 소외계층에 나눠주는 푸드뱅크도 상황이 비슷하다. 전국 푸드뱅크 450곳 중 197곳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휴관 사태를 겪었다. 지난해 전국 푸드뱅크 모집액 역시 2019년 대비 10% 넘게 줄었다.

○ 거리 두기에 단절된 소외계층

현장의 사회복지사들은 코로나19 영향으로 갑자기 형편이 나빠지면서 긴급복지제도가 있는 것도 모른 채 굶주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이미 지방자치단체의 관리 대상이라면 계속해서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폐업으로 벌이가 끊기면 복지당국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특히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방문상담이 줄면서 새로운 취약계층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올해 경기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70대 남성이 숨졌는데, 함께 사는 아내가 지적장애를 가진 탓에 며칠 후 발견되기도 했다. 수도권의 한 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A 씨는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수급자가 아니어도 형편이 어려우면 무조건 식사를 제공하거나 도시락을 배달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는 있지만 충분하다고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독사 현장을 주로 정리하는 전문업체인 에버그린의 김현섭 대표는 “집을 청소하다가 냉장고를 열어보면 대부분 둘 중 하나다. 반쯤 남은 소주병만 있거나, 전기가 끊겨 냉장고 속 음식이 모두 썩은 경우”라고 전했다

○ 100세 시대와 1인 가구 증가의 비극

영양실조와 영양결핍으로 인한 사망자 4명 중 3명이 고령층인 것은 초고령사회(노인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를 4년 앞둔 한국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인 가구나 노인 부부 가구가 늘어날수록 돌봄 사각이 커진다. 코로나19 등의 이유로 복지 단체의 활동이나 사회복지사 방문이 줄어들면 이들은 자칫 방치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기초연금과 장기요양보험으로 대표되는 노인복지 제도에 건강 및 영양 관리를 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앞으로 노인 문제가 거대한 파도처럼 한국 사회를 덮칠 텐데, 기초연금을 몇 만 원 인상하는 걸로는 해결할 수 없다”며 “현금과 현물 지원을 통합하고 연계하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전혜진 인턴기자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영양실조#사망#소외계층#생존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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