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오징어 게임

동아일보 입력 2021-09-24 03:00수정 2021-09-24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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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보려고 넷플릭스 가입했다 한드만 본다’는 이들이 많다. 요즘 한드는 K드라마로 불리며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북미에서도 주목받는 콘텐츠로 부상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17일 공개된 넷플릭스의 9부작 ‘오징어 게임’이 K드라마로는 처음으로 미국 넷플릭스의 인기 프로그램 순위 1위에 올랐다.

▷오징어 게임은 빚더미에 깔려 죽기 직전의 벼랑 끝 인생들이 모여 우승 상금 456억 원을 놓고 목숨 건 게임을 벌이는 내용. 영화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의 황동혁 감독이 연출을, 이정재가 주연을 맡았다. 공개된 지 4일 만인 21일 미국 태국 사우디아라비아 멕시코 등 22개국 넷플릭스에서 1위를, 일본 영국 프랑스 등 50개국에서는 2위를 기록했다. 전 세계 넷플릭스 드라마 순위에서도 K드라마론 처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

▷드라마는 노래 만화 게임에 비해 문화적 장벽이 높은 장르다. 오징어 게임은 보편적 특수성으로 이 장벽을 넘었다. 살벌한 경쟁이라는 글로벌한 주제를, ‘배틀 로얄’ ‘도박묵시록 카이지’ 같은 인기 생존 게임물의 형식에 담되, 게임의 룰을 단순화해 문화권이 다른 시청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뽑기나 구슬치기 같은 한국적 게임과 한국적 신파, 동화적 미장센을 가미해 익숙한 듯 낯선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영어와 일본어 더빙 버전을 추가한 것도 주요 시장에서 ‘1인치의 장벽’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K드라마의 경쟁력은 치열한 경쟁에서 나온다. 한류 붐을 처음 일으킨 ‘겨울연가’(2002년)는 지상파 3사의 전유물이던 드라마 시장에 외주 제작 부분적 의무화로 진출한 외주 제작사가 선보인 드라마다. 2세대의 시작을 알린 ‘미생’(2014년)은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케이블 채널에서 히트시킨 첫 작품. ‘비주류’ 미생의 메가 히트 후 K드라마는 재벌 2세와의 연애담에서 벗어나 판타지물 학원물 등 다양한 세부 장르로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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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K드라마의 디딤돌이 된 건 넷플릭스다. 넷플릭스의 수백억 원대 투자를 받고 넷플릭스를 통해 190여 개국의 시청자들과 시차 없이 만나면서 ‘킹덤’ 같은 좀비물이나 생존 게임물 등 더욱 과감한 콘텐츠 실험이 가능해졌다. 지난해 일본 넷플릭스 톱10의 절반, 싱가포르 톱10 중 8개가 K드라마다. ‘굿닥터’ ‘보이스’ ‘라이브’ 등 포맷 수출도 한다. 이어령 선생은 “끊임없이 변주되는 ‘꼬부랑 할머니’로 대표되는 이야기꾼의 DNA”를 한류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이 이야기꾼 DNA가 좁은 내수 시장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도전정신과 만나 K드라마의 새 역사를 써 나가고 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횡설수설#오징어게임#넷플릭스#k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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