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연예계 휘몰아치는 ‘홍색 정풍’… “시진핑식 문화대혁명”[글로벌 포커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 김수현 기자 입력 2021-09-18 03:00수정 2021-09-22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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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알리바바 등 IT업계 이어 대중문화 기강잡기
연예계 대형 스캔들 잇따라… 내년 3연임 준비하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사흘 앞둔 6월 2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공산당 고위 관료들이 당에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이 대형 스크린에 보인다. 지난달 연예인 팬덤 규제 방안을 발표한 중국 당국은 이달 2일에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의 방송 활동과 고액 출연료를 금지했다. 베이징=AP 뉴시스·인스타그램 화면 캡쳐
중국에 거센 규제강화 바람인 ‘홍색 정풍(整風)운동’이 몰아치고 있다. 당국이 빅테크, 사교육, 연예계, 대학가, 인터넷 등 사회 전반에 대한 기강 잡기에 나서고 있다. 특히 유명 연예인과 팬덤을 향한 칼날은 유독 강력해 “자고 일어나면 새 규제가 나오고 퇴출 연예인 명단 또한 추가된다”는 말이 나온다.

당초 당국이 알리바바, 텐센트 등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을 규제할 때만 해도 해당 기업이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를 위협할 만큼 덩치를 키운 터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장기집권 걸림돌을 치우려는 목적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연예계 규제는 얼핏 보면 ‘이것이 시 주석의 장기집권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란 의문이 들게 한다. 대중의 선망을 받는 인기 연예인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사실이나 권력과는 별 관계가 없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10대 시절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산시성 토굴에서 하방(下放·마오가 고위직과 그 자녀를 농촌 및 공장에서 일하도록 한 정책)했던 시 주석이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연예산업 전반, 특히 스타를 추종하는 팬덤 문화를 ‘자본주의의 썩은 잔재’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지난달 17일 ‘부의 재분배’를 강조하며 ‘공동부유(共同富裕)’ 개념을 주창한 시 주석에겐 공동부유의 정반대에 있는 집단이 연예인으로 여겨진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 등은 아마존, 구글 등에 미 IT 공룡에 맞먹는 세계적 기업을 키워낸 공이 있고 일반인이 그를 접할 기회 또한 많지 않지만 늘 대중과 호흡하는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은 15억 인민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당국이 연예계를 가장 손보기 쉽고, 규제 효과 또한 강력한 정풍운동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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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톱스타의 잇단 구설수

세금 탈루 혐의를 받고 연예계에서 퇴출된 정솽.
중국에서는 연예계 정풍운동을 촉발한 인물로 올해 초 대리모 스캔들에 휩싸인 여배우 정솽(鄭爽·30)을 꼽는다. 그는 2018년 미국에서 당시 사귀던 연인과 비밀 결혼을 한 후 두 명의 대리모를 고용해 이들로부터 각각 한 명의 아이를 낳으려 했다. 두 사람은 대리모들이 임신 약 7개월일 때 결별했다. 정솽은 낙태를 종용했지만 대리모들이 거절했고 두 딸이 태어났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 시민권자인 두 아이가 중국으로 돌아오려면 어머니 정솽의 동의가 필요했다. 정솽은 거부했고 현재 헤어진 연인이 미국에 머물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은 정솽은 지난달 세금 탈루에 따른 천문학적 벌금까지 맞고 연예계에서 퇴출됐다. 당국은 지난달 그에게 2억9900만 위안(약 534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2018년 톱스타 판빙빙(范빙빙·40)이 세금 탈루로 8억8400만 위안(약 1596억 원)의 벌금을 부과받은 후 두 번째로 많은 액수다.

세금 탈루 의혹을 받고 연예계에서 모습을 감춘 자오웨이.
공교롭게도 이때를 전후해 유명 연예인의 대형 스캔들이 잇따라 터졌다. 영화 ‘적벽대전’, 드라마 ‘황제의 딸’의 주인공으로 판빙빙 못지않은 톱스타였던 자오웨이(趙薇·45)는 세금탈루 의혹으로 현재 행방이 묘연하다. 자오는 2014년 알리바바의 영상사업 자회사 알리바바픽처스에 투자해 44억 홍콩달러(약 6607억 원)의 이익을 거뒀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규모의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에 직면했다. 현재 중국의 주요 포털과 소셜미디어에는 자오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의 이름이 모두 삭제됐다. 이에 관한 설명 또한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일부 매체는 그가 이미 프랑스로 도피했다는 설을 제기했다. 자오가 당국이 눈엣가시로 여기는 알리바바 자회사에 투자했다는 점, 과거 일본 욱일기를 연상케 하는 옷을 입고 공개석상에 등장했다는 점 또한 미운털이 박힌 이유로 꼽힌다.

최근 스타로 급부상한 배우 장저한(張哲瀚·30)은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 앞에서 ‘V’자를 그리며 찍은 사진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7월 말 아이돌 그룹 ‘엑소’의 전 멤버 크리스(중국명 우이판·吳亦凡·30) 는 강간죄로 체포됐다. 이들도 연예계에서 퇴출됐다.

2014년 대마초를 소지한 혐의로 중국 공안에 체포된 커전둥.
이 외 2008년 유명 여배우 여럿과 찍은 나체 사진과 동영상이 유출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배우 천관시(陳冠希·41), 2008년 베이징 여름올림픽 주제가를 불렀던 유명 가수 만원쥔(滿文軍·52) 등도 언제든 당국의 퇴출 명단에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부남인 두 사람은 모두 불륜과 마약 의혹에 휩싸였다. 배우 커전둥(柯震東·30)과 황하이보(黃海波·45) 또한 각각 마약, 성매매 스캔들에 직면했다.
홍콩 유명 배우 청룽의 아들인 팡주밍은 2014년 대마초 소지 혐의로 체포됐다.


○ 오디션 프로그램 투표 중 우유 27만 병 폐기

5월 유명 유제품회사 멍뉴의 ‘우유 27만 병 폐기 사건’ 또한 당국의 분노를 샀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멍뉴는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 ‘청춘유니3’과 손잡고 신제품을 출시했다. 우유 뚜껑에 QR코드를 부착해 소비자가 휴대전화로 이를 스캔하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특정 아이돌 연습생에게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습생에게 표를 몰아주기 위해 멀쩡한 우유를 대량으로 구매해 QR코드만 스캔한 뒤 먹지 않고 버렸다. 특히 일부는 노인층에게 푼돈을 준 후 이들로 하여금 하수구 옆에서 버려진 우유 뚜껑을 모으도록 했다. 펑파이 등 중국 매체들은 이 과정에서 버려진 우유가 최소 27만 병일 것으로 추산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멍뉴와 ‘청춘유니3’ 제작사가 사과했지만 사이버 감독기관 국가사이버정보판공실(CAC)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춘유니3 제작은 중단됐고 각종 팬클럽 계정도 폐쇄됐다.

시 주석은 지난해 8월 ‘잔반 남기지 않기’ 운동을 주창할 정도로 음식 낭비를 싫어하는 인물이다. 당시 그는 “중국 전역의 음식 낭비 현상에 가슴이 아프다. 단호히 막아야 하므로 관련법을 제정하라”고 지시했다. 이때부터 ‘먹방’에 최대 17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음식낭비 금지법이 시행됐다. 접시를 깨끗하게 비우자는 ‘광판운동’, 식사하는 사람 수보다 1인분을 적게 시키자는 ‘N―1 운동’도 시작됐다. 잔반을 극도로 싫어하는 최고 권력자가 장기집권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연예인을 추종하는 어린 팬들이 우유 27만 병을 하수구에 버리는 행동은 당국으로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성범죄자인 크리스를 구명하려는 운동이 벌어졌던 것 또한 당국으로선 달갑지 않다. 크리스 체포 후 일부 팬은 그의 변호사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모금을 했다. 웨이보에는 ‘인민해방군은 200만 명, 공안은 250만 명이지만 크리스의 웨이보 추종자는 5000만 명이다. 우리가 그를 감옥에서 구할 수 있다’는 글이 나돌았다.

○ 출연료·외모·오디션 투표 등 전방위 규제


방송규제기구인 국가광전총국 등은 이달 들어 연예인과 팬덤에 대한 규제를 속속 쏟아내고 있다. 너무 많은 규제가 한꺼번에 발표되다 보니 주요 매체들이 규제를 일일이 따로 정리해서 보도할 정도다.

국가광전총국은 불법을 저지르거나 도덕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불량 연예인’이 소속사를 옮겨 다시 연예계에 발을 들이는 것을 금했다. “연예인은 덕을 갖추고 공산당과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 도덕성 또한 갖춰야 한다”고 했다. 특히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연예인이 ‘레드라인’을 한 번만 넘어도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는 점을 알아야한다고 엄포를 놨다.

국가광전총국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투표도 불허했다. 온라인 투표는 물론 현장 투표, 순위 매기기 등도 안 된다. 팬들이 금품을 살포하거나 투표를 조작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당국이 액수를 콕 집어 밝히지는 않았지만 관행에 과도하게 어긋나는 비싼 출연료를 받는 일도 허용되지 않는다. 출연료 규정을 위반하거나 탈세를 위해 이면계약을 한 연예인은 즉시 퇴출된다.

외모 규제도 등장했다. 당국은 “방송에서 연예인을 출연시킬 때 ‘냥파오(娘포·여자처럼 예쁜 남자 연예인에 대한 경멸 표현)’ 같은 기형적인 미적 기준을 과감히 제거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서구 기준이라면 성소수자 차별로 여겨질 수 있는 행위다.

소셜미디어에서의 팬덤 활동 또한 철퇴를 맞았다. 최근 웨이보는 ‘연예기획사와 팬클럽 행동지침’을 발표했다. 우선 팬들이 연예인을 위해 모금을 벌이는 것이 엄격히 금지된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박지민·26)의 중국 팬클럽이 비행기에 대형 사진 광고를 하면서 불과 1시간 만에 230만 위안(약 4억 원)을 모았던 행위 등을 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하면 해당 팬덤 계정이 곧바로 폐쇄된다. 지민 팬클럽의 웨이보 계정은 60일간 활동이 정지됐다. 연예인 사생활에 관한 게시물도 작성할 수 없다.

관변 인사들은 연일 당국의 규제를 칭송하며 연예계 차원의 자정에 나서자고 주장한다. 왕하이린(汪海林) 중국영화문학학회 부회장은 “스타의 부덕(不德)은 현재의 스타 양성 체계가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현재의 인기 연예인은 팬덤의 인터넷 트래픽으로 만들어지고 소속사에 의해 포장된 가공의 상품이라고 비판했다. 과거에는 배우가 되려는 사람들이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표준 이상의 도덕성을 갖췄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혼과 뿌리가 없는 스타들은 도덕적으로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산시성 시안에서 연예인 양성단체를 이끌고 있는 루신(盧흠) 대표는 중국 연예계의 타락이 한국 때문이라는 비상식적인 주장까지 펼쳤다. 그는 “현재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스타들은 한국의 아이돌 배출 체계를 답습해 만들어졌다”며 문화와 도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이런 스타들이 순식간에 돈과 지위를 얻는 바람에 자멸하고 있다고 했다.

○ ‘21세기 문화대혁명’ 비판

서구 언론은 당국의 이런 행보가 21세기판 문화대혁명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2012년 말 시 주석 집권 후 내내 권위주의 통치가 이어지긴 했지만 문화예술 분야에 이 정도의 규제가 가해진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CNN은 “중국 내부에서도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선전선동을 위한 연예계 규제가 문화대혁명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당국이 유명 연예인을 당과 정부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도록 하는 일종의 ‘역할 모델’로 여긴다며 “시 주석 체제에서 공산당이 점점 사상과 문화 통제에 집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국 가디언은 “현재 많은 이들이 문화대혁명 시절의 메아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공산당이 원하는 사회는 모든 것이 완벽하고 문제가 없는 일종의 무균(無菌)사회”라며 “공산당은 연예인 팬덤이 사회 불만세력으로 바뀌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진단했다. 내년 10월 20차 공산당 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지으려는 시 주석이 ‘전 인민이 다 같이 잘 먹고 잘사는 세상’을 위해 공동부유를 주창한 마당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일 화려한 생활을 강조하는 일부 스타야말로 용납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중국#연예계#홍색 정풍#시진핑식 문화대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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