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용관]올림픽에서 지워진 이순신

정용관 논설위원 입력 2021-07-19 03:00수정 2021-07-1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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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유럽 해전의 전설인 넬슨 제독에 가장 처음 비교한 이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메이지 유신 때인 1892년 측량 기사로 알려진 세키 고헤이라는 사람이 쓴 ‘조선 이순신전’이라는 소책자다. “당시 영국을 굳게 지켜 나폴레옹의 전화를 입지 않게 한 것은 영국의 이순신이라 할 수 있는 넬슨의 전공이요, 또 조선을 지켜 국운의 쇠락을 면하게 한 것은 조선의 넬슨이라 할 수 있는 이순신의….” 단재 신채호 선생이 충무공을 ‘내리손(乃利孫)’, 즉 넬슨 제독에 비교하며 “20세기 금일에 내리손이 리충무와 바다에서 서로 마주친다면 필경 아이에 불과할진저…” 등의 글을 쓴 것은 그로부터 16년 뒤다.(‘일본인과 이순신’·이종각 저)

▷1960년대 말 이후 일본 국민작가로 불리는 시바 료타로가 칼럼과 강연 등을 통해 “동양이 배출한 유일한 바다의 명장”이라고 충무공을 소개하고 다녔다. 이순신이란 이름 석 자가 군인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알려지게 된 계기다. 메이지 시대 일본이 충무공을 군신(軍神)으로 떠받든 이면에는 충무공에게 패배한 원인을 직시하자는 뜻이 담겨 있을 것 같다. 일본 해군력 증강의 명분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분석도 있다. 충무공은 존재 자체가 일본엔 콤플렉스인 셈이다.

▷대한체육회가 도쿄 올림픽 한국 선수촌 아파트에 걸었던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는 현수막이 사흘 만에 철거됐다. 이 문구는 충무공이 명량해전(1597년)을 앞두고 선조에게 올린 장계의 ‘금신전선상유십이(今臣戰船尙有十二·신에게는 아직 배가 열두 척 있나이다)’에서 따왔다. 이를 일본 측이 ‘반일 메시지’라며 정치 행위를 금지한 올림픽 헌장 50조 위반이라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측에 입김을 행사한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범 내려온다’ 글자 밑에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 지도가 그려진 현수막을 대신 내걸었다.

▷IOC는 “전투에 참가하는 장군을 연상시킬 수 있다”며 철거를 요구하면서 욱일기 사용에 대해서도 같은 조항을 적용하기로 약속했다는 게 대한체육회의 설명이다. 그러나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욱일기 디자인은 정치적 주장을 담고 있지 않다”며 경기장 반입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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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일본이 사용한 군기다. 일본 군국주의와 침략을 상징하는 깃발이다. 국제 경기가 열릴 때마다 욱일기 반입이 국제적으로 논란이 되곤 했다. 충무공의 ‘금신전선상유십이’에는 일본의 침략으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처지가 된 조국을 방어하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시간적으로도 424년 전의 일이다. 이것을 트집 잡으면서 침략을 상징하는 욱일기는 ‘디자인’이라 괜찮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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