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 아지매들의 본향, 부산[김창일의 갯마을 탐구]〈63〉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입력 2021-07-08 03:00수정 2021-07-08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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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삶의 무늬는 소리로 기억된다. 이른 새벽 싱싱한 생선을 확보하려는 자갈치 아지매의 우렁찬 목소리. ‘재칫국(재첩국) 사이소’를 외치며 골목을 누비던 재첩국 아지매. 선박에 매달려 철판을 두드리던 깡깡이 아지매. 이 아지매들이 내는 소리는 항도 부산을 움직이는 심장소리였다.

소리로 상기되는 재첩국 아지매에 대한 기억은 뚜렷하다. 매일 새벽 잠결에 듣던 ‘재칫국사이소, 재칫국’이라는 외침은 점점 크게 들렸다가 희미하게 멀어져 갔다. 한 번쯤은 재첩국 아지매를 봤을 텐데 만난 기억은 없고, 소리만 생생하다. 낙동강 하구에서 잡은 재첩은 대티 고개, 만덕 고개, 구덕령 고개 등 일명 ‘재첩고개’를 넘어 부산 골목골목으로 퍼졌다. 재첩국 아지매가 다니는 골목의 집들에서는 아침상에 재첩국이 자주 올랐고, 자연스럽게 부산 서민음식이 됐다. 낙동강 하구의 재첩마을 어민들은 재첩을 잡고, 아낙네들은 재첩국 동이를 이고 행상을 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일본으로 수출해 판로가 넓어지면서 재첩잡이 배가 넘쳐났다. 재첩국 행상도 부산을 넘어 김해, 밀양 삼랑진, 양산 물금 등으로 확산됐다. 1980년대 낙동강하굿둑 조성으로 재첩잡이는 쇠퇴했고, 재첩국 아지매를 보기 어렵게 됐다.

부산 하면 자갈치시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자갈치시장을 만든 사람들이 자갈치 아지매다. 일제강점기에 부산 남항으로 입항하는 어선에서 신선한 생선을 받아 좌판을 펼친 것이 자갈치시장의 시초다. 6·25전쟁으로 피란민이 몰려들었다.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은 자갈치 바닷가에 노점을 차렸고, 급속히 확장됐다. 곰장이구이 판때기장수, 삶은 고래 고기를 파는 판때기장수, 반건조 생선을 파는 판때기장수 등 변변한 시설 없이 널빤지 하나 걸쳐두고 수산물을 팔던 판때기 아지매들. 그들이 자갈치시장을 만들었고, 억척스러움을 상징하는 자갈치 아지매가 됐다.

영도대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깡깡이마을’이라 불리는 대평동이 있다. 피란민과 선원, 이주노동자들이 모여든 곳이다. 여기에 깡깡이 아지매가 있다. 여성들이 밧줄에 매달린 채 종일 망치질을 했다. 망치를 두드려 선박 표면에 슨 녹과 페인트를 떼어 낼 때 ‘깡깡’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피할 곳 없는 땡볕, 끝없이 반복되는 망치질, 숨쉬기조차 어려운 분진, 공중에 매달린 공포, 온종일 듣는 쇳소리로 인한 이명과 불면증 등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삶을 이어갔다. 수십 년간 깡깡이 소리에 노출돼 청력이 손상됐지만 깡깡이질로 자식을 키워냈기에 고마운 소리라고 말한다. 억척스러움에 억척스러움을 더한 깡깡이 아지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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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은 자갈치 아지매가 열고, 아침잠은 재칫국 아지매가 깨우며, 낮 열기는 깡깡이 아지매가 지폈다. 생활력 강한 여성의 상징인 부산 3대 아지매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장이 국립민속박물관에 펼쳐졌다. 국립민속박물관 직원들과 부산 지역 연구자들이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열리는 ‘부산, 바다와 뭍의 나들목’ 특별전은 화려하거나 세련된 전시는 아니다. 질퍽한 현실, 땀 냄새, 비린내 물씬 풍기는 전시다. 장마면 어떠랴. 서울 한복판으로 부산 여행을 떠나 보자.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억척 아지매#본향#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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