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이정은]패권 경쟁 정점 찍을 美-中 정상회담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21-06-28 03:00수정 2021-06-2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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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담 불가피한 적대국과의 회담
반대파 비판 넘는 최고위급 결단 필요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16개 분야는 공격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17번째는 괜찮다는 건가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끝난 뒤 진행된 폭스뉴스의 인터뷰.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향한 앵커의 질문은 매서웠다.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가 사이버 공격을 하면 안 되는 16개 분야의 리스트를 전달했다’고 한 부분이 도마에 올랐다. 다분히 말꼬리 잡기라는 느낌이 있었지만 “왜 러시아에 더 강하게 나가지 못했느냐”는 앵커의 압박 질문은 계속됐다.

16일 열렸던 미-러 정상회담을 놓고 미국 내에서 공화당과 일부 보수 언론의 평가는 야박하다. 성과가 없었다는 폄하에서부터 푸틴 대통령의 반인권 정책에 정당성만 부여해줬다는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은 “미국의 약함을 보여줬다”고 맹공했다. 공동 기자회견 없이 각자 단독으로 이를 진행한 것을 놓고도 “푸틴이 혼자서 미국을 훈계하도록 놔둔 것은 실수”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미-러 정상회담은 미국의 대통령이 ‘독재자’ ‘살인자’라고까지 했던 적대국의 지도자와 마주 앉는 것이 적잖은 국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는 점을 재확인시켰다. 반대파의 비판을 넘어서는 전략적 목표, 회담에서 가져올 성과가 확실해야 가능한 최고위급의 결단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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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외교가의 관심은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을 향하고 있다. 백악관이 10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 정상회담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관심이 커졌다. 성사된다면 미국이 중국을 ‘최대의 안보 도전’으로 규정하고 미중 간 패권 경쟁을 본격화한 이후의 첫 미중 정상회담이 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에 정점을 찍는 하이라이트 행사가 연출되는 것이다.

4년 전 시 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미중 정상회담이 이 정도로 민감한 외교행사는 아니었다. 당시 시 주석은 트럼프 취임 후 3개월 만에 플로리다주의 마러라고 리조트까지 날아와 트럼프 전 대통령과 회담했다.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2019년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를 계기로 잇달아 얼굴을 맞댔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는 찾기 어렵다. 양국 모두 막대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데다 외교, 군사적으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담판을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두 정상의 회담은 개최 여부 자체부터 빅뉴스가 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홍콩과 신장의 인권과 대만 문제 등을 둘러싼 충돌로 분위기도 험악하다. 대중국 초강경 매파들의 살벌한 기세로 볼 때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만날 때보다 수십 배의 정치적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지금쯤 커트 캠벨 백악관 인도태평양 조정관과 그의 팀이 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흐름들을 살피고 있자니 바이든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장에 마주 앉는 그림은 점점 상상하기조차 힘들어진다. 협상 복귀를 거부하는 북한의 침묵 속에 비핵화 목표는 달성이 점점 요원해지고 있고, 워싱턴의 대북 강경파들을 다독일 가시적인 성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실무 레벨에서는 북측에 새 대북정책을 설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다가 싱가포르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박물관의 사진으로 남는 과거의 역사적 이벤트로 끝나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득해진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
#미-러 정상회담#패권 경쟁#정치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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