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인사이트]주 52시간제 보름 앞둔 영세업체 “인력 떠나 문닫을 판”

김하경 기자 입력 2021-06-15 03:00수정 2021-06-15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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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주 52시간제 연기’ 호소
《다음 달 1일부터 5∼49인의 소규모 사업장에서도 주 52시간제가 시행된다.

2018년 2월 주당 최대 근로 가능 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시키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된 지 3년여 만이다.

주 52시간제는 2018년 7월 300인 이상의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우선 시행된 데 이어 올해 1월 50∼299인 규모 중소기업으로 확대됐다.

인력과 자금 사정이 나은 대기업들은 그나마 시스템을 개선해 적응 중이지만 영세한 기업일수록 애로를 토로하고 있다. 》

인천에서 연매출 120억 원 규모의 폴리염화비닐(PVC) 플라스틱 생산업체를 운영하는 A 씨(68)는 “업종 특성상 일부 기계는 소수의 전문가만이 돌릴 수 있는데 전문 인력 확보가 쉽지 않다”며 “그동안 특별근무수당 등의 명목으로 이들의 인건비 수준을 맞춰왔는데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적당한 급여를 맞춰주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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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산업·조선업, 주 52시간제에 무방비

중소기업중앙회는 최근 뿌리산업 103개, 조선업체 104개 등 50인 미만 중소기업 207곳을 대상으로 주 52시간제 관련 설문조사를 했다. 이 중 현시점에서 새 제도에 대한 준비가 안 된 91개 업체에 준비가 부족한 이유를 물었더니 42.9%가 ‘구인난’을 들었다.

이 같은 구인난은 중소기업이 고질적으로 겪어온 문제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의 부족 인원은 21만 명으로 전체 부족 인원의 87%를 차지한다. 특히 뿌리산업은 청장년층이 취업을 기피하면서 매년 종사자가 감소해 2019년 51만7000명으로 전년 대비 6.9% 감소했다.

김하경 산업2부 기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은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가중시켰다. 코로나19로 지난해 4월부터 외국 인력 입국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는 2437명으로 계획 인원(3만7700명)의 6.4%에 불과했다. 올해도 지난달 기준 계획 인원(4만700명)의 2.5%에 그친 상황이다.

야근이나 특근 등 연장근로에 제한이 생기면서 기존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이탈도 우려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은 7.9%,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은 12.5%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직 근로자의 경우 총급여 가운데 연장근로(잔업수당)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으면 임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조선업계에서는 근로시간 변화에 따른 근로자의 임금 감소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의 ‘조선산업 근로시간 실태조사’에 따르면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조선업 협력사의 임금은 18.2% 줄어들어 중소기업 근로자 임금 평균 감소율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해당 조사를 맡았던 황경진 연구위원은 “조선업 협력사 근로자들의 가장 큰 이직 원인이 연봉으로 나타난 만큼 주 52시간제로 임금이 낮아지면 타 산업으로 인력 유출이 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스타트업 등 기업 생태계 파괴 우려

전 업종에 걸쳐 주 52시간제를 적용하는 것은 현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제도라는 의견도 나온다. 예컨대 조선업계는 산업 특성상 해외 선주들의 주문에 따라 작업을 하기 때문에 현재의 주 52시간제로는 대응이 어렵다고 토로한다. 야외 작업이 많아 비가 오거나 강풍이 불면 작업을 미루는 등 기후에 따라 근로 일정을 변경해야 하는 일이 잦다는 특성도 있다. 또 뿌리산업의 경우 특정 시기에 갑자기 주문이 몰리는데, 이를 대비해 추가 인력을 채용하는 것은 인건비 부담이 크다고 말한다.

이의현 한국금속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특정 지역이나 기업을 표본집단으로 설정해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해 나갔어야 했는데 지금은 앞뒤 순서가 바뀐 듯하다”며 “중소기업만 희생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전통 제조업 중심의 중소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계도 비상이다. 대개 스타트업들은 소수의 직원들이 단기간 집중해 제품이나 기술을 개발하면서 성장하게 되는데 주 52시간제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1명의 직원을 둔 모바일 게임 개발 스타트업 B 대표는 “스타트업의 근무 환경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날도 있을 정도로 유동적이다”라며 “주 52시간제는 스타트업 생태계 자체를 파괴하는 황소개구리 같은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기업이 융통성 있게 인력 운용토록 해야
경제계는 50인 미만 기업에 계도기간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규모가 작을수록 주 52시간제 대응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앞서 50∼299인 기업도 당초 2020년 1월부터 주 52시간제 시행 대상이었지만 경영계의 요청으로 1년의 계도기간이 부여됐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최소한 인력난이 심한 뿌리산업과 조선업, 집중근로가 불가피한 창업기업에 한해서라도 추가적인 준비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간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가 위축된 데다 그동안의 최저임금 상승, 원자재 가격 급등, 해운·물류 차질 등의 악재가 겹쳐 주 52시간제 시행이 중소기업에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중소기업이 바라보는 경제 상황도 어둡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중소기업 315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업황전망 경기전망지수(SBHI)는 계속 100을 밑돌고 있다.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경기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업체가 그렇지 않은 업체보다 많다는 의미다.

중소기업계는 주 52시간제에 대한 보완책으로 근로시간제도를 유연화하고 인력공급 지원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말 유연근로제의 일종인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이 최장 6개월로 늘어났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탄력근로제란 일정 단위 기간 중 일이 많은 주의 근로시간을 늘리는 대신 일이 적은 주의 근로시간은 줄여 평균치를 법정 한도 내로 맞추는 제도다.

추가로 거론되는 대책은 △근로자의 임금 감소분 보전 방안 마련 △추가 인력 채용 시 비용 지원 확대 △노사가 합의한 경우 월·연 단위 추가 연장근로 허용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가 필요한 특별연장근로제를 ‘신고제’로 개선하는 방안 등이다. 특별연장근로제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근로자 동의와 고용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탄력적 근로 단위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고 특별연장근로 허용 요건을 완화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해 기업이 융통성 있게 인력을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하경 산업2부 기자 whatsup@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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