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벌수 있는데 자식 도움 왜 받아” 노인 78% 단독 거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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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노인실태조사… 자립성 뚜렷



“내가 벌어서도 아직 먹고살 수 있는데 애들 도움 받을 필요가 없죠. 애들한테 부담 안 주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대로 살고 애들은 애들대로 사는 게 피차 좋죠.”

경기 안양시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유모 씨(71)의 말이다. 유 씨는 막내아들이 결혼한 3년 전부터 아내(67)와 단둘이 산다. 유 씨는 “가끔 손녀가 보고 싶은 걸 빼면 아이들과 따로 살아서 나쁜 점이 없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노인 10명 중 8명은 유 씨처럼 부부끼리 또는 혼자 살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다. 건강에 대한 자신감과 자립을 뒷받침할 경제력에 개인 생활을 즐기고 싶은 욕구가 더해진 결과다. 보건복지부가 7일 발표한 2020년 노인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자녀와 함께 살고 싶다’는 응답은 2008년 32.5%에서 12.8%로 줄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가족, 경제, 건강 등 전 분야에 있어 노인들의 자립적 특성이 예전보다 굉장히 강하게 나타났다”며 “앞으로도 노인 단독 가구가 계속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르신 17%만 “주1회이상 자녀와 왕래”… 빈자리 채운건 이웃-친구
2020 노인실태조사


노인실태 조사는 보건복지부가 3년마다 벌이는 사업이다. 지난해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3∼11월에 걸쳐 전국 1만97명의 65세 이상 노인을 면담해 이들의 가족 및 사회적 관계, 건강과 경제 상태, 가치관 등을 알아봤다.

그 결과 최근 한국 노인의 가장 큰 변화는 ‘홀로서기’로 나타났다. 이들은 혼자 살거나, 또 다른 노인과 함께 살면서 여전히 생계비 마련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건강하다고 생각하며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세상을 떠날 때조차도 자녀나 주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 “가족에게 부담 주지 않는 게 중요”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이모 씨(66)도 마찬가지다. 그는 살면서는 물론이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식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이 씨는 “병원에서 골골대다가 가족들에게 병원비 부담을 주는 게 제일 싫다. 그래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술도 줄였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노인 10명 중 9명은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이 좋은 죽음’이라고 답했다.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반대하는 노인도 전체 10명 중 8명 이상(85.7%)이었다. 다만, 연명의료 중단 요구를 문서로 공식화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비율은 4.7%에 그쳤다.

멀어진 이들과 자녀들의 거리를 채운 건 가까운 친척과 친구, 이웃들이었다. 이번 조사에서 주 1회 이상 자녀와 왕래한다(16.9%)는 노인 비율은 2008년(44.0%)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연락한다는 비율도 같은 기간 77.3%에서 63.5%로 줄었다. 반면 주 1회 이상 친한 친구나 이웃과 연락한다(71.0%)는 응답은 2008년(59.1%)보다 10%포인트 이상 늘었다. 외아들이 결혼한 후 서울에서 남편과 단둘이 사는 이모 씨(66·여)는 “아들과는 같은 서울에 살아도 일주일에 한두 번 통화할까 말까이지만 분당에 사는 친언니나 여고 동창들과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배터리가 나갈 때까지 전화로 수다를 떤다”고 말했다. 세대가 다른 자식보다는 동년배의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주는 형제나 친구와 얘기하는 게 더 즐겁다는 것이다.

○ ‘건강 만족’ 커지며 삶의 만족도도 증가

노인들은 이전에 비해 스스로 건강에 자신감을 느끼며 삶의 만족도도 더 향상된 것으로 조사됐다. ‘평소 나는 건강하다’(49.3%)는 응답이 절반에 달했는데 이는 3년 전 조사 때보다 12.3%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의 비율도 2008년 첫 조사 이후 2017년(89.5%)까지 계속 높아지다 지난해 처음으로 5.5%포인트 감소했다.

삶의 만족도에 대해서도 둘 중 한 명이 ‘만족한다’(49.6%)고 답했다. 노인 10명 중 8명은 여가문화 활동에 참여했는데 3명 중 1명은 산책(34.1%)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금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활동’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노인이 ‘취미·여가활동’(37.7%)을 꼽았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전에는 노인이 의존적인 존재이고 사회의 ‘짐’이라 여겨졌지만 이제는 아니다”라며 “사회에 공헌을 하고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책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용돈 의존도 줄어… 노인소득 24%가 일해 번 돈
지난해 年평균 소득 1558만원… 용돈 비중 3년새 22%→14%
10명중 7명 “70세 넘어야 노인”


65세가 넘어 일하는 사람이 늘면서 노인들의 소득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7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 1명의 평균 연소득은 1558만 원으로 집계됐다. 2014년 959만 원에 비해 6년 만에 62.5% 올랐다. 직전 조사인 2017년(1176만 원)과 비교해 봐도 30% 넘게 상승했다.

노인의 소득은 주로 근로활동에서 증가했다. 지난해 노인 가구가 벌어들인 소득 가운데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24.1%였다. 3년 전(13.3%)의 2배 가까이로 늘어난 수치다. 반면 자녀 용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적이전소득은 같은 기간 22.0%에서 13.9%로 감소했다. 노인들이 자녀 용돈 대신 스스로 일한 근로소득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지난해 노인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36.9%에 달했다. 비교적 ‘젊은’ 노인인 65∼69세는 전체의 절반이 넘는 55.1%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었다.

노인 가구 대부분(96.6%)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부동산 평균 가액은 2억6182만 원이었다. 금융 자산이 있다는 노인 가구의 평균 금융자산은 3212만 원, 부채는 1892만 원이었다. 조사를 진행한 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부채는 주택을 마련하느라 생기는 경우가 많아 단순히 좋고 나쁨을 말하기 어렵다”며 “노인 자산은 3년 전과 큰 차이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처음 노년층에 진입하면서 현재 65세인 노인 기준을 올리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인들의 74.1%는 노인의 연령 기준을 ‘70세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소영 ksy@donga.com·김소민·이지윤 기자 /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노인실태 조사#자립성 뚜렷#노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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