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수사에서 과학치안 방향으로 확장해야[기고/윤석진]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입력 2021-06-02 03:00수정 2021-06-02 03:03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2019년 우리나라 범죄 사상 최악의 미제 사건인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해결됐다. 30여 년 만에 진실이 밝혀진 데는 과학기술이 큰 몫을 했다. 2010년 중범죄 대상 DNA 확보 법안이 마련되자 첫해에만 살인, 강도, 성폭행 등 506건의 미제 강력사건이 해결됐다고 한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해결의 일등공신 역시 1나노그램의 시료만으로도 유전자 증폭이 가능해진 첨단 DNA 검출 기법이었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아니었다면 다른 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범인은 언젠가 풀려나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프랑스 법의학자 에드몽 로카르의 이 말은 오늘날 과학수사의 기초가 되고 있다. 유전자, 지문, 혈흔, 섬유와 페인트 등 미세 증거물, 디지털 포렌식 같은 증거 확보 기법의 발달로 완전범죄가 발붙일 곳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경찰청 백서에 따르면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와 음주 뺑소니 검거율은 100%에 육박한다.

하지만 검거와 처벌은 아무리 완벽해도 어디까지나 ‘사후약방문’일 수밖에 없다.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에서 보듯 증거를 기반으로 한 과학수사의 한계는 명확하다. 증거가 불충분하면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하나뿐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온전히 지키려면 과학수사라는 대증요법(對症療法)과 더불어 원인요법에 해당하는 ‘과학치안’이 조화롭게 병행 발전해야 한다.

현재 경찰은 과학치안의 개념을 국민 안전 수호라는 본연의 임무에 접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함께 출범시킨 ‘과학치안진흥센터’가 대표적이다. 경찰청은 2018년부터 KIST와 폴리스랩 1.0 사업을 공동 추진해 왔다. 경찰과 연구자가 협력해 보다 과학적으로 치안 현장의 문제 해결 방안과 정책을 수립하려는 것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미 가시적인 성과물들도 나왔다. 탄소-아라미드섬유 복합 소재로 만든 초경량 접이식 방검방패, 설치에 시간이 걸리는 앱 대신 신고자가 사건 현장의 사진과 영상을 즉각 경찰에게 보낼 수 있는 ‘보이는 112’ 시스템 등이다.

주요기사
얼굴, 행동, 시간, 장소 등의 복합 정보를 분석해 실종자 신원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확인하는 인공지능(AI) 기반 인지 연구도 활발하다. 이 연구는 아동과 치매 환자 등 실종자 수색의 골든타임인 초기 이동경로 예측 및 위치추적은 물론이고 장기 실종자의 나이를 변환해 현재 얼굴을 추정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수색 인력 부담을 덜어 다양한 민생 현장에 효율적으로 경찰을 배치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범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예상외로 자연재해보다 훨씬 더 크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있다. KIST가 과학치안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연구개발을 확장하는 노력도 그래서 더 필요할 것이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과학수사#과학치안#확장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