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사건 담당 경찰간부, 휴대전화 데이터 삭제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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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 종결’ 진상조사 착수 전후 ‘데이터 지우개’ 앱 가동 흔적
윗선 개입여부 수사 차질 우려
사시 출신 서초서 수사 지휘라인 폭행사건 다음날 “판례 검토” 지시
법조계 관계자들과 통화 내역도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을 수사한 서울 서초경찰서 일부 간부들의 휴대전화 데이터가 삭제돼 사건 관련자들의 행적 규명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시험 출신의 법률가로 구성된 서초경찰서 일부 수사 지휘라인이 폭행 사건 발생과 처리 시기를 전후해 법조인들과 통화한 내역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차관의 운전자 폭행 사건과 수사 무마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이 차관과 담당 수사관인 J 경사를 불러 조사했으며, 형사팀장인 K 경감과 형사과장인 L 경정도 조만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 형사과장 사고 다음 날 출근 “판례 검토” 지시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11월 6일 오후 11시 반경 택시기사 S 씨는 술에 취해 택시에 타고 있던 이 차관이 욕설과 함께 목덜미를 움켜쥐자 “모가지를 잡아 사람을 죽이려 그래요”라며 112에 신고했다. 이에 경찰이 이 차관 자택인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앞으로 출동했으며, 서초경찰서 생활안전과 A 경위는 7일 새벽 이 차관이 공수처장 후보자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인물이라고 잠정적으로 파악했다.

L 경정은 7일 오전 사무실로 출근해 이 차관 사건과 관련해 기존 판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전날 출동했던 파출소에서 이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가 있다는 취지의 보고가 올라온 것을 두고 법리를 따져보라는 취지로 전해졌다. L 경정이 토요일인 7일 출근해 판례 검토를 지시한 것을 두고 “이 차관 사건을 일찌감치 캐어하려 한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일선 경찰서 형사과장들의 통상적인 근무 형태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L 경정이 거주 중인 자택과 경찰서가 비교적 멀지 않아 주말에도 자주 출근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L 경정은 8일 밤 공수처장 인물난을 거론하고 하마평을 다룬 언론 보도를 검색했으며, 택시기사 S 씨가 경찰에 출석한 9일엔 이 차관이 공수처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된다는 기사를 검색했다. 9일은 법무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하는 날이었다.

○ 데이터 삭제에 행적 100% 복원 어려워
경찰은 이 사건 관련자의 주요 행적을 면밀히 복원해 왔다. 그러나 일부 간부들의 휴대전화 데이터가 삭제돼 이들이 주고받은 주요 메시지 송수신 내역 등이 완벽히 복구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간부의 휴대전화에는 ‘데이터 지우개’로도 불리는 애플리케이션(앱)이 가동된 흔적도 있다고 한다. 이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내사종결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돼 경찰 진상조사가 착수될 시기를 전후해서다. 담당 수사관인 J 경사는 경찰의 재조사가 시작되기 전 휴대전화를 교체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때문에 ‘윗선’ 개입 여부를 규명하는 수사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L 경정은 이에 대해 “데이터 삭제 프로그램을 사용한 적이 없고, 데이터를 삭제한 정황도 없다”며 “다른 간부들이 데이터를 삭제했는지는 내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맡은 서초경찰서 지휘라인에 법조인 출신이 많았던 것도 향후 수사가 복잡하게 흘러갈 수 있는 대목이다. L 경정은 변호사 출신이고, 당시 서초경찰서장인 C 총경도 사법시험 출신이다. 사건 발생과 처리 시기를 전후해 L 경정 등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경찰이 분석한 결과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계 관계자들과의 통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법조인과 이 차관 사건과의 관련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차관은 월성 원전 1호기 폐쇄 사건에 대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변호인으로 여권과 긴밀히 교감해 왔다. 경찰이 아닌 제3의 라인에서 외압이나 청탁이 제기됐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이소연·장관석 기자
#이용구 법무부 차관#택시기사 폭행 사건#서초경찰서#데이터 지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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