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원 쥐고 사회로…보호종료 아동 막막한 홀로서기

이소연 기자 입력 2021-05-04 03:00수정 2021-05-0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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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쉼터, 만24세 되면 나가야
자립지원 못받는 ‘복지 사각지대’

“앞이 캄캄했죠. 청소년복지시설에서 나오며 받은 거라곤 50만 원이 다였거든요. 물론 쉼터에서 어렵게 마련해 주신 거라 감사했지만…, 지금도 하루하루 버티는 게 버겁네요.”

지난해 5월 한 청소년복지시설에서 퇴소한 김모 씨(24)는 사는 게 고달프다. 김 씨는 불우한 가정형편 탓에 중학교 2학년부터 청소년 쉼터에서 살았다. 하지만 현행법상 부모의 사망이나 경제적 빈곤 등으로 시설에 머무는 아동·청소년은 최장 만 24세가 되면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김 씨는 스무 살 때부터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일했지만, 시설에서 나온 뒤 월세방 하나 구하기도 벅찼다.

문제는 청소년복지시설의 ‘보호종료아동’은 퇴소 때 정부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처지가 비슷한 아동복지시설 보호종료아동은 지역별로 500만∼1000만 원의 자립지원금을 받는다. 퇴소 뒤 3년 동안 매달 30만 원씩 자립수당도 주어진다. 여성가족부는 올해부터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아동·청소년 등에게 매달 30만 원씩 자립수당을 지원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자립에 보탬이 될 지원금 등 안전망은 없는 실정이다.

여성가족부 측은 “보호법과 관계부처가 달라 청소년 쉼터 보호종료아동을 제대로 지원이 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장기적으로 지원할 안전망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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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내내 일했어요. 친구도 안 만나고 악착같이 모은 게 2500만 원쯤 됩니다. 월세가 너무 부담스러워 원룸 전세를 알아보는데 그 정도론 턱없이 부족하네요.”

김모 씨(24)는 청소년보호시설을 떠난 뒤 1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질 않았다. 평일엔 국립 연구소에서 연구 보조를, 주말에는 경기도 한 한의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월 230만 원 안팎으로 수입이 생기면 월세와 교통·생활비 등 진짜 필요한 돈만 쓰고 모두 적금을 부었다. 김 씨는 “전세보증금은 단칸방이라도 최소 5000만 원이 넘어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기운이 쫙 빠졌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해마다 ‘청소년 쉼터’라 불리는 청소년보호시설에서 퇴소하는 이들은 2500명 정도 된다. 하지만 세상과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보호종료아동들은 기댈 곳이 없다. 엇비슷한 처지의 아동복지시설 보호종료아동들이 아동복지법에 따라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과 달리 아무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룹홈(공동양육시설)이나 위탁가정 등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한 이들은 자립정착금과 자립수당 외에도 ‘디딤씨앗통장’에 쌓인 돈도 주어진다. 하지만 청소년복지시설은 이마저도 해당되지 않는다. 아동복지시설은 아동복지법의 적용을 받지만, 청소년보호시설은 청소년복지지원법에 따라 지원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동복지시설은 부모의 사망이나 아동학대 등 긴급한 이유로 기존 가정에서 분리된 아동·청소년들이 머문다. 청소년복지시설은 일시 보호부터 중장기 보호까지 다양한 아동들이 머무는데, 부모가 있어도 경제적 빈곤이나 방임 등을 이유로 양육할 여력이 없을 때 이곳에서 지낸다. 아동복지시설에 빈자리가 없어 청소년보호시설에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원이 없다 보니 청소년 쉼터를 나온 이들은 꿈마저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2019년 12월 경기에 있는 한 청소년보호시설을 퇴소한 현진 씨(24)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결국 자퇴서를 제출했다. 현 씨의 부모는 지적장애 2급으로 지원해줄 여력이 없었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은 그는 공부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나름 전교에서 상위권에 들 정도로 열의가 있었어요. 힘들게 4년제 대학에 합격했지만 다닐 수가 없었어요. 책값만 해도 한 학기에 20만∼30만 원씩 들어가던데, 저로선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꿈을 잃어버린 현 씨는 이제 사는 게 막막하다. 청소년보호시설을 나온 뒤 물류센터와 건설현장을 전전하며 생활비 마련에 급급하다. 현 씨는 “이젠 누군가를 만나는 일조차 두렵다”며 “당장 돈 떨어지면 어떻게 먹고살까 걱정밖에 머릿속에 없다”고 한숨지었다.

김승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아동옹호센터 소장은 “부모 등 누군가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청소년보호시설 보호종료아동에게 자립을 위한 어떤 지원책도 없이 사회로 내보내는 건 너무나 가혹한 처사다. 청소년 쉼터의 보호종료아동들을 위한 자립 안전망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청소년복지시설 지원을 담당하는 여성가족부 측은 “사실 청소년복지시설을 퇴소하는 아이들도 원 가정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인 상황”이라며 “여성가족부도 지원 필요성을 인지해 올해부터 청소년복지시설 퇴소자를 위한 자립수당을 지원하고 있고, 장기적으로 자립정착금 등 지원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공동기획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보호종료아동#막막한 홀로서기#청소년쉼터#복지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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