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리더십을 막는 제비뽑기 리더 선발[Monday DBR]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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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스위스 바젤대에서는 교수를 임명할 때 ‘무작위 선택’ 방식을 사용했다. 능력과 자격검증을 통해 두세 명의 후보를 추려내기는 했지만 이들 중 누구를 교수로 임용할지는 추첨을 통해 선발한 것. 당시 만연했던 영향력 있는 가문의 정치적 개입과 부패 문제로부터 벗어나 교수 임용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 시도된 방식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후기 중세시대 베네치아공화국에서는 총독을 임명할 때 무작위 선택과 경쟁 선택을 적절히 섞어서 뽑았다. 이 역시 완전 경쟁을 통한 선발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였다.

현대 기업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완전 경쟁을 통한 선발’이 갖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완전 경쟁을 통해 선발된 리더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으로 오만해지기 쉽다. 이는 종종 사업에 치명적인 실패를 가져오거나 조직에 큰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따라서 리더십 연구자들은 어떻게 하면 조직 리더들의 지나친 자만심을 방지하고 그들이 더 겸손한 자세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할 것인지 연구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리더를 뽑을 때 ‘무작위 선발’의 효과성을 연구한 논문이 최근 발표돼 눈길을 끈다. 스위스 취리히대 연구팀은 고대 아테네에서 리더들의 권력 남용과 지나친 자만심을 방지하기 위해 무작위 선발 방식, 즉 추첨(lottery)이 활용됐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자신의 성공에 운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인식하는 리더일수록 더 겸손하고 친근한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연구팀은 선발 방식에서 올 수 있는 리더의 자만심에 주목해 어떤 방식으로 리더를 선발했을 때 리더의 오만함을 막을 수 있는지 살펴봤다. 구체적으로는 ‘완전 경쟁 선발’, ‘완전 무작위 선발’, 그리고 경쟁 방식과 무작위 방식을 결합한 ‘부분 무작위 선발’의 세 가지 중 어떤 선발 방식이 리더의 오만함을 가장 잘 방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연구팀은 스위스 취리히대와 취리히연방공대에 재학 중인 학생 800여 명을 대상으로 먼저 학생들을 여섯 명으로 구성된 각각의 팀으로 무작위로 배정한 후 전체 팀을 다시 세 가지 실험군으로 랜덤 배치했다. 이때 ‘완전 경쟁 선발’ 팀에서는 가장 높은 시험 점수를 받은 사람을 팀 리더로 정했고 ‘완전 무작위 선발’ 팀에서는 추첨을 통해 리더를 결정했다. ‘부분 무작위 선발’ 팀에서는 총 여섯 명의 팀원 중 시험 점수가 가장 높은 세 명을 먼저 뽑은 후, 다시 추첨을 통해 세 명의 후보군 중 한 명을 팀 리더로 임명했다. 그리고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과 죄수의 딜레마 게임(Prisoner’s dilemma game)을 통해 팀 리더들의 자기 과신, 이기심 정도 등 오만함의 다양한 인지적, 행동적 특성들을 측정했다.

실험 결과, 부분 무작위 방식으로 뽑힌 리더는 비록 자기를 과신하는 정도가 높더라도 자기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고 팀원들에게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리더로서 권력을 오·남용하는 경우가 드물고 팀원들에게 더 유익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쟁 방식을 통해 선발된 리더들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성공의 과실 대부분을 본인이 차지하려는 성향을 보였다.

물론 무작위 선발에는 능력이 검증된 후보를 리더로 선발하지 못할 수 있다는 큰 리스크가 따른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가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소위 귀족정치(Aristocracy)의 폐해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큰 장점이 있다. 추첨을 통해 특정한 개인 혹은 이전부터 큰 영향력을 가진 집단이 마치 왕족처럼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무작위 선택은 리더가 겸손해질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조직 내부의 정치적 갈등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 연구 결과만으로 부분 무작위 방식이 가장 뛰어난 리더 선발 방식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오만한 리더십을 방지하기 위해 경쟁 선발 방식에 랜덤 요소를 가미하는 것은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이 글은 DBR(동아비즈니스리뷰) 319호에 실린 ‘리더를 제비뽑기로 선발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를 요약한 것입니다.

박종규 앨투나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조교수 pvj5055@psu.edu
#오만#리더십#제비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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