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동욱]세계 최고 선수인 손흥민도 넘지 못한 인종차별적 시선

김동욱 스포츠부 차장 입력 2021-04-14 03:00수정 2021-04-14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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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스포츠부 차장
“손흥민은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 리그 중 하나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손흥민(29·토트넘)을 향해 이런 비관적인 평가가 나온 적 있다. 2015년 손흥민이 축구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했을 때다.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EPL 명문팀인 토트넘으로의 이적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손흥민의 EPL 무대 성공 가능성을 ‘50 대 50’으로 봤다.

빠른 스피드, 양발을 사용한 공격, 높은 골 결정력은 EPL에서도 수준급이라고 전망됐다. 다만 독일에서 뛸 때 손흥민은 몸싸움에 약한 편이었다. EPL은 그 어떤 리그보다 심한 몸싸움과 과격한 태클로도 유명하다. 발기술이 좋은 기교파 선수들이 EPL의 거친 플레이를 견디지 못해 짐을 싼 경우가 많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뛴 박지성처럼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체격을 키우는 것은 필수였다.

손흥민은 EPL 데뷔 시즌 8골을 넣었다. 준수한 기록이지만 기대에 못 미치며 퇴출설이 흘러나왔다. 현지 전문가들은 또 약한 몸싸움을 지적했다. 다음 시즌 손흥민은 한눈에 봐도 근육질 몸매로 변모해 나타났다. 한국 대표팀의 한 선수는 “손흥민이 혹독한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체격을 키웠다. 멀리서 보면 외국 선수 같았다”고 말했다. 더 이상 몸싸움을 피하거나 밀리지도 않았다. 선발 출전이 늘었고, 골도 늘었다. 프로 데뷔 후 자신의 한 시즌 최다 득점인 21골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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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노력으로 몸싸움의 벽을 넘어선 그에게 또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 선수들과는 다른 미묘한 심판 판정이다. 같은 상황에서 손흥민과 영국 출신 선수가 비슷한 반칙을 했을 때 심판이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도 있었다. 손흥민이 레드카드(퇴장)를 받았다면, 다른 선수는 옐로카드(경고)에 그치기도 해 현지 팬들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자 손흥민은 반칙을 당할 때 조금 큰 동작을 취하기도 했다. 한 해설위원은 “심판에게 강렬하게 호소하기 위해 크게 넘어지는 등의 동작을 취하는 것일 뿐인데 상대 팬들에게는 할리우드 액션으로 비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영리하게 판정의 벽을 우회했다.

아직 넘지 못한 벽도 있다. 손흥민은 12일 맨유와의 EPL 경기에서 맨유의 스콧 맥토미니와 공을 다투다 오른손으로 얼굴을 맞고 쓰러졌다. 비디오판독(VAR) 끝에 반칙으로 선언됐다. 이 반칙으로 골까지 취소당한 맨유 팬들은 손흥민이 할리우드 액션을 취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손흥민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는 인종차별적인 댓글이 넘쳐났다. 여기에 영국 출신 맨유 감독과 전 선수들도 손흥민을 비난했다. 잉글랜드 축구스타인 해리 케인(토트넘)이 똑같은 일을 당했어도 이들이 이렇게 벌떼처럼 나섰을지 의문이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의 선수라 인정받은 손흥민도 밑바탕에 깔린 인종차별적 시선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실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스포츠마저도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가 안타깝다. 다행히 손흥민은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인종차별에 맞서는 동료, 팬들과 함께 이번에도 벽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김동욱 스포츠부 차장 creating@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손흥민#인종차별#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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