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우울증 환자 100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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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울증이나 조울증 같은 ‘기분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가 101만6727명으로 집계됐다. 우울증 환자가 매년 5∼9% 증가해온 추세를 감안하면 전년도보다 5.6% 늘어난 수치가 놀라울 건 없다. 주목할 점은 20대 환자의 비중(16.8%)과 전년 대비 증가폭(21%)이 가장 크다는 사실이다. 우울증은 나이가 들수록 환자가 증가하는 노년의 병이었는데 이제는 청춘의 질병이 돼버렸다.

▷지난해 20대 기분장애 환자는 7만987명. 우울증을 앓아도 진료를 받는 비율이 22%로 선진국의 절반 수준임을 감안하면 실제 환자 수는 32만 명이 넘을 것이다. 코로나19 취업난의 직격탄을 맞은 탓이 크다. 이 중 여성의 비중이 62%로 압도적이다. 원래 정신질환 중에서도 중독 관련 질환은 남성 비중이 높고, 우울증은 호르몬의 특성상 감정 기복이 큰 여성 비중이 높다. 코로나로 여성들이 많이 종사하는 서비스 직종에서 일자리가 대폭 감소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20대들이 털어놓는 우울증 증상은 무기력증 대인기피 식이장애 등이다. 우울증은 제때 병원을 찾으면 70∼80%는 증세가 호전된다. 하지만 취업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꺼린다.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 진료 기록은 의료법에 따라 본인의 동의 없이 조회할 수 없는데도 워낙 취업문이 좁다 보니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비는 회당 5000∼2만 원. 진료 기록이 남지 않도록 ‘비보험’을 선택하고 현금으로 결제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든 경제력이 없는 20대들에겐 큰 부담이다.

▷우울증은 다른 정신질환에 비해 환경적 요인의 영향이 크다. 특히 경기 변동에 영향을 받는다. 1998년 외환위기 때도 우울증 환자가 5년 전보다 51% 늘었다. 당시엔 40대들의 피해가 컸는데 이 연령대의 중산층 이탈률이 35.7%로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의 후유증은 오래도록 지속됐다.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2, 3년은 정신적 후유증 관리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우울증 환자에게 봄은 위험한 계절이다. 우울증은 일조량이 적은 겨울철에 많이 발생하지만 증세가 완화될 때 더 위험할 수도 있어서 방심하면 안 된다. 주변에서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전문가들은 햇볕을 쬐며 산책하고 운동하고 친구들과 교류하라고 조언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연연하기보다 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시집을 들고 나가 봄볕 아래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도종환 시 ‘흔들리며 피는 꽃’)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우울증#환자#10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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