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되지 않은 군대의 재앙[임용한의 전쟁사]〈156〉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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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14일 저녁, 벤구리온은 방송을 통해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했다. 건국 선언서는 구약성서로 올라가는 이스라엘의 역사, 홀로코스트까지 이어지는 유대인의 긴 고난, 이스라엘 건국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아랍인과의 공존과 공동 발전을 모색하겠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음 날인 5월 15일을 말 그대로 ‘재앙’이라고 규정한다. 이스라엘 건국과 동시에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잔혹하고 무자비한 이주정책이 시행됐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피눈물을 흘렸지만 이스라엘인들은 열광했다. TV와 라디오 앞에서 박수를 치고, 거리에서는 음식을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훗날 이스라엘의 전쟁 영웅이자 수상이 된 이츠하크 라빈은 이스라엘군의 젊은 장교로 병영에서 부하들과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그의 부모는 이스라엘로 이주해 총을 잡았던 열혈 시오니스트였다. 라빈은 18세에 영국군이 조직한 유대인 특수부대에 입대해 비시 프랑스군(나치 독일에 협조한 프랑스군)과 싸웠다.

이스라엘 독립에 대한 그의 감격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열혈 독립투사였던 라빈은 벤구리온의 연설이 끝나기도 전에 TV를 끄라고 명령했다. 이스라엘이 독립선언을 하자마자 이집트와 시리아, 요르단 등 주변 5개국이 이스라엘을 침공했다. 라빈은 전쟁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준비 없고 무모한 전쟁에 분노했다. 그는 많은 동료와 부하들이 희생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라빈이 비관적으로 봤던 1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기적 같은 승리’라고 불리지만 현대 군사가들은 당연한 귀결이었다고 말한다. 강대국 지원도 결정적이었지만 아랍 군대의 훈련 수준이 너무 낮았다. 이것이 진짜 원인이었다. 병력, 무기, 정신력, 명분…. 이 모든 것이 아무리 훌륭해도 훈련되지 않은 군대는 제 역할을 못 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슬픔을 깊이 동정하지만, 잘 훈련되고 조직된 군대가 없었다는 것이 비극의 원인이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임용한 역사학자
#군대#재앙#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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