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삶을 택한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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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영화 ‘노매드랜드’ 아카데미 작품-감독 등 6개 후보
파고 등으로 여우주연상 2번 받은 맥도먼드가 또다시 후보에 올라
실제 노매드들이 영화에 등장, 자기 얘기 들려주며 관객 흡인
주인공이 배우인 줄 모르기도

15일 개봉하는 영화 ‘노매드랜드’의 촬영 현장에서 대화하는 프랜시스 맥도먼드(위쪽 사진 왼쪽)와 클로이 자오 감독. 펀을 연기한 맥도먼드(아래쪽 사진 왼쪽)와, 펀이 유랑 생활 중 만난 노매드 데이브를 연기한 데이비드 스트러세언이 초원을 바라보며 식사하는 장면. 두 사람을 제외하고 영화에 나오는 모든 노매드는 실제 유랑하는 노매드족이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15일 개봉하는 영화 ‘노매드랜드’의 촬영 현장에서 대화하는 프랜시스 맥도먼드(위쪽 사진 왼쪽)와 클로이 자오 감독. 펀을 연기한 맥도먼드(아래쪽 사진 왼쪽)와, 펀이 유랑 생활 중 만난 노매드 데이브를 연기한 데이비드 스트러세언이 초원을 바라보며 식사하는 장면. 두 사람을 제외하고 영화에 나오는 모든 노매드는 실제 유랑하는 노매드족이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연령 차별이 아주 심한 영화계에서 얼굴의 주름을 가리려 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진실되게 보여주는 맥도먼드는, 나에게 영원히 ‘적합한’ 배우일 것이다.”

세계 영화제를 휩쓸고 있는 영화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39)이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주인공 펀을 연기한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에 대해 한 이야기다. 2018년 자오 감독과 미팅했을 때 “내가 과연 이 역할에 적합한(relevant) 배우인가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는 맥도먼드의 고백에 대한 화답이다.

자오의 말처럼 주름살 가득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선 64세의 맥도먼드는 노매드랜드에서 암으로 남편을 잃고, 삶의 터전인 미국 네바다주 엠파이어 광산이 2008년 금융위기로 문을 닫으면서 밴에 몸을 싣고 길 위의 삶을 택한 펀을 연기했다. 영화는 엠파이어에서 사우스다코타로, 네브래스카에서 캘리포니아 헨디우즈 국립공원으로 정처 없이 떠도는 펀을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금융위기로 집을 잃은 이부터 가족과 사별한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까지, 저마다의 이유로 밴, 픽업트럭, 레저용차량(RV)을 집으로 삼고 거리로 나선 노매드(Nomad·유랑자)의 삶을 담았다. 제시카 브루더가 쓴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받았고 25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노매드랜드가 갖는 생명력의 근간에는 실존 인물들이 있다. 원작자인 브루더가 3년 동안 미국 전역을 다니며 노매드의 삶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실제 인물인 린다 메이, 밥 웰스, 스왱키가 영화에도 출연한 것. 노매드 커뮤니티 ‘러버 트램프 랑데뷰(RTR)’를 접한 뒤 노매드의 삶을 택한 메이는 영화에서 펀에게 RTR를 소개하며 거리 위 삶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인물로 등장한다. RTR를 만든 웰스,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대신 거리에서 자연을 만끽하는 삶을 택한 말기 암 환자 스왱키도 현실감을 더하는 실제 노매드다.

꾸며내지 않은 모습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는 것은 자오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기도 하다. 낙마 사고의 트라우마로 말을 타지 못하는 카우보이의 이야기를 다룬 전작 ‘더 라이더’도 주연 브레이디 잰드로의 실제 이야기다. 자오 감독은 사우스다코타주 파인리지에서 말에게 먹이를 주는 잰드로를 우연히 만났고, 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노매드랜드에서도 자오 감독은 연기 경험이 없는 노매드들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말했다. “삶에 아무 희망도 남지 않았다고 느끼고 목숨을 끊으려 할 때 RTR를 만났다”는 메이의 이야기, “아들이 자살했다. 노매드 삶의 장점은 영원한 이별이 없다는 것이다. 거리 위에서 언젠간 다시 만난다. 아들 역시 길 위에서 다시 만날 거라 믿는다”는 웰스의 고백은 실제 이들의 경험담이다.

노매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맥도먼드는 노매드의 삶으로 관객을 인도하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60대에 접어든 뒤 RV에 몸을 싣고 할리우드를 등지고 싶었다는 맥도먼드. 자오 감독은 맥도먼드가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흰색 밴 한 대를 줬고, 맥도먼드는 펀 그 자체가 됐다. 주차 공간이 아니라며 창문을 두드리는 관리인들 탓에 치킨 한 조각 맘 편히 먹지 못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산과 바다를 온몸으로 느끼는 자유를 버리지 못하는 노매드의 삶을 오롯이 담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영화에 출연한 노매드들은 맥도먼드가 배우인지 몰랐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들의 삶에 녹아들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파고’ ‘쓰리 빌보드’로 두 차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맥도먼드는 이번 작품으로 세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도전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화제의 영화#노매드랜드#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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