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中인사 홍콩선거 출마 막아… 中 ‘일국양제’ 폐기 사실상 마무리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 조유라 기자 , 신아형 기자 입력 2021-04-03 03:00수정 2021-04-03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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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덩샤오핑 ‘항인치항’→시진핑 ‘애국자치항’… 中, 직할통치 본격화
크게보기2019년 9월 홍콩 사자산 정상에 ‘실행진쌍보선’이란 현수막이 걸렸다. 2개의 선거, 즉 홍콩 행정장관 선거와 입법회(국회) 의원 선거를 현재의 간선제가 아닌 보통 선거로 실시하라는 직선제 촉구 시위의 일환이다. 밍보 캡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1982년과 1984년 두 차례 만나 홍콩 반환을 협의했다. 둘은 홍콩 반환 후 50년간 홍콩의 입법 사법 행정에 대한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되 중국이 외교와 국방만 담당하는 ‘한나라 두 체제’ 즉 일국양제(一國兩制)에 합의했다.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정치 체제이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묘한 동거가 시작됐다.

1997년 홍콩 반환 후 24년이 흘렀다. 반환 초기 잘 지켜지는 듯 보였던 일국양제는 2012년 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하면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5년 후 시 주석의 집권 2기가 시작되자 홍콩을 직할통치하려는 중국의 압박이 노골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2019년 홍콩 범죄인을 중국으로 인도할 수 있게 하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추진, 2020년 홍콩 민주화 인사를 탄압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 지난달 반중 인사의 선거 출마 자격을 제한한 홍콩 선거제 개편 등으로 일국양제가 사실상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왜 아직 26년이나 남은 일국양제를 ‘일국일제(一國一制)’로 바꾸려는 걸까.

○ 덩샤오핑의 묘수 ‘일국양제’

홍콩 야권 지도자 우치와이 전 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019년 5월 입법회 의사당에서 홍콩 범죄인을 중국 본토로 송환할 수 있는 ‘송환법’ 제정에 반대하며 보안요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홍콩=AP 뉴시스
덩은 1978년 중국 공산당 11기 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일국양제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당시 덩이 일국양제의 대상으로 삼은 곳은 홍콩이 아닌 대만이었다. 중국이 대만을 통일하더라도 대만의 기존 체제를 인정하겠다는 취지였다.

4년 후 덩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대처와 마주 앉았다. 당시 아르헨티나와 벌인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한 대처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그는 홍콩은 이미 고도의 자본주의가 뿌리내린 곳이므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 돌려주지 않고 영국이 계속 통치하겠다고 했다. 중국에 반환하더라도 홍콩의 핵심인 홍콩섬과 주룽(九龍)반도는 보유하고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신계(新界)만 돌려주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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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완전 반환 외에는 선택지가 없으며 영국이 응하지 않으면 물리력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홍콩의 공산화를 우려하는 대처를 안심시키기 위해 ‘일국양제’를 제시했다. 또 이를 뒷받침하는 개념으로 ‘홍콩은 홍콩인이 다스린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 ‘높은 수준의 자치를 보장한다’는 고도자치(高度自治)도 제시해 가까스로 대처의 마음을 돌렸다. 훗날 대처는 “덩의 일국양제 제안은 천재적이었다”고 회고했다.

덩의 후임자인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는 일국양제 원칙을 비교적 충실하게 지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환 초기 중국이 홍콩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하자 중국을 믿지 못해 영국과 캐나다 등으로 이민 갔던 일부 홍콩인이 다시 돌아올 정도였다.

○ 시진핑 “양제 대신 일국”

시 주석이 집권한 후부터 중국은 ‘일국’, 홍콩 시민은 ‘양제’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시 주석은 2014년 6월 ‘홍콩특별행정구의 일국양제 실천’ 백서를 발표하며 “일국양제의 ‘양제’와 ‘일국’을 동등한 가치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하나의 국가라는 ‘일국’ 개념이 두 개의 체제를 인정하는 ‘양제’보다 앞선다는 의미다.

두 달 후 중국은 공산당 이념을 지지하는 친(親)중국 인사만이 행정장관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그간 홍콩 행정수반인 행정장관은 1200명의 선거인단이 간접 선출해왔다. 반환 당시 중국은 반환 20년째인 2017년부터 직선제를 실시하겠다고 했지만 이 약속을 헌신짝처럼 폐기했다. 20년간 민주 선거를 기다렸던 홍콩 시민은 분노했다.

같은 해 9월부터 당시 18세였던 조슈아 웡(25) 등이 주도한 민주화 시위 ‘우산혁명’이 발발했다. 홍콩 당국이 최루탄 등으로 시위대를 거칠게 진압했지만 웡은 “우산으로 최루탄을 막자”고 제안하며 시위를 이끌었다. 비록 행정장관 직선제를 관철시키진 못했지만 당시 미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 인물로 등장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역설적으로 우산혁명 후 중국은 홍콩을 직할통치하겠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시 시 주석이 “홍콩 시위는 반란”이라고 언급한 이유다. 시 주석은 2017년 7월 홍콩 반환 20주년 행사에서도 “일국이 근본이므로 한 국가의 관점에서 양제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홍콩이 중앙정부 권력에 도전하는 레드라인을 넘어서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예상치 못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또한 중국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 때는 같은 해 6월부터 9월까지 석 달간 거의 매일같이 수십만, 수백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경찰의 물리력으로 시위대를 막기엔 역부족이었고 결국 당국은 송환법 제안을 철회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생한 후 당국이 8인 초과 집회를 금하고 시민들 또한 감염 우려로 대규모 집회를 자제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보안법과 선거제 개편이 사실상 시민사회의 저항 없이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중국연구소장은 지난해 홍콩보안법 통과로 이미 일국양제가 유명무실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선거제 개편의 핵심은 ‘항인’치항 원칙을 ‘애국자’치항으로 바꾼 것”이라며 “보안법은 ‘홍콩을 비방하는 해외 세력과 결탁하거나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은 애국자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홍콩에 대한 중국의 완벽한 통제를 뜻한다”고 말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역시 “중국이 홍콩을 일국양제로 통치할 것이란 약속은 폐허 위에 놓였다. 중국은 단순히 홍콩을 뒤흔드는 게 아니라 재창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홍콩 경제 위상 추락도 中 자신감 이유

중국이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홍콩 경제의 위상이 예전만 못해지고, 홍콩 경제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것도 홍콩 직할통치에 대한 중국의 자신감을 높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1997년 반환 당시 홍콩 국내총생산(GDP)은 중국 GDP의 18.4%를 차지했다. 2019년 이 수치는 2.5%로 뚝 떨어졌다. 같은 기간 홍콩의 대중국 수출 규모는 5077억 위안에서 2조2109억 위안으로 4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2001년 말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된 중국 기업(H주)의 비율은 6.6%에 불과했지만 올해 3월 말에는 12.5%로 늘었다. 상하이, 선전 등 중국의 경제 중심도시 GDP가 홍콩을 일찌감치 추월했다는 점도 중국이 홍콩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문기 세종대 교수(국제학)는 “중국은 자국 경제성장에서 홍콩의 비중이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홍콩 정도는 포기하더라도 정치적 명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홍콩 내부에서조차 홍콩이 자립해서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정서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홍콩 친중파들도 일국양제의 조기 종식에 대한 기대감을 피력하고 있다. 친중 성향 레지나 입 입법회(국회) 의원은 최근 BBC 인터뷰에서 “홍콩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수용해야 하는 이유가 예전보다 확실하지 않다. 민주주의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현재 체제가 지속가능하다고 여겨지지 않으면 2047년 이전에도 홍콩을 중국과 통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매체 홍콩자유언론(HKFP)은 지난달 26일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강행한 지 9개월 만에 민주주의, 자유, 안정, 풍요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감이 크게 저하됐다. 대다수 반중 세력이 구속되고 해외로 망명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 문화예술계로 탄압 확산

중국의 탄압은 홍콩 문화예술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홍콩에서는 25일 열리는 미 아카데미영화제 시상식을 볼 수 없다. 1969년부터 홍콩 내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을 독점 중계해왔던 TVB방송이 52년 만에 중계를 하지 않겠다고 지난달 29일 선언했기 때문이다.

AFP통신 등 외신은 중국을 비판하는 두 영화가 주요 부문에 오르자 중국 당국이 TVB방송을 압박했고 그래서 중계가 무산됐다고 분석한다. 아카데미 작품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노매드랜드(Nomadland)’,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인 ‘두 낫 스플릿(Do Not Split)’이다.

‘노매드랜드’의 감독은 중국 여성 클로이 자오(39)다. 베이징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뉴욕대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그가 2월 아시아 여성 최초로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수상하자 중국 관영언론은 ‘중국의 자존심’이라고 치켜세우며 대서특필했다. 얼마 후 일부 누리꾼이 그가 2013년 미 영화잡지 필름메이커 인터뷰에서 중국을 “사방에 거짓말이 판치는 곳”이라고 언급했다는 사실을 찾아내자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 내에서는 노매드랜드 관련 해시태그가 사라졌고 여론 또한 “중국인이냐 미국인이냐, 정체를 밝히라”며 악화됐다. 노르웨이 감독이 만든 ‘두 낫 스플릿’은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 등 홍콩 민주화 시위가 주제여서 중국 당국의 심기를 정면으로 건드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말 개관을 앞둔 홍콩의 현대미술관 ‘M+’ 역시 최근 중국의 반체제 작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64)의 작품을 전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홍콩 당국은 아이의 사진 연작 ‘시각의 연구’가 반중 감정을 고조시켜 홍콩보안법을 위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작품은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 미 워싱턴 백악관,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 등 세계 유명장소를 향해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누군가가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담았다.

○ 홍콩 다음은 대만

전문가들은 홍콩에서 사실상 일국양제를 종결시킨 중국의 다음 목표가 대만이라고 분석한다. 강 소장은 “홍콩의 현재는 대만의 미래”라며 “마카오 홍콩을 통합한 중국의 마지막 목표는 대만”이라고 진단했다. 홍콩의 일국양제 종언을 통해 대만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하겠다는 뜻을 강조했다는 의미다.

과거 대만에 ‘평화통일’ 등 비교적 온건한 단어를 사용했던 중국이 최근 ‘무력통일’ ‘군사력 동원’ 등을 언급하고 대만 인근으로 전투기를 출격시키는 모습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리는 관영언론 환추시보의 후시진(胡錫進) 편집장은 “무력통일 이외의 방법이 없다. 당과 정부가 대만 문제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교수는 “대만은 중국에서 내부 위기가 발생했을 때 민족주의 정서를 고조시키고 내부 단결을 유도하기 위한 가장 좋은 카드”라며 “중국이 그 카드를 슬슬 만지작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고 진단했다. 시 주석의 장기 집권에 대한 내부 반발이 커질수록 현재의 권위주의 통치 체제를 지속시키기 위해 중국이 대만에 더 거칠고 공세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의미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 조유라·신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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