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정부, 소련과 수교 위해 ‘미군 철수’ 언급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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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지난 외교문서 기밀해제
1989년 홍순영 외무부 차관보 “주한미군 철수 가능” 소련측에 말해
김일성, 韓-蘇수교 움직임에 “사절단 모두 철수” 소련에 항의

노태우 전 대통령(왼쪽)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1990년 6월 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호텔에서 열린 첫 한소 정상회담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노태우 전 대통령(왼쪽)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1990년 6월 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호텔에서 열린 첫 한소 정상회담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노태우 정부가 1990년 소련과 국교 수립을 위해 주한미군 철수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과 소련이 첫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등 관계 정상화 조짐이 보이자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은 소련에 “공식 사절단을 철수하겠다”며 강력하게 항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는 30년이 지나 기밀 해제된 외교문서 33만여 쪽을 심의를 거쳐 29일 공개했다. 올해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노태우 정부가 소련과 국교 수립을 위해 벌인 막후 외교전이 포함됐다. 한국과 소련은 1990년 9월 30일 국교를 수립했다.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노태우 정부는 당시 소련과 국교 수립을 위해 주한미군 철수도 가능하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홍순영 외무부 제2차관보는 1989년 4월 27일 블라딜린 보로노쇼프 소련 극동연구지 편집장과의 면담에서 “한소 수교 및 주변 4강국의 교차 승인과 국제적 보장이 확보된다면 주한미군 철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일성은 한국과 소련이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자 소련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외교문서에 따르면 소련 당국은 1989년 1월 김일성과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교장관 사이에 “심각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일성은 소련이 한국과 헝가리 식으로 관계를 정상화한다면 모스크바 주재 대사관 이외에 공식 사절단을 전원 철수하겠다고 위협했다. 북한 고위 당국자가 평양 내 파티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방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주평양 소련대사가 당국에 항의하는 등 당시 소련 개방으로 북한과 소련 간 긴정이 높아졌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1990년 6월 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첫 한소 정상회담의 긴박한 상황도 포함됐다. 외교부는 ‘태백산’이란 암호명으로 두 달간 극비리에 회담을 준비했다.

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김일성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있느냐고 묻자 노태우 대통령은 “(남북 간) 책임 있는 사람끼리 만나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소련이 추구하는 개방정책을 북한이 받아들이도록 촉구한다. 남한은 군사적 우위를 추구하지 않으며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최지선 aurinko@donga.com·권오혁 기자
#외교문서#노태우정부#미군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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