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칼럼]보유세 수탈과 징수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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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가 현실화율 美·英·佛 나라마다 제각각
대만의 토지 재산세 공시가 현실화율은 20%
세심하게 납세자 배려하는 호주 캐나다
공시가 ‘보유세 폭탄’ 수단 악용 말아야

천광암 논설실장
천광암 논설실장
문재인 정부가 무리한 공시가격 밀어 올리기를 강행하는 명분 중의 하나는 ‘공시가 현실화율 100%’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실패한 집값 잡기에 대한 책임을 1주택자에게까지 떠안기는 징벌적 보유세를 정당화하는 근거는 더더욱 될 수 없다.

지난해 10월 27일 국토연구원이 주관한 공시가 현실화 공청회에서 발표된 ‘현실화 계획(안)’을 보면 “외국의 경우, 공시가격은 실거래가 기준으로 현실화율이 100% 수준에 근접”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덴버)은 101.3%, 캐나다(온타리오주)는 100%, 호주는 90∼100% 수준”이라고 예시했다. 또 “대만은 토지에 대한 공시지가 현실화율 90%를 목표로 2005년부터 제고하고 있다”면서 2017년 기준 현실화율이 90%를 넘었다는 자료를 덧붙였다. 정말 그럴까.

첫째, 덴버 온타리오 호주 대만 사례를 가지고 ‘외국은 이렇게 한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다. 영국은 재산세 공시가 조사를 수십 년에 한 번씩 한다. 프랑스는 주택 임대 가치의 50% 정도로 과세표준을 정한다. 미국은 주마다 제각각인데, 덴버시가 어떻게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를 제치고 미국의 대표 사례가 됐는지 모르겠다.

둘째, 대만 사례 인용은 생략이 지나쳐서 왜곡에 가깝다. 대만 정부가 올해 발표한 토지의 ‘공고지가’ 현실화율은 19.79%, ‘공고토지현치’ 현실화율은 92.21%다. 이 중 한국의 재산세(토지) 공시가에 해당하는 것은 공고지가다. 대만의 공고지가 현실화율은 10년 넘게 20% 선에서 맴돌고 있다. 계획(안)은 공고토지현치를 가지고 대만 공시지가가 90%를 넘었다고 했는데, 공고토지현치는 재산세가 아닌 양도세 산정 기준이다.

셋째, 캐나다 온타리오주(州)와 호주의 공시가 산정 및 재산세 부과 체계는 한국과 크게 다르다. 호주와 온타리오주는 치안 소방 대중교통 등 주민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예산을 먼저 결정한 뒤, 여기에 맞춰 매년 세율을 새로 정한다. 공시가는 재산세를 납세자별로 할당하기 위한 상대적 기준이다. 공시가가 재산세를 전체적으로 밀어 올리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는 지자체가 주민들로부터 거둘 수 있는 연간 재산세 총액에 상한선까지 두고 있다. 인상률 상한선은 연간 2%대 수준으로 극히 낮은 수준이다.

넷째, 온타리오주의 현실화율이 100%라는 점은 짚어볼 점이 많다. 온타리오주의 공시가 산정은 MPAC라는 기관이 맡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은 매년 조사를 해서 공시가를 갱신하지만 MPAC는 4년에 한 번씩 한다. 2012, 2016, 2020년 이런 식이다. 이 때문에 2017∼2020년 재산세 산정에는 2016년 공시가가 적용된다. 인상분은 조금씩 반영된다. 공시가가 2012년 6억 원에서 2016년 10억 원으로 올랐으면 2017년 7억 원, 2018년 8억 원, 2019년 9억 원, 2020년 10억 원이 재산세 산정 기준이 된다. 반면 공시가격이 2012년 6억 원에서 2016년 3억 원으로 떨어졌다면 감액분은 전액이 다음 해에 바로 반영된다. 즉 2017∼2020년 공시가는 3억 원이 된다.

요컨대 공시가 현실화율이 몇 %인지는 보편적인 기준도 없고 보유(재산)세제의 본질도 아니다. 재산세제에 글로벌 스탠더드가 있다면 그것은 공정성, 안정성, 예측 가능성이다.

양도세 같은 경우는 실제 거래 금액이 존재하기 때문에 실거래가의 100%를 기준으로 해도 공정성에 시비가 붙을 소지가 적다. 이와 달리 보유세 공시가는 거래되지 않은 재산에도 가공의 가치를 매기기 때문에 시비 소지가 많다. 이처럼 태생적으로 고무줄일 수밖에 없는 잣대를 기준으로 공시가를 한 해 19%씩(공동주택)이나 폭등시키면 반발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재산세는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세금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진국은 온타리오주처럼 세금 징수가 주민들의 예측 가능하고 안정된 생활을 위협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보유세 정책에서는 납세자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이래도 안 팔래”라는 식의 악의까지 느껴진다. 정부는 보유세 정책이 징수와 징벌, 징벌과 수탈 사이 어디쯤에 서 있는지 냉정하게 자문(自問)해 봐야 한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

#보유세#수탈#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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