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없어도 잘 돌아가는 팀 만드는 게 감독 역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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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 우승 이끈 임근배 감독
변화무쌍한 용병술 선보이며 KB스타즈와 챔프전 명승부 펼쳐
“난 작전타임 5번 부를 뿐이고 결국 코트의 선수들이 해결해야
5차전서 자율농구의 희망 봤죠”

삼성생명을 여자프로농구 2020∼2021시즌 챔피언으로 이끈 임근배 감독이 18일 경기 용인시 삼성생명 휴먼트레이닝센터 내 체육관에서 챔피언 트로피를 놓고 편한 자세로 우승 당시의 감격을 다시 떠올려 보고 있다. 우승 확정 후 선수들에게 큰절을 했던 임 감독은 다음 시즌에도 선수들 스스로 문제점을 고쳐 가며 발전하도록 돕겠다고 다짐했다. 용인=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삼성생명을 여자프로농구 2020∼2021시즌 챔피언으로 이끈 임근배 감독이 18일 경기 용인시 삼성생명 휴먼트레이닝센터 내 체육관에서 챔피언 트로피를 놓고 편한 자세로 우승 당시의 감격을 다시 떠올려 보고 있다. 우승 확정 후 선수들에게 큰절을 했던 임 감독은 다음 시즌에도 선수들 스스로 문제점을 고쳐 가며 발전하도록 돕겠다고 다짐했다. 용인=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경기 용인시 여자프로농구 삼성생명 체육관 안에는 임근배 감독(54)의 조그만 방이 있다.

책상에 놓인 임 감독 노트북컴퓨터에는 노란색 메모지가 잔뜩 붙어 있었다. 두툼한 노트에도 메모가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의 지도 철학과 주요 전술, 명언, 성경 구절 등을 직접 쓰고 틈나는 대로 되뇌었다고 한다.

임 감독은 여자프로농구 2020∼2021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KB스타즈와 최종 5차전까지 가는 역대급 명승부를 펼치며 15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특히 절대 열세라는 대부분의 예상을 뒤집고 변화무쌍한 용병술로 기적을 일궈냈다는 찬사를 들었다.

그래도 그는 겸손하기만 했다. 최근 삼성생명 숙소에서 만난 임 감독은 “우리 슛이 들어갈 상황이 아닌데도 성공하는 행운이 따랐다. 힘들었을 텐데도 선수들은 아낌없이 몸을 던졌다. 하늘이 우승을 주신 것 같다”고 회상했다.

행운을 언급했지만 임 감독은 ‘강자는 원인과 결과를 믿는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는 일찌감치 포스트시즌 상대로 유력하던 우리은행과 KB스타즈의 약점을 충실히 연구하고 맞춤 해법을 구상했다. “리그 휴식기에 우리은행과 KB스타즈를 상대로 하는 ‘투 트랙’ 연습을 병행했다. 또 정규리그 막판 벤치 선수들을 투입해 경험을 쌓게 했다. 그 덕분에 플레이오프(PO)와 챔프전에서 이들이 긴장을 덜 하고 반짝 활약을 펼쳐줬다.”

임 감독은 평소 선수들의 자발적인 해결 능력을 강조한다. 이른바 자율 농구다. 임 감독은 “난 경기 도중 작전타임 다섯 번만 부를 수 있는 사람이고 선수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돕는 선배일 뿐이다. 결국 코트에서는 선수들이 해결해야 한다. 늘 연습 과정을 서로 묻고 공유하며 실전에서 선수들 스스로 어려움을 해결하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다. 챔프전 5차전에서 선수들끼리 뭉쳐 고비를 헤쳐 나가는 장면이 아주 많이 나왔다”며 뿌듯해했다.

임 감독은 유재학 감독 밑에서 오랜 기간 코치로 호흡을 맞추며 양동근을 국내 최고의 가드로 성장시켰다. 선수 지도에 전념하기 위해 20년 전 즐기던 술까지 끊은 그는 독실한 신앙심과 함께 농구 연구에만 몰입했다. 한때 유방암으로 투병한 아내를 간호하기 위해 캐나다로 떠나 2년간 공백기를 가진 임 감독은 어렵게 건강을 회복한 아내와 가족에 대한 고마움에 더 겸손해진 자세로 농구에만 매달렸다. “아들이 캐나다에서 매일 농구 중계를 실시간으로 보며 아내와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더라”고 한 임 감독은 “주위에 좋은 분들도 많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인격이라는 옷을 스스로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선수들에게 강조한다”고 말했다.

“리더가 만드는 가장 바람직한 환경은 제가 없어도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팀이 아닐까 싶어요. ‘덕장’ ‘지장’ ‘용장’이라는 수식어를 받는 것보다 감독이 없어도 잘 굴러가는 팀의 ‘감독’이 되려고 노력해볼까 합니다.”

다음 시즌 구상을 물었더니 뜻밖에 KB스타즈 박지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삼성생명엔 최대 위협이었지만 박지수의 투혼이 다른 팀 선수들에게 강한 울림을 주고 동기 부여를 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센터인 지수가 챔프전에서 공 하나를 살리려고 다이빙을 하고, 리바운드를 하나 더 잡기 위해 몸부림친 근성을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박지수 스스로 박지수를 더 강하게 성장시키고 있는 모습이 여자농구 전체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그런 박지수를 다시 넘어서기 위해 준비하겠다.”

용인=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여자프로농구#삼성생명#임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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