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무저갱 세대’는 왜 분노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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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인사, 밥그릇싸움 논란
일자리 없는 청년들은 눈물

박용 경제부장
박용 경제부장
굳이 분류하자면 필자는 ‘외환위기 세대’다. 외환위기가 터지고 1998년 2월 대학을 졸업할 무렵 실업대란이 찾아왔다. 대기업들이 쓰러지고, 있던 직원도 내보내는 판에 갓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갈 곳은 없었다. 죄 없이 극심한 취업난의 ‘무저갱(無底坑·바닥이 없는 깊은 구덩이)’에 빨려 들어간 듯 젊은이들은 하릴없이 허우적거렸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게 죄인가. 23년이 지난 올봄 청년들도 억울하다. 2월 취업준비생은 역대 최대인 85만 명. 취업난의 무저갱에 갇힌 이들의 약 90%가 2030세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핑계는 대지 말자. 그전에도 청년들이 원하는 괜찮은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 책임자들은 큰소리만 쳤다. 인턴 몇 명만 뽑아도 수백 명이 몰려드는데 소득주도성장을 한답시고 최저임금도 한껏 올리고, 정규직 전환도 밀어붙이고, 주 52시간제까지 도입했지만 약속했던 소득주도성장은 오지 않았다.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1755달러로 2019년에 이어 2년 연속 뒷걸음질쳤다.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마저 수출 경쟁력과 일자리 보호를 외치는 각자도생 시대에 국제 공조도 없는 일국 소득주도성장론은 칠판 경제학자들의 탁상공론이다.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자영업 비중이 유독 높은 한국 경제에 깊은 내상을 줄 것이라는 경고에도 고집을 피우더니 만성화된 청년 실업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조차 안 한다.

그러면서 제 일자리들은 잘도 챙긴다. 소득주도성장의 불씨를 댕겼던 장하성 고려대 명예교수는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을 지내고 뜬금없는 주중 대사로 새 일자리를 얻어 갔다. 경제수석을 지낸 소득주도성장의 설계자 홍장표 부경대 교수는 요즘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후보로 거론된다. 최근엔 “코로나 세대가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세대의 전철을 밟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며 “모든 청년에게 최소 2년간 일자리를 정부가 책임지고 보장하는 청년일자리보장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랏돈으로, 실패한 소득주도성장 시즌2라도 하라는 건가.

코로나 세대가 정말 걱정이라면 진작 할 수 있는 일은 왜 안 했나. 일자리가 없다지만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에선 쓸 만한 개발자가 없어 난리다. 한 정보기술(IT) 기업 대표는 “중국 알리페이에만 개발자가 1만6000명이다. 우린 네이버와 카카오를 합쳐도 1만 명이 안 된다. 세계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하나. 관련 학과 정원을 늘려 달라고 10여 년 전부터 얘기했는데 달라진 건 별로 없다”고 말한다. 아예 IT 기업들이 돈을 모아 실력 좋은 개발자를 길러내는 세계 수준의 사설 교육기관이라도 만들자는 말들이 판교에서 나온다.

얼마 전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의 청산거래 관할권을 두고 수장들까지 나서서 험한 말을 주고받아 ‘밥그릇 싸움’을 벌인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작 핀테크 업계는 교통순경을 누가 할 건지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금융위가 만든 이 법안으로 혁신과 청년 일자리 창출을 막는 규제가 하나 더 늘까 걱정이다. 금융과 관련 없는 부수 업무를 할 때도 금융당국에 먼저 신고하고 하라는 건 혁신을 막는 역주행 규제라며 분노한다. 청년들은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당국자들은 제 일이 아니면 귀담아듣지 않는다. 내 일자리만 소중한 ‘일자리 내로남불’ 시대, 무저갱 세대의 분노는 깊어만 간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무저갱 세대#분노#밥그릇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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