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다독임도 허사… 깊은 침묵에 빠진 ‘흥벤져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흥국생명 ‘학폭 징계’ 뒤 첫경기
베테랑들이 기 살리려 애썼지만 분위기 워낙 가라앉아 속수무책
기업은행전 71분만에 완패 4연패… 몰려든 취재진 맞은 박미희 감독
“쌍둥이 엄마 훈련 참관 없었다”

16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흥국생명과 IBK기업은행과의 경기에 앞서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이 이재영 이다영 자매의 학교폭력 파문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인천=김민성 스포츠동아 기자 marineboy@donga.com
16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흥국생명과 IBK기업은행과의 경기에 앞서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이 이재영 이다영 자매의 학교폭력 파문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인천=김민성 스포츠동아 기자 marineboy@donga.com
“어떤 이유에서든 학교폭력은 용납할 수 없다. 체육인이자 팀을 이끄는 사령탑으로서 많은 분께 사과 말씀을 드린다.”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58)이 고개를 숙였다. 흥국생명은 16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IBK기업은행과 안방경기를 치렀다.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인정한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이상 25)에게 무기한 출장 정지 처분을 내린 뒤 치르는 첫 번째 경기였다. 이날 경기장에는 70명이 넘는 취재진이 모일 만큼 큰 관심이 쏠렸다.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난 박 감독은 “솔직히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내지는 못했다. 선수들도 매체를 통해 사건을 접하기 때문에 영향이 없을 수 없다”면서 “선수들 모두 한 시즌을 치르고자 열심히 준비했다. 선수들에게 ‘그 시간이 헛되지 않게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주장 김연경(33) 등 선배들이 후배들을 잘 다독이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 중에도 김연경과 김세영(40) 등 베테랑 선수들은 점수 차이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도 “괜찮다”고 후배 선수들을 격려하면서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애썼다. 김연경은 득점에 성공할 때마다 코트에 있는 선수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손바닥을 부딪치면서 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이날 IBK기업은행에 1시간 11분 만에 0-3(21-25, 10-25, 10-25)으로 완패해 4연패에 빠졌다. 이번 시즌 최다 득점 차(34점) 패배다. 흥국생명은 17승 7패(승점 50)로 여전히 선두지만 2위 GS칼텍스(15승 9패, 승점 45)와 격차를 벌리지 못했다. 김연경은 12점을 올렸다.

‘흥벤져스’라는 평가를 받던 흥국생명은 이재영-이다영의 학교폭력 사실이 알려지기 전부터 팀 내 갈등으로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다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불만을 표출하자 배구계 안팎에서는 ‘김연경을 타깃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이 과정에서 두 자매의 어머니이자 전직 국가대표 세터 출신인 김경희 씨(55)가 흥국생명의 팀 훈련을 ‘참관’했고, 김연경이 이를 문제 삼으면서 갈등이 생겼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박 감독은 이에 대해 “그런 이야기를 듣고 무척 당황했다. 여기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는 동네 배구를 하는 곳이 아니다”라면서 “프로 팀 훈련에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다. 외부인이 훈련에 개입한다는 건 나뿐 아니라 모든 프로 지도자들에게 실례가 되는 얘기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처음 불화설이 나왔을 때 관리를 잘했으면 이번 사고가 터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보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예나 지금이나 나는 현장에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면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당황스럽다”고 답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이날 3시간 넘는 비상대책회의 끝에 학교폭력(성범죄 포함) 연루자의 신인 드래프트 참여를 전면 배제하는 내용을 담은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드래프트 지원 시 해당 학교장의 확인을 받은 학교폭력 관련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관련 내용이 허위 사실로 확인될 경우 선수에게 영구제명 등 중징계를 내리기로 했다. 다만 징계 규정은 소급 적용하지 않기로 해 학폭 가해가 드러난 이재영-이다영과 OK금융그룹 송명근 심경섭 네 선수에 대한 연맹 차원의 추가 징계는 없다.

또 대한민국배구협회와 연맹이 공동으로 초중고교생 및 대학생과 프로 선수들을 대상으로 익명 신고가 가능한 피해자 신고센터를 설치해 피해자 보고 및 사실 확인을 할 수 있게끔 했다.

배구협회는 이재영-이다영의 지도자 자격도 박탈하기로 결정했다.

남자부 경기에서는 선두 대한항공이 6위 현대캐피탈에 3-0(25-20, 25-20, 25-19) 완승을 거뒀다.

인천=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김연경#다독임#허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