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휠체어와 보청기를 쓰는 사이보그 같은 존재”

이호재 기자 입력 2021-01-20 03:00수정 2021-01-20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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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편견 담은 에세이 펴낸 김원영 변호사와 김초엽 작가
기계에 의지해 사는 두 사람, ‘편견의 경험’ 고스란히 담아
“초인으로 묘사되는 사이보그… 현실에선 삐걱거리는 게 일상
기술을 발달시키는 것보다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열다섯 살 전후로 신체 기능을 보완하는 기계인 휠체어와 보청기를 각각 만나 ‘사이보그’로 살아온 김원영 변호사(왼쪽)와 김초엽 소설가는 신간 ‘사이보그가 되다’를 통해 장애인을 향한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래 사진은 김초엽 작가가 현재 사용하는 보청기. 귀와 연결하는 와이어가 투명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지양 작가 제공
1987년 1편이 나온 영화 ‘로보캅’에선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사이보그 경찰관이 범죄자를 소탕한다. 범인에게 희생된 머피의 뇌에 기계 팔과 다리를 결합한 사이보그 경찰관은 범죄자들이 쏜 총알을 모두 튕겨낸다. 발길질이나 주먹질을 당해도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천하무적이다.

그러나 최근 신간 ‘사이보그가 되다’(사계절출판사)를 펴낸 김원영 변호사(39)와 소설가 김초엽 씨(28·여)는 18일 인터뷰에서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고 했다. 이들은 현실 속 인간과 기계의 결합에 대한 고민을 담은 에세이에서 각각 장애를 보완하는 휠체어와 보청기를 쓰는 자신들을 사이보그에 비유했다. 김 변호사는 “기계와 긴밀히 결합해 삶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많은 장애인들은 현실 속 사이보그와 같은 존재”라며 “사이보그가 영화 속에서 전형적인 히어로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기계와 결합한 삶은 불편하다”고 했다.

두 사람이 사이보그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건 2018년. 뼈가 쉽게 부러지는 선천성 유전질환인 ‘골형성부전증’을 앓고 있는 김 변호사는 공상과학(SF) 작품을 쓰는 김 씨에게 “장애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3급 청각장애인으로 과학을 전공했고 소수자들에게 주목한 작품을 써 온 김 씨라면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장애를 앓아온 두 사람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다룬 글을 쓰기로 의기투합했다. 이동과 대화가 자유롭지 않은 두 사람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함께 책을 써내려 갔다.

책에는 두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김 변호사는 장애가 법률 업무 수행에 큰 지장을 주지 않지만, 그의 사건 처리 능력을 의심하는 사회적 편견을 종종 겪는다고 했다. 또 장애를 지닌 이들이 성적 대상화가 되는 ‘페티시즘’을 비판했다. 사이보그를 홍보하는 영상매체에 장애인은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 베푼 온정의 수혜자로 등장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김 씨는 발음이 부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외국인인가” “치아 교정 중인가”라는 말을 듣곤 한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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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이런 일상 경험은 우리 사회에 대한 질문으로 확대됐다. 김 씨는 2019년 펴낸 소설 ‘원통 안의 소녀’(창비)에서 원통 안에 갇혀 사는 한 소녀가 연민의 대상으로 비치는 문제를 다뤘다. 김 씨는 “장애 여성으로서 대상화되는 삶,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방식, 자선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술을 최첨단으로 발달시켜 훌륭한 사이보그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기술을 인간에 가깝게 활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 변호사는 “저의 현실을 바꾼 건 (최첨단 기술이 아니라) 제가 수업을 들었던 대학과 인턴을 했던 로펌 앞에 놓인 작은 경사로였다”며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학교 정문에 경사로가 놓이면서 학교를 다니고 직업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김 씨는 “장애인들의 이동 문제는 특정한 기업이나 단체가 장애인들에게 베푸는 시혜와 자선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평등과 정의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사이보그#장애인#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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