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주의가 코로나 퇴치의 길… 타인과 타국을 먼저 생각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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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새해특집]글로벌 석학 인터뷰 <1> 佛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
타인 배려가 내 이익 극대화할 길…마스크 써야 경제회복 가능해져
전세계가 기후변화문제 협력하듯…강대국들, 후진국과 백신공유할 것
기술 발전에 위기론 대두되지만…AI, 결국 인간 돕는 도구 그칠 것

자크 아탈리 제공
자크 아탈리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미중 패권 다툼 등으로 2021년 국제 정세 또한 거세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는 프랑스 유명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78), 미 외교안보 거두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84),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위원인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65), 동아시아 정치의 권위자 나카니시 히로시(中西寬) 일본 교토대 법대 교수(59), 중동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인 아다 요나트 이스라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 연구위원(82) 등으로부터 코로나19 시대의 해법, 국제사회의 향방 등을 들어봤다.》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내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이런 합리적 이타주의로 코로나19 시대를 이겨내야 한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78)가 동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의 화두로 ‘합리적 이타주의(rational altruism)’를 제시했다. 착용이 번거롭고 귀찮아도 타인을 위해 마스크를 쓰면 사회 전체의 감염이 줄고, 경제가 살아나 결국 나에게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는 “몇몇 나라만 방역을 잘한다고 해서 세계가 코로나19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며 각국이 자국민을 위한 코로나19 백신 확보에만 몰두해선 안 된다고 했다. 양극화와 기후변화, 교육 격차 등 세계 각국이 직면한 문제 역시 개별 국가 차원이 아닌 국제사회의 연대와 공조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탈리는 프랑스 파리공과대, 소르본대 등에서 경제학 교수를 지냈지만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과 통찰로 ‘미래의 물결’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등 인류의 미래에 관한 여러 명저를 썼다. “전염병 대유행으로 세계적인 격리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일찌감치 예고했던 1998년 작 ‘21세기 사전’은 코로나19 시대에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23일과 25일 아탈리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21년 화두는 무엇인가.

“이타주의. 우리 모두 이타주의자가 돼야 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키우고 가족, 이웃, 미래 세대를 보살펴야 한다.”

―선뜻 와 닿지 않는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다. 코로나19 백신도 선진국이 독점했다.

“백신을 먼저 차지하기 위한 많은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점차 사람들과 각국 정부 사이에 공통된 인식이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1년의 코로나19 사태를 돌아보라. 나 혼자만, 한 국가만 방역을 잘한다고 코로나19 사태를 피할 수 있었나? 방역을 잘해도 언제든 외부에서 바이러스가 유입돼 번질 수 있다. 모두가 같이 방역을 잘하고, 모두가 백신을 맞지 않으면 세계경제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을 강대국들도 이해하기에 후진국과 백신을 나누는 일에 신경 쓸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세계경제에 대한 우려가 크다.

“지난해 세계경제가 많이 안 좋았지만 올해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됐고 사람들이 전염병 유행 상황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또 ‘부의 분배’를 위한 과세정책을 펼 때도 세계가 힘을 합쳐야 한다. 최상위 부유층에 지금보다 많은 세금을 물리려 해도 이들이 국적을 바꾸거나 재산을 다른 나라로 옮기면 무용지물이다. 개별 국가 차원이 아닌 국제사회가 민주적 합의 아래 통합된 세금정책을 공유해야 이런 문제를 막을 수 있다. 교육정책도 중요하다. 미래세대에 대한 교육 강화야말로 빈부격차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기후변화 문제 또한 전 세계가 협력해야 해결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적으로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과거에도 언제, 어디서든 바이러스가 있었다. 코로나19 대유행 또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이를 이겨내려면 우리 삶 전반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 정말 중요해졌다. 각국 정부와 기업이 ‘생명경제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식품, 위생, 의료, 친환경에너지 등 생명경제산업 비중을 높여야 한다. 현재 주요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40%를 차지하는데 7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테크놀로지가 권력을 갖는 시대가 올 걸로 전망해왔다. 인공지능(AI) 등으로 인간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기술의 역할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전염병에 대항하는 백신을 개발하는 의료기술, (감염자 관련) 감시 추적기술 등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이 권력자에 의해 이용되면서 자칫 기술이 권력의 도구가 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인간의 역할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기술이 사회 변화를 이끌면 항상 위기론이 나온다. 수레를 사람이 직접 끌다가 말이 끌기 시작했을 때도, 증기차나 전화 등이 개발됐을 때도 인간의 노동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에너지 절약, 효율성 극대화 등 인류를 돕는 도구에 그칠 것이다. AI가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노동시간을 줄여 주겠지만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할 순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국제사회의 분열이 컸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끌 미국은 어떨 것으로 보나.

“바이든 당선인의 지지율은 트럼프 대통령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이로 인해 새 대통령이 절대적인 힘을 갖기 어렵게 됐다. 정책 집행과 행동에서 제약도 상당할 것이다. 그래서 바이든 행정부는 국제관계에 더 많은 역량을 쏟을 것이다. 다자주의를 기반으로 다른 정부와의 관계를 회복하면서 외부로부터의 힘을 키우는 방식이다. 바이든 당선인이 파리기후변화협약 복귀를 선언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트럼프는 패했지만 각국에서 여전히 극우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렇지 않다. 폴란드와 헝가리 등 일부 유럽국가에서 극우정권이 집권했지만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 유럽연합(EU) 대부분 국가는 극우세력을 잘 제어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극우 포퓰리즘의 영향력은 상당히 줄었다고 본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졌다.

“중국이 대응을 잘못했다. 코로나19 창궐 초기에 정보를 통제하고 거짓말을 했다. 그 결과가 지금 어떤지를 보라. 중국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위험 요소가 많다. 많은 글로벌 중국 기업들 또한 공산주의 정권과 갈등을 겪을 것이다. 당장은 정부가 기업을 누르겠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을 지속할 수는 없다. 20년이 걸릴지, 50년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결국 중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바뀔 것이라고 본다.”

―코로나19 백신을 불신하거나 거부하는 움직임이 있다.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바이러스는 계속 확산되고 있다. 백신에 대한 검증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려 접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나 역시 백신을 맞을 수 있으면 당장 맞겠다.”

―한국에서는 고령화, 저출산, 세대갈등이 심각하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모두 고민이 크다. 여성 권익을 높이는 것이 해결의 지름길이다. 여성들이 차별을 받아 정당한 위치에 있지 못할 때 저출산이 심화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과 사회적 공감대가 중요하다. 프랑스에서는 남성 역시 출산휴가를 적극 사용한다. 신혼부부에 대한 주거 지원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이런 정책들의 성과를 단기적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오랫동안 지속돼야 성공할 수 있다.”

―남북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나.

“결국에는 통일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당장 내일일 수도 있고 10년 후일 수도 있지만 남북은 결국 하나가 될 것으로 본다. 한국은 독일의 통일 과정과 시행착오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일 역시 서독과 동독의 경제력 차이가 컸고 여러 이유로 하나가 되기 어려웠지만 결국 통일이 됐다. 지금도 잘 헤쳐 나가고 있다.”

―한국에 대한 개인적 인상은….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특히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은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자크 아탈리(78)
△ 1943년 알제리의 유대계 가정에서 출생
△ 1956년 프랑스 이주
△ 1966∼1970년 파리공대, 파리정치대, 국립행정학교(ENA) 졸업
△ 1972년 소르본대 경제학 박사
△ 1968∼1985년 소르본대, 파리공대 등에서 경제학 강의
△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특별고문
△ 1991∼1993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초대 총재
△ 2008∼2010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산하 성장촉진위원회 위원장
△ 현 아탈리&아소시에 컨설팅 대표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이타주의#코로나#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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