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여자[이승재의 무비홀릭]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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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더우먼 1984’. 영화 속 진짜 악당은 현대인의 ‘탐욕’ 그 자체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원더우먼 1984’. 영화 속 진짜 악당은 현대인의 ‘탐욕’ 그 자체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1] 대단한 여자. ‘원더우먼(Wonder Woman)’이란 영어 단어를 우리말로 옮기면 이래요. 한자로 옮기면 놀랄 ‘경’에 여성 ‘여’를 쓴 ‘경녀(驚女)’가 되겠네요. 23일 개봉한 영화 ‘원더우먼 1984’를 보고 정말 대단하고 놀랍다는 생각을 하였어요. 코로나19로 수도권에서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이 발동된 첫날 극장 개봉하는 용기 자체로도 대단하지 아니한가 말이에요. 코로나19 난리 속에 굳이 개봉하는 꼴을 보니 어차피 망할 영화인가 보다, 하는 생각으로 영화를 보고 난 저는 깜짝 놀랐어요. 짐짓 심오하고 현실풍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으니까요.

영화엔 악당 둘이 나와요. 유전(油田) 개발이 좌절되면서 파산을 눈앞에 둔 유명 방송인이자 사업가 맥스와 소극적인 성격 탓에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는 박물관 고대보석학자 바버라이지요. 이들 남녀는 소원을 들어주는 초자연적 힘이 깃든 고대 보석 ‘드림스톤’(우리말로는 ‘꿈돌’, 한자로는 ‘몽석·夢石’이네요)에 간절한 소원을 빌면서 인생 역전을 이뤄요. 맥스는 최고 부자로, 바버라는 다이애나(원더우먼의 주민등록상 이름)처럼 매혹적이고 강한 힘을 지닌 팜파탈로 거듭나니까요.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거저 얻은 힘엔 대가가 따르는 법. 욕망의 노예로 전락한 둘은 사랑하는 사람과 멀어지거나 기괴한 괴물로 변해 가며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지요.

1980년대를 소환함으로써 21세기라는 작금을 투사하는 영화의 선택은 탁월해요. 1984년, 미국인들은 집채만 한 치즈버거를 사먹고 엉덩이가 산(山)만 해지던 물질 풍요의 시절이지요. 악당 맥스는 집집마다 보급된 TV 브라운관 속 복제된 자기 이미지를 통해 외쳐요. “소원을 빌어! 더 많이 원해! 더 많이 가져!” 영화 속 진짜 빌런은 ‘더 크게’ ‘더 많이’를 미끼로 인간의 영혼을 저당 잡는 경쟁과 탐욕이라는 ‘내 안의 괴물’이었던 것이지요. 이 영화는 꿈과 성공에 중독된 현대인들의 소원이 실제로 모두 다 이뤄진다면 그 결과는 도리어 얼마나 끔찍한 디스토피아일까를 보여주면서 경이롭게도 이런 메시지를 던져요. ‘결핍되고 문제투성이인 현실이야말로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이지요. 아, 제가 말하고도 너무 멋진 말이라 입이 안 다물어져요.

[2] 이 영화를 보면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과 요즘 인기인 TV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퍼뜩 떠올리는 저 자신을 보면서 ‘천재 아닐까’ 하는 생각을 싸가지 없게 하였어요.

우선 봉준호의 ‘괴물’은 우리가 많이 본 것 같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괴물이에요. 일요일 낮에 햇볕 받고 전신을 ‘까는’ 낯설기 짝이 없는 괴물의 모습을 통해 봉준호는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고도성장 속에서 한국인의 영혼 속에 암처럼 자라난 ‘욕망’이란 괴물을 말하려 했지요. 탐욕이라는 내 안의 악마와 사투를 벌인다는 점에서 원더우먼과 괴물은 동일한 빌런을 상정하고 있었던 것이에요.

펜트하우스는 또 어떻고요. 물론 ‘막장’의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어요. 뺨에 점 하나 찍고 다른 여자 되는 ‘아내의 유혹’ 속 민소희처럼 펜트하우스 속 부자 ‘로건 리’도 귀신 가발 하나 뒤집어쓰면 체육선생 ‘구호동’으로 변신하잖아요? 등장인물들만 그 정체를 모르는 바보천치 같은 설정에 코웃음이 나면서도 저는 이 드라마의 제법 진화한 악당 설정에 감동을 먹었단 말이에요.

펜트하우스에는 최고의 ‘인간쓰레기’ 자리를 두고 용호상박 다투는 불륜관계 남녀가 등장해요. 하나는 아들을 진실의 방으로 데려가 존댓말을 쓰면서 채찍으로 때리는 사이코패스이자 돈에 미친 사업가 주단태(엄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죽인 아버지의 피로 얼룩진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쳐대며 삼백 눈을 희번덕이는 미친 여자 천서진(김소연)이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이들이 태생부터 악마는 아니었어요. 주단태는 아버지의 폭력, 천서진은 1등주의를 강요하는 아버지의 학대 속에서 스스로 괴물로 흑화(黑化)한 가련한 영혼들이었지요. 게다가 ‘가난하고 착한’ 전형적 캐릭터인 줄로만 알았던 오윤희(유진)도 알고 보니 딸의 성공을 위해선 사람도 죽일 수 있는 악마의 씨앗을 감추고 있었고요. 이 드라마 속 인물 대부분은 자기 안의 괴물을 저마다 품었던 거예요.

[3] 맞아요. 미소 냉전도 끝났고,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도 영화 속 빌런으론 식상해졌어요. 영화와 드라마들은 가일층 신선한(?) 적을 개발해 내기에 이르렀지요. 내 안의 악마, 즉 탐욕과 트라우마라는 빌런 말이에요.

그래서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가 더욱 소름 끼치게 느껴진단 말이에요. 이 영화 속 악마는 연쇄살인마인 최민식인 듯했지만, 알고 보니 최민식에게 약혼자를 잃고 복수의 칼을 갈면서 살인마보다 끔찍한 살인마로 변해 가는 이병헌의 일그러진 내면 그 자체였으니까요. 이 영화는 말해줘요. 나쁜 놈에 맞서다 스스로 더 나쁜 놈이 되지 않도록 두려워하라고요. 하긴, 요즘 우리 정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네요. 아니 그게 무슨 크리스마스에 목탁 두드리는 헛소리냐고요? 저도 몰라요.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


#원더우먼#악당#유전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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