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온천 ‘공짜’로 내놔도 살 사람이 없는 이유[광화문에서/박형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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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도쿄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온천 시설 후쿠주소(福壽莊)를 공짜로 팝니다.’

최근 일본 인터넷을 검색하다 이 같은 내용을 봤다. 이와테현 와가군에 위치한 후쿠주소는 남탕과 여탕, 휴게실, 매점, 로비,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욕탕이 깨끗하다’ ‘유황 냄새가 엄청나다’ 등 방문객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정말 공짜일지 반신반의하며 매물로 내놓은 니시와가마치(기초지자체)에 확인 전화를 해봤다. “매매가 0엔 맞습니다. 다만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5년 동안 온천 시설로 유지해야 하고, 법인이어야 합니다.” 동네 주민들의 존속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조건을 붙였다고 했다. 법인을 원하는 것도 개인이 운영하다가 조기에 그만두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니시와가마치가 극단적 제안을 한 이유는 관리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300엔 이용료(65세 이상 주민 180엔)로는 운영비, 인건비, 시설 교체비 등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특히 주된 이용객은 마을 주민인데, 주민 수가 2005년 약 7400명에서 현재 약 5400명으로 줄었다. 갈수록 수입이 줄어들 게 뻔했다.

더 깊게는 일본 온천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88, 1989년 ‘고향 살리기 사업’이란 이름으로 각종 지자체 사업에 1억 엔씩을 교부하는 정책을 펼쳤다. 교부금을 타기 위해 지자체가 가장 많이 시도한 게 온천 건설이었다.

온천법에 따르면 △25도 이상의 뜨거운 물이 솟아나거나 △19가지 온천 성분 중 1개라도 기준을 충족시키면 온천 시설로 분류된다. 땅을 100m 파면 지하 온도는 2, 3도씩 올라가기 때문에 1000m 정도 파기만 하면 대부분 온천 시설을 만들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일본 전역에서 온천 시설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초저가’를 무기로 내세운 기업형 온천도 나왔다. 전국 체인에서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뷔페를 운용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온천 시설은 2006년 약 2만3000개에 이를 정도로 꾸준히 늘었다(일본온천종합연구소 자료).

하지만 특색 없는 온천은 이용객을 붙잡을 수 없었다. 온천 이용객은 1992년 1억4325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그 이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자연 속에 여유롭게 온천욕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은 물건 찍어내듯 공산품화돼 있는 온천 시설을 외면했다. 경영자 입장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온천 시설을 만들기는 쉬운데 유지 관리가 힘들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1년 내내 일해야 해 사람 구하기가 힘들었고, 시설을 이어받을 후계자도 잘 없었다. 그러자 ‘온천의 나라’ 일본에서 온천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홋카이도 이와나이군의 라이덴온천 지역은 지난해 9월 마지막 남은 온천 시설이 폐관하면서 온천마을 자체가 소멸해버리기도 했다.

다시 공짜 온천 후쿠주소 이야기다. 니시와가마치에 ‘인수하겠다는 법인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10월 31일이 마감이었는데 개인이 몇 명 연락 왔지만, 법인은 아무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공짜라고 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에 늦어 천덕꾸러기 신세가 돼 버리는 것은 비단 일본 온천 시설에만 국한된 게 아닐 것이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온천#공짜#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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