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의식을 초월한 ‘엄마의 자식 사랑’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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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지막 말들/박희병 지음/404쪽·1만6000원·창비

구순 고령에 기력이 쇠한 말기 암 환자이자 알츠하이머 인지저하증을 겪고 있는 어머니가 호스피스 병동에 머물면서 몇 마디 말을 던진다. “이 닦았나?” “또 왔나?” “저기 나무에 감이 달렸다” 같은 평범한 말이기도 하고, “늙으나 젊으나 전다지 물건 덩어리다” 같은 알쏭달쏭한 말이기도 하다. 향정신성 약물을 늘 투여 받으며 수시로 혼란상태에 빠지다 전후 맥락 없이 불쑥 나오는 어머니의 그 문장들.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고전문학 분야 석학인 저자는 호스피스 병동을 옮겨 다니다 숨을 거둔 어머니의 와병생활을 휴직까지 한 채 1년여 돌본다. 저자는 어머니가 때때로 던진 말이 의미 없는 게 아니라 그저 해독되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어머니가 남긴 선문답처럼 짧은 말과 그에 대한 저자의 특별하고 애틋한 해독을 담고 있다. 모자(母子)의 각별한 유대감이 평범하거나 엉뚱한 말의 속뜻을 발견하게 하고, 오랜 기억을 소환해서 그 맥락을 이해하게끔 한다. 아들의 글 속에는 어머니의 강인한 삶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절절하다.

병실로 들어서는 아들에게 혼몽한 중에도 “공부하다 오나?”라고 묻는 어머니. 저자는 어머니의 삶이 자신의 공부와 분리되지 않는단 걸 깨닫는다. ‘선생님’인 셋째 아들은 어머니에게 늘 자랑스럽다. 저자는 어릴 적 간식 ‘박산’(뻥튀기)을 반기는 어머니를 보며 지난 시절을 그리워도 하고 “얼른 도망가라”는 외침에 독재 시절 경찰에 쫓기던 20대를 떠올리기도 한다. 병실에서도 “느그 아버지 밥 차리 줬나”며 아버지 걱정을 달고 있는 어머니에게서 원망, 미움도 무화시키는 늙은 사랑의 뭉클함을 느낀다.

기계적으로 약물만 투여하는 곳에서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다 의료진이 바뀌면서 상태가 눈에 띄게 호전되는 경험을 반복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의료진의 태도가 환자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세밀히 반영돼 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보름 전 “아들!”이라 외쳐 모두를 놀라게 한다. ‘사랑은 의식을 넘어 존재하는 것’임을 알려준 그의 마지막 말은 “어어어”. “엄마! 다음 세상에서 또 만나요!”라는 아들의 작별 인사에 대한 대답이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엄마의 마지막 말들#박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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