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권하는 노래[이준식의 한시 한 수]〈81〉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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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리서 술을 잊지 못할까. 하늘 끝 헤어졌다 다시 만나 옛정을 나눌 때지.

청운의 꿈은 다들 이루지 못한 채 흰머리 된 걸 서로가 놀라워하지.

이십 년 전 이별한 후 아득히 삼천 리 밖을 떠돌았으니

이럴 때 술 한 잔 없다면 무슨 수로 지난 평생을 다 풀어내랴.

(何處難忘酒, 天涯話舊情. 靑雲俱不達, 白髮遞相驚. 二十年前別, 三千里外行. 此時無一盞, 何以敍平生.)

―‘어떤 자리서 술을 잊지 못할까(何處難忘酒)’ 백거이(白居易·772∼846)

술이 좋아 마시면서도 애써 술 마실 명분을 찾아내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기왕 마시는 술이지만 명분이 그럴싸하면 마음의 부담도 덜고 혹여 있을지 모를 주변의 눈총도 피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하물며 서로 아득히 멀리 이별했다 20년 만에 만난 친구와 옛정을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누군들 시인의 이 권주가에 공감하지 않으랴. ‘어떤 자리서 술을 잊지 못할까’는 7수로 이루어진 연작시. 옛 친구와 회포를 푸는 경우 외에 시인은 어떤 때 술 생각이 간절할 것이라고 상정했을까. 장원 급제하여 관복을 입고 장안을 누빌 때, 전공(戰功)을 세운 영웅이 군사를 이끌고 금의환향의 행차에 나설 때, 병든 노인이 서리 내린 뜰에서 외로이 소슬한 가을바람을 느낄 때, 조정에서 쫓겨난 신하가 도성을 떠나 눈물로 낙향의 길에 오늘 때 등 다양한 경우를 내세우고 있다.

이백, 두보에 못지않은 시명(詩名)을 떨쳤던 백거이, 취음(醉吟) 선생이라는 호(號)에 걸맞게 음주시(飮酒詩)에 관한 한 오히려 두 사람을 능가할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다만 이백의 음주시가 호탕한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면 두보의 그것에는 불우한 삶 속에서 악전고투했던 침울한 분위기가 투영되어 있고 백거이의 음주시에는 달관과 유유자적의 정취가 물씬 배어난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술#명분#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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